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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조선 왕조의 역사를 간직한 창덕궁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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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품은 궁궐 건축의 양식과 예식

서울은 큰 산과 큰 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으로서의 조건을 넉넉히 가진 도시다. 그러나 높은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찬 도시 서울에서 그 풍광을 온전히 느끼기는 쉽지 않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뿌옇게 덮인 잿빛 도시로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잿빛 사이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뿜어내는 곳이 있다. 궁궐이다. 면면히 이어온 이 땅의 역사가 담긴 궁궐과 그 주변 숲은 거대 도시의 허파로 남았다.

서울의 궁궐 가운데 깊고 아름다운 숲을 간직한 궁으로는 우선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창덕궁을 꼽을 수 있다. 창덕궁 숲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만 네 종류가 있다. 모두가 크고 오래된 자연유산이면서 동시에 궁궐의 역사를 지켜 온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삼공의 자리를 지키며 창덕궁에서 살아남은 창덕궁 회화나무군

궁궐의 예법을 보여 주는 회화 나무 군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8그루의 회화나무군(群)이다. 나무 높이는 15m에서 16m 정도 되고,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5m에서 7m쯤 되는 오래된 회화나무들이다.

학자수(學者樹)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아꼈던 나무다. 현란하게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아 기품을 갖춘나무의 상징으로 선비들의 매무시와 닮은 탓이라고 한다. 옛 선비들은 이사를 할 때에도 집에서 기르던 회화나무를 이삿짐 목록에 올렸을 정도로 아꼈다고 전한다.

창덕궁의 회화나무군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궁궐 건축의 기준으로 삼은 중국의 ‘주례(周禮)’에 따르면 임금이 여러 관료와 귀족을 만나는 장소인 ‘외조(外朝)’ 가운데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즉 삼공(三公)이 자리하는데 여기에 회화나무를 심어야 했다. 돈화문 주변 회화나무의 자리가 바로 외조의 위치였다. 1820년대 중반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에도 이 나무들이 나온다.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도 그저 주변을 치장한다는 생각뿐 아니라 예법을 따르려 했던 궁궐 건축의 엄격함이 드러난다. 회화나무들 사이에는 그만큼 오래된 느티나무와 벚나무가 어울려 있지만 회화나무는 삼정승의 기개처럼 오뚝하니 도드라진다.

조선 최고 관료들의 위치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창덕궁의 회화나무군은 나라 안 최고의 선비들과 함께 영예를 누리며 살아온 나무다. 더불어 이제는 국가가 살아있는 생물에게 부여하는 최고 지위인 ‘천연기념물’로 최고의 대접을 받으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 시대 왕비가 친잠례를 치른 흔적으로 남은 창덕궁 뽕나무

농경문화시대의 문화가 반영된 뽕나무

궁궐에 뽕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창덕궁을 건립하고 태종은 중국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공상제도(公桑制度)처럼 궁궐에 뽕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또 성종 때에도 임금이 양잠(養蠶)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후원에 뽕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왕비가 친히 주관하는 친잠례(親蠶禮)를 위한 뽕나무도 있었다. 친잠례는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는 시범을 보이는 의식으로 왕이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이는 선농(先農)의식과 비슷한 궁중 행사다. 비단이 부의 상징이었던 농경 문화 시대에 양잠의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예식이었다. 왕비는 궁궐 후원의 뽕나무 앞에서 친잠례를 치르고, 인간에게 누에 치는 법을 처음 가르쳤다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양잠의 신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올리는 게 중요한 소임이었다.

바로 이런 궁궐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가 있다. 바로 창덕궁의 관람지 입구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 주위에서 자라고 있는 창덕궁 뽕나무다. 창덕궁 뽕나무는 높이 12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2.4m로, 뽕나무 중에는 비교적 큰규모이며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을 갖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2006년에 이 나무의 나이를 대략 400년으로 추정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비슷한 나이의 뽕나무에 비하면 규모는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조선 시대의 궁궐과 농업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으로 살아 남은 인문학적 생명체임에 틀림없다.

'서울 조계사 백송'은 한창 때의 아름다움은 잃었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태풍을 맞아 중심 줄기가 부러져 나무 높이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창덕궁 최고의 명목으로 손꼽히는 창덕궁 향나무

세월의 풍파가 남아 있는 향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래나무

창덕궁의 오래된 나무 가운데에 가장 훌륭한 인상을 갖춘 나무로는 역시 천연기념물인 창덕궁 향나무가 첫손에 꼽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향나무는 2010년 태풍 곤파스의 습격으로 중심 줄기가 부러져 한창때의 위용을 잃었다. 줄기가 부러지기 전 나무 높이는 12m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9m가 채 안 되고 수형의 균형도 일부 흐트러졌다. 700살쯤 된 것으로 보이는 이 나무는 태종 때, 창덕궁을 완공하고 다른 곳에서 자라던 큰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가 우리를 압도하는 건 크기가 아니라 땅에서 올라온 줄기 밑동이나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안고 비비 꼬이며 자라난 나뭇가지의 신비로움에 있어서 여전히 창덕궁 안의 명목(名木)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창덕궁 대보단 곁에는 600년쯤 된 다래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다래나무 가운데 유일한 천연기념물이다. 높이 19m, 줄기 둘레 15~18cm 규모의 다래나무는 창덕궁 건축 이전부터 이 자리에서 저절로 자라던 나무로 보인다.

서울의 인문학적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궁궐의 나무

서울의 아름다움은 단지 큰 산으로 둘러싸이고 시내에 큰강이 흐른다는 자연 조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나무와 숲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지만 그 곁에 조용히 있으면서 가장 많은 말을 건네는 크고 오래된 나무들의 진정한 가치가 보태질 때에야 비로소 서울의 인문학적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특히 서울의 궁궐에 서 있는 큰 나무들이야말로 이 땅에 흐르는 유구한 역사의 알맹이를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먼 후손에게까지 대대로 전해줄 연유산이자 문화유산이다. 지금, 궁궐의 봄을 찬란히 밝히고 또 하나의 세월의 켜를 몸 안에 담는 나무의 꿈틀거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이자 천리포수목원 이사, 대학교수이다. 전국 각지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나무와 관련된 칼럼 연재, 방송, 강연 등을 하고 있다.
<나뭇잎 수업>, <도시의 나무 친구들>을 펴냈다.

글·사진 고규홍 일러스트 장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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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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