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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화유산 답사] 민족정신 어린 기념비적 건축물, 중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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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민족 사학인 중앙고등학교는 민간인이 세운 학교의 기념비적 건물이며, 우리나라 건축가가 근대 초기 양식으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건물이다.



안국동 현대그룹 본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중앙고등학교 정문에 이른다. 중앙고등학교는 1908년 기호지방의 우국지사들이 설립한 기호학교(畿湖學校)가 1910년 9월 흥사단에서 설립한 융희학교(隆熙學校)와 합병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학교다. 1917년, 중학 과정을 가르치던 이 학교를 인촌 김성수가 인수한 후 백두산을 상징하는 백산학교로 이름을 바꾸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결국 중앙고등보통학교라 이름 짓고(1951년 3년제 중앙고등학교로 개편했다)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본관·서관·동관을 2층 벽돌집으로 지었다.


그러나 1934년 본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우리나라 근대건축가로 고려대학교 본관과 도서관 그리고 조선일보 사옥을 설계한 박동진에게 설계를 의뢰해 석조 콘크리트 철근을 사용한 2층짜리 근대식 건물로 다시 지었다. 학교 정문에서 바라볼 때 정면에 들어선 본관은 좌우가 대칭되는 H자형 평면의 중앙에 중세 시대 고딕 성관풍(城館風)의 4층탑을 두고 그 좌우로 1층에는 교무실, 2층에는 교실을 배치했는데 현재도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지붕은 박공형이며, 박공 부분에는 다락방을 두고 실내의 채광용으로 지붕에 돌출된 형태의 지붕창을 냈다.


▲ 중앙고등학교 서관



중앙고등학교 서관은 본관 서쪽에 지은 적벽돌 2층 건물로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했다. 서관은 적벽돌 외장 마감에 화강암을 일부 혼용해 고딕풍으로 벽면을 구성했다. 지붕은 박공지붕으로, 삼각형 지붕창을 두고 슬레이트 이음으로 마감했다. 본관 동쪽에 지은 동관은 서관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창문은 수평 아치로 되어 있으며, 돌출된 박공 면의 2층 창문은 뾰족 아치로 강조했다. 이들 아치에 화강암을 끼워 넣어 통일된 적벽돌 외벽 면에 변화를 주었다. 지붕에는 삼각형의 지붕창을 내고 굴뚝을 노출시켰다. 이 건물도서관과 같이 고딕풍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중등학교는 설립자에 따라 크게 선교 사학, 일제 관학, 민족 사학으로 나뉜다. 선교 사학을 대표하는 학교에는 이화여고와 배재고가, 일제 관학을 대표하는 학교에는 서울고와 경기고가, 민족 사학을 대표하는 학교에는 중앙고보 등이 있다. 특히 중앙고등학교 본관은 1919년 3·1운동의 진원지 중 한 곳으로 역사적 장소다.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 교육의 바른길을 잡아준 배움의 장으로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중앙고등학교. 당시 교장이던 김성수의 민족정신과 우리나라 건축가 박동진의 건축 정신이 합일되어 이루어낸, 민간인이 세운 학교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건물은 사적 제281호, 서관은 사적 제282호, 동관은 사적 제283호로 지정되었다.



● 중앙고등학교 관람 정보

·관람 시간 : 평일 개방 안함, 1·3·5주 토요일 13:00~18:00, 2·4주 토요일 09:00~18:00, 일요일·공휴일 09:00~18:00
·문의 : 북촌관광안내소(재동초등학교 옆) 02-2148-4160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자료 제공 서울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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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화유산 답사] 민족정신 어린 기념비적 건축물, 중앙고등학교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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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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