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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한강 생태공원엔 삵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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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

한강 습지의 중요성

강원도 태백 백두대간 기슭에서 발원한 한강은 장장 400여 킬로미터를 흘러 서울에 닿는다. 서울시 구간에 진입한 한강이 마주하는 것은 거대한 빌딩 숲과 콘크리트 호안이다. 게다가 강의 남과 북으로는 각각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에워싸고 있다.

자연성을 잃어버린 한강의 모습에 다소 절망적일 수 있지만, 희망의 끈은 있다. 습지와 하반림(河畔林)이 건재한 자투리 녹색 공간이 한강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강서습지생태공원, 난지생태습지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밤섬, 암사생태공원, 고덕수변생태공원은 한강이라는 줄기에 포도알처럼 알알이 열린 보물 같은 공간이다. 이 푸르른 땅에 야생이 깃들어 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있고, 갖은 영양소가 상류로부터 공급되는 한강 변 습지 생태계는 여러 생명을 품는다. 물억새·버드나무·갯버들·갈대·달뿌리풀 등 물이 풍부한 곳을 좋아하는 습지식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쇠기러기·고방오리·청둥오리·비오리 등 철새들의 안식처이자 잉어·숭어·누치·참게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강 변 습지는 육상 생태계와 수생태계 사이의 전이대(ecotone; 이질적인 두 생태계가 인접한 지역)로서 특유의 식생 군락과 동물군이 먹고 먹히고 경쟁하며 또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복잡한 먹이사슬의 정점에는 상위 포식자인 삵이 있다.

생태계 건강성의 척도, 삵

살쾡이라고도 부르는 삵은 호랑이와 표범이 사라진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양잇과 야생동물로, 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귀 뒷면의 흰 반점, 복슬복슬한 꼬리, 이마에 난 검은 줄무늬 등으로 고양이와 구분한다. 서울 한강에서는 강서습지생태공원, 난지생태 습지원, 암사생태공원 등지에서 서식이 확인되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삵의 삶은 어떠할까?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방화대교와 행주대교 사이에 자리한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삵에게 발신기를 부착해 무선 추적을 실시했다. 신호를 따라다니며 멀리서 삵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했다. 삵은 낮에 휴식을 취하고 밤에 부지런히 활동했다. 덕분에 그에 맞춰 나 또한 야행성 동물이 되어야 했다. 다크서클이 짙어지는 만큼 데이터는 축적되어갔다. 낮에 시민들이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는 생태공원이 밤엔 삵의 차지였다. 야심한 밤에 삵은 생태공원 탐방로를 활보하며 배설했다. 같은 공간을 두고 활동 시간의 분화를 통한 공존이 이루어졌다.

삵의 주된 먹이원은 설치류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설치류 포획 조사를 진행해보니 산림 지역보다 오히려 서식밀도가 높게 나왔다. 한강 변 습지의 높은 생산성은 삵과 같은 상위 포식자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설치류뿐 아니라 한강 수변 지역 삵의 식단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와 달리 삵은 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강 변 얕은 물가에선 잉어나 숭어 등을 낚고, 습지 곳곳 물웅덩이에선 개구리를 사냥했다. 갈대밭에 숨어 있는 꿩과 수변에서 쉬고 있는 겨울 철새를 공략하기도 했다. 실제 겨울철 삵의 똥 내용물에는 소화되지 않은 새의 깃털과 뼈가 주를 이뤘다. 최상위 포식자인 삵의 서식은 그 지역 생태계의 건강성과 먹이사슬 구조의 안정성을 나타낸다. 즉 삵은 도시 생태계의 지표종(indicatorspecies)이라 할 수 있다.

삵

역동적인 습지 생태계

한강은 1년에 한두 차례 범람한다. 팔당댐 방류와 서해바다 만조 시기가 겹치면 물 흐름이 정체되어 수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한강 변 습지는 불어난 한강 물을 담아두었다가 내주는 홍수터 역할을 한다. 동물들은 차오르는 성난 강물을 피해 급한 대로 올림픽대로 사면이나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한다. 연구 당시 여름철 범람 이후 추적하던 암컷 삵을 놓친 적이 있다. 하류로 떠내려간 것인지, 로드킬을 당한 것인지 당최 행방을 찾지 못했다. 이처럼 한강 수변 서식지 야생동물의 운명은 제한된 공간 구조로 인해 범람 시에 특히나 위태롭다.

홍수와 범람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홍수로 인해 상류에 있던 식물 종자나 영양물질이 하류로 내려오기도 하고, 떠내려온 야생동물이 하류에 정착하기도 한다. 습지식물은 물이 빠진 뒤 틈이 생긴 토양에 다시금 움을 틔운다. 홍수는 습지에 ‘긍정적 교란’의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습지는 그 어느 곳보다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생태계를 이룬다.

습지 일부는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돼지풀과 같은 외래종이 우점(優占)하기도 했다. 키가 3m를 훌쩍 넘는 돼지풀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그렇다면 야생동물은 외래종 식물 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삵의 공간 이용 특성을 파악해보니 그들 역시 외래종 식물 군락을 기피했다. 단일종이 우점해 종다양성이 낮아 먹이 조건이 좋지 않고, 울폐되어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야생동물 서식지 보전과 관리 측면에서도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 사업은 필요해 보인다.

삵

삵의 삶을 응원하며

서울 한강 변 습지는 먹이 조건만 놓고 보면 삵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서식지다. 하지만 서식 공간의 부족과 서식지 연결성 부재라는 치명적 약점이 존재한다. 한강 습지의 삵은 도심, 강, 도로로 둘러싸인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 무선 추적 결과 강서습지생태공원의 삵 행동권은 자연 지역에 서식하는 개체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식지 내에서 이동하는 거리는 더 길었다. 즉 도시에서 삵은 제한된 서식지를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제한된 서식지를 둘러싼 개체 간 경쟁이 치열하며, 경쟁에서 밀려난 개체는 도태된다. 따라서 서식지 감소와 교란은 이곳 야생동물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추적하던 수컷 삵은 습지에서 나와 이동 중에 올림픽대로에서 차량과 충돌해 최후를 맞이했다. 하천을 따라 나 있는 도로가 많기에 수변 야생동물은 특히나 로드킬에 취약하다. 삵 개체군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서는 외부에서의 새로운 개체 유입과 번식 개체의 확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로드킬 저감과 서식지 간 연결성 확보, 생태 네트워크의 회복이 도시 생태계와 삵의 보전을 위한 중요한 숙제다.

서울 시민의 삶이 그러하듯 야생동물도 도시에서 저마다 치열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에는 하루에 수십만 대의 출퇴근 차량이 한강 생태공원을 옆에 끼고 지나간다. 한편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저 자투리 습지에서는 치열한 야생의 드라마가 이어진다. 인구 1,00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에 상위 포식자이자 멸종 위기종인 삵이 산다는 건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다. 오늘도 새롭게 펼쳐질 시민들의 삶, 삵의 삶을 응원한다.


우동걸
야생동물을 조사하기 위해 우리 땅 곳곳을 다녔다. 국립생태원 멸종 위기종복원센터에서 포유류의 생태와 보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숲에서 태어나 길 위에 서다> 등이 있다.

우동걸 일러스트 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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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한강 생태공원엔 삵이 산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07-03
관리번호 D000004844056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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