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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크리스마스엔 버드 카운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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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만나기 좋은 겨울철 놀이공원

어릴 적 서울어린이대공원(이하 어린이대공원)이 청룡 열차를 타 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신나게 즐기던 놀이공원이었다면, 이젠 조용하게 산책을 하며 새를 보기 좋은 공간이 되었다. 겨울철 놀이공원은 연중 가장 사람이 적을 때라 넓은 공간에서 새 보기에 더없이 좋은 곳 가운데 하나다. 늦가을 공원에 왔다가 공원 초입에서 노랑눈썹솔새 소리를 들었다. 노랑 눈썹솔새는 나그네새로, 봄가을 이동 중일 때 주로 만날 수 있기에 귀를 의심하면서도 어느새 내 귀는 소리를 따라 둘레 나무를 살폈다. 그러다 나뭇가지에서 먹이를 찾는 노랑눈썹솔새 를 만났다. 전혀 기대하지 않던 새를, 더구나 기온이 뚝 떨어진 날에 만나게 되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추위에 괜찮을까 염려스럽다.

최근 들어 여름 철새 가운데 더러 텃새가 되어 주저앉는 걸 보면 새들도 나름대로 겨울을 지낼 자구책을 찾는 게 아닐까 싶긴 하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겨울도 예전처럼 혹독한 추위가 줄어든 데다 먹이가 있다면 거뜬히 겨울을 날 수 있으니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이젠 완연한 겨울이지만 혹시 모를 노랑눈썹솔새 소리에 귀를 열었으나 결국 듣지 못했다. 내년 봄을 기약해야겠다.

어린이대공원은 원래 한국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서울칸트리 구락부라는 이름의 골프장을 조성한 공간이었다. 그 후 이러 저러한 사정 끝에 1973년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당시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공원이었다. 처음 탐조를 갔을 때 탁 트인 너른 풀밭이 군데군데 있어서 독특하다 여겼는데 과거 역사를 알고 나니 풍경이 이해됐다. 풀밭 가장자리와 숲이 시작되는 경계는 떨어진 풀씨나 나무 씨앗이 많아 새를 만나기 좋은 장소다. 바닥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호랑지빠귀와 되새를 볼 수 있고, 후투티는 여름 철새이면서 나그네새인데 이따금 월동하는 개체도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잘 살펴봐야 한다.

어린이대공원 생태 연못에서 마주한 존재의 숙명

어린이대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공원 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판이 있는데, 가장 먼저 2개의 커다란 원이 보인다. 안쪽은 놀이 시설을 이용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등 활동적 공간을 잇는 동선인데, 나는 바깥쪽 원을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호를 그리며 탐조한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태 연못이 보인다. 현재 낡은 시설을 교체하는 공사를 하면서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접근 금지선 너머로 왜가리와 흰뺨검둥오리가 보였다. 왜가리는 정지한 상태로 있으면 살아 있는 건지 조형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미동도 없다. 그러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면 갑자기 행동이 민첩해진다. 만약 왜가리가 무언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볼 일이다.

한번은 왜가리가 물속을 응시하다가 순간 뛰어들었는데 그만 허탕을 치고 말았다.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이 일며 기름기가 번졌다. 왜가리가 첨벙 뛰어든 흔적이 일렁였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아쉬워하는 소리가 가늘게 들린 것 같았다. 왜가리는 마치 자신의 민망함을 설욕이라도 하려는 듯 양 날개를 펼치고 몸에 묻은 물기를 정신없이 부르르 털었다. 곧이어 두 번째 물고기 사냥에 도전했는데 다행히도 성공했다. 그러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며 왜가리를 응원했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덩달아 박수를 치다가 문득 물고기 입장을 떠올렸다. 먹고 먹혀야 유지 되는게 세상의 이치이고 생명 가진 모든 존재의 숙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서글펐다.

어린이대공원은 평지숲 과 풀밭 그리고 작은 규모의 습지가 서식지 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록 공원 내 습지 규모는 작지만 공원 양옆으로 중랑천과 한강이 흐르고 있어 원앙, 쇠물닭, 물총새, 민물 가마우지, 흰날개해오라기, 검은댕기해오라기 그리고 해오라기 같은 물새들이 계절별로 찾아오는 환경이다.

