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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그땐 주판알만 좀 튕겨도 영재 소리를 듣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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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다. 모처럼 친구네 놀러 갔다가 그 집 거실 한 구석에 놓여있는 주판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질렀다. “오호, 이게 언제 적 주판이래. 이야, 나뭇결 튼실하니 좋네. 설마 너, 그 나이에 다시 주판 배우는 건 아니지?” 친구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 집 늦둥이 초등학생 막내딸 거란다. 숫자에 지대한 흥미를 보이는데, 그렇다고 학원에 보내 수학공식 외우게 하고 문제풀이나 시키자니 딱히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고민 중에, 마침 주산을 가르쳐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냈단다. 주판. 요즘에야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옛날 물건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집집마다 가게마다 관공서마다 주판 없는 곳이 없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7남매의 막내인 나 또한 위의 오빠, 언니들 차례대로 물려 내려온, 한 마디로 말해 고색이 창연한 주판을 갖고 있었다. 내 친구 딸내미 것처럼 아랫줄에 네 알 달린 신식 주판이 아닌, 다섯 알짜리 구식이었는데, 네 알짜리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개량식이라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찾아보니, 연도 미상의 조선시대 때 들여온 윗줄 두 알, 아랫줄 다섯 알짜리 중국식 주판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40년 후인 1932년에 각각 한 알, 네 알로 변신을 해서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었다고 한다. 십진법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주판, 주판하니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크고 좋았던,
시장 안 쌀집 아저씨의 주판도 떠오른다. 구식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린 내 마음에 어른 엄지손톱만 했던 주판알들이며, 사방 모서리마다 박혀 있던 놋쇠 테가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단연 으뜸이었다. 방앗간을 겸했던 그곳은 명절이 아니더라도 고춧가루를 빻고 참기름을 짜려는 여인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뚱뚱한 몸매와 별개로 코에 걸친 검은 뿔테 안경알 사이로 보이는 매서운 눈과 호나우두의 드리블을 능가하는 손놀림으로 보리 닷 되, 콩 열 되, 팥 두 되 값을 단번에 계산해내던 쌀집 아저씨의 주판알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주판이 전용계산기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에는전국적으로 주산교육 열풍이 불었다. 손가락 열 개에 발가락 열 개까지 합쳐도 모자라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주판을 사주었다. 전자계산기는 없었냐고? 요즘이야 싸고도 성능 좋은 전자계산기가 넘쳐나고, 스마트폰 앱 다운받을 줄만 알면 누구라도 이런저런 계산 응용 프로그램을 마음대로쓸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때의 전자계산기란 공대 다니는대학생 오빠나 만질 수 있었던 어렵고 귀한 물건이었다.


어쨌든 지금의 강남 8학군 정도는 아닐지라도,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종로구 통의동 인근 지역은 나름 교육열이 상당했던 동네여서 피아노, 미술, 웅변, 무용, 서예, 속독, 태권도 등을 가르쳐주는 학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주산학원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국민학생을 둔 부모는 두뇌 발달용 조기교육을 위해, 중학생을 둔 부모라면 당시 경쟁률이 대학입시만큼이나 대단했던 명문 상고로 진학시켜 당대의 일등 직업군 중 하나였던 은행원을 만들기 위해, 당신들의 자녀를 주산학원으로 보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주산학원 문턱을 좀 들락거렸다.


‘135원이요, 782원이요, 다시 135원이요…’
대단히 무미건조하지만, 긴장감을 조성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던 특유의 빠르고 리드미컬한 목 울림소리에 맞춰 엄지와 검지로 동글납작한 주판알 올리고 내리기를 지겹도록 반복하다 보니, 이게 웬걸. 나중에는 실물 아닌 머릿속 주판만으로도 백 단위, 천 단위 계산이 가능한 기적이, 어쩌다 내게도 일어났다. 신기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구나. 덜렁이인 나도 하면 되는구나. 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또래 친구들이나 중학생 언니, 오빠들 중에는 영재 소리 듣는 애들이 좀 있었다. 그런 애들은 주판 잡는 자세부터 달랐다. 주산은 속도와 정확성이 관건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들의 영재성은 타고난 지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피나는 성실함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런 아이들이라면, 주판 아니라 뭘 했어도 잘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배선이(자유기고가) 사진 일러스트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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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그땐 주판알만 좀 튕겨도 영재 소리를 듣곤 했죠”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2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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