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이슈 인터뷰] 그 날의 함성이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문서 본문

이역만리 사선을 넘나든 한 청년의 기억

22살 앳된 청년에게 월남(越南)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먼 이국 땅이었다. 만기 제대를 코앞에 둔 청년 정진호는 왜 가야만 하는지 알지 못한 채 1964년 9월 뱃전에 올랐다.“해병대 선발대(청룡부대) 920명 중 언제 돌아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이렇게 사지로 가서 죽는구나.’ 생각했을 겁니다. 일상적으로 교전이 벌어지고 바로 옆에서 전우가 쓰러져가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이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정진호 씨는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모를 만큼 혼란스러운 전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가 1967년 귀국할 당시 살아남은 부대원은 300명 정도. 600여 명의 청년들은 결국 타국 땅에서 돌아오지 못했다.“피아간 함성이 오가는 전장은 삶과 죽음이 마치 문턱처 럼 가까웠던 곳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힘이 없으니 나라가 갈라지고, 남의 나라에 와서 전쟁도 하는구나 하고 말이죠.”
월남 파병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게 되어 눈부신 경제개발의 밑거름이 됐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여러 전장에서 숨져간 전우들과 양민들, 파괴된 마을과 유적들이 기억에 떠올라 무척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오늘날 서울을 보면 6.25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모했습니다. 과거의 불우했던 모습을 후대에까지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각고의 결실이었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을 잘 알지 못하고 경각심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인데 말이죠.”

가진 것은 나누며 살아야 한다

정진호 씨는 지난 4월 월남전참전자회 서울시지부 회원들과 함께 50년 만에 월남 전적지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더러 새로이 개발된 곳도 있었지만 당시의 격렬했던 전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지역도 있었다. 총탄 자국이 움푹 팬 건물 기둥을 쓰다듬으며 먹먹한 심정으로 한참 동안 서 있었다는 정진호 씨. “40여 년 세월 동안 쓰린 기억을 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는 그는 용기를 내어 월남전 참전자회의 활동에 동참했다. 그게 5년 전의 일이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청과유통회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건강식품 사업을 하며 기업가로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이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더군요. 가난했던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스무 살 무렵엔 가장이 되어야 했고, 남보다 긴 군복무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죠. 귀국 후에는 서울을 안방 삼고 전국을 무대로 정신 없이 뛰어다녔어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제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인 셈이지요.”
월남전참전자회 서울시지부장을 맡으면서 참전 전우들의 열악한 노후를 직접 확인하고, 이들의 복지 향상과 처우 개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월남참전기념공원 조성 사업과 유공자 대상의 요양원 건립 사업이 역점 프로젝트이다.“서울시와 월남전참전자회 서울시지부 간의 기본적인 논의는 시작됐습니다. 이제 과단성 있게 추진해가야죠.”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시간과 재원은 부족하고, 회원들의 나이는 일흔을 넘긴 사람들이 많다. 정진호 씨는 “지금 빨리 하지 않으면 영원히 요원해질 것 같아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라를 위해 흘렸던 20대의 젊은 청년들의 피와 눈물, 땀을 기억한다면 이제 그 노고에 대한 존경을 보여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시민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이 절실합니다.”





글 이승희 사진 이서연(AZA스튜디오) 자료 제공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

문서 정보

[이슈 인터뷰] 그 날의 함성이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58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