우리의 배려가 필요한, 깊어가는 겨울철

어린이대공원에서 지난 몇 년에 걸쳐 새를 관찰한 ‘서울의 새’ 모임 기록에 따르면 큰기러기, 새호리기 같은 멸종위기 야생 생물종과 솔부엉이, 황조롱이 같은 천연기념물 그리고 동박 새처럼 남쪽이 서식지였다가 기온 상승으로 북쪽으로 올라온 기후변화생물지표종 등이 관찰되고 있다. 특히 2021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년 동안 어린이대공원에서 처음 관찰된 종과 특이종으로 촉새, 홍여새, 황여새, 검은딱새, 꼬까참새, 힝둥새, 큰기러기 등이 있다. 새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먹을 것이 있고, 안전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먹이는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자리공은 외래 식물로, 염료로 활용되는 붉은 열매가 겨우내 새들에게 요긴한 양식이다. 겨울철은 먹이가 곤궁한 계절이기에 새들과 연대가 절실하다. 그 연대란 바로 먹이를 공급 해주는 일이다. 휴지 심이나 솔방울 또는 잣송이에 조청이나 땅콩버터, 밀가루 반죽을 입히고 여러 견과류와 곡물을 붙여 나뭇가지에 걸어두면 추운 겨울 동안 새들에겐 진심 어린 선물이 된다. 서울이라는 메가시티에는 고층 빌딩과 자동차만 많은게 아니라 다양한 새도 충분히 많다. 언제고 새들이 찾아와 안전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서울이 되려면 우리의 노력과 배려도 분명 필요해 보인다.

울창한 침엽수림에서 들려온 반가운 새소리

바깥 원을 그리며 탐조하다가 새소리를 따라 중간중간 샛길로 공간을 넓혀 걷기도 한다. 후문을 지나 소나무, 전나무 등 침엽수림이 울창한 곳에서 상모솔새 소리를 들었다.

상모솔새는 겨울을 나려고 시베리아나 백두산 등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새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새다. 6~7g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 몸무게로 그 먼 곳에서 우리나라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외감이 든다. 몸이 작아서인지 움직임도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공원에서 만난 상모솔 새는 마치 자세히 보고 싶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것처럼 나와 멀지 않은 전나무 가지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상모 솔새의 특징은 정수리 부분의 노란색이다. 수컷은 노란색 위에 붉은색 깃털도 있는데, 족두리를 쓰고 있는 것처럼 귀엽다. 전나무 가지에 숨어 있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지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느라 분주하다.

겨울 철새는 우리나라에 사는 텃새보다 2배 이상 많은 종이 찾는데다 몇 년에 한 번씩 평소에 보기 쉽지 않은 새들이 몰려오는 때가 있다. 서식지의 먹이가 부족해져서 부쩍 많이 내려온다는 가설도 있고 기후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올해가 바로 그런 해라는 건 중요하다. 나무줄기를 빠르게 발발거리며 다닌다고 해서 이름 붙은 나무발바리, 동고비보다 조금 더 작은 쇠동고비,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새로 뽑힌 흰머리오목눈이, 그리고 화려하게 화장한 듯한 외모를 지닌 여새류 등이 바로 그런 새들이다. 하나같이 귀하고, 만나면 너무나 반가운 새들이 공원에도 보인다. 올겨울 우리나라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으니 꼭 만나보면 좋겠다. 아직 초보 탐조인이라면 탐조를 하기 전에 미리 예습하고 가길 권한다. 겨울에 만날 가능성이 높은 새 소리가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미리 찾아 들어 귀에 익히고, 도감 등을 통해 눈으로 친해진 다음 탐조한다면 새를 발견할 확률이 더 높다.

어떤 방법이든 가능한 버드 카운트

겨울은 공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탐조하기 좋고, 나뭇잎을 떨군 나목들 사이로 새가 잘 보여 더욱 탐조하기 좋은 계절이다. 나무발바리처럼 나무줄기와 흡사한 데다 크기마저 크지 않은 새는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그곳에 있어도 지나치기 쉽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버드카운트’가 열린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연례행사로 친지들이 모여 동물과 새를 사냥하곤 했다. 그러다가 1900년 조류학자 프랭크 M. 채프먼이 사냥 대신 새를 관찰하고 기록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게 크리스마스 버드 카운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서울 지역 탐조 모임이 처음 시작 했고, 2019년부터는 전국적으로 관찰 기록을 집계해오고 있다. 크리스마스 버드 카운트는 각자 원하는 어떤 방법이든 가능하다. 내가 사는 동네를 혼자 한 바퀴 돌면서 새를 관찰하고 기록해도 좋고,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새를 관찰하고 기록해도 좋다. 여럿이 모여 어린이대공원이든 창경궁이든 한강이든 장소를 정해 함께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면 된다. 기록은 네이처링(naturing.net)에 올리면 전국적 집계에 내 기록이 포함되고, 이버드(ebird.org)에 올리면 세계적 집계에 더 풍부한 데이터를 제공하게 된다.

도시의 공원이 풀벌레 오가고 바람이 흐르며 마음도 흐르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 어린이대공원은 이른 새벽인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겨울엔 추워서 조금 힘들수 있지만, 봄날 오전 5시에 대공원에 오면 멋진 소리 풍경 을 경험할 수 있다. 봄날 새벽 5시 무렵은 1년 중 새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추운 겨울에 봄을 상상하니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최원형
생태·에너지·기후변화와 관련해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시민 교육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계절기억책>,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등이 있다.

일러스트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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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크리스마스엔 버드 카운트를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12-04
관리번호 D0000049743868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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