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이야기가 있는 도시] 나의 첫사랑, 서울 연가(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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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대한 내 첫 경험은 유치원 시절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강원도 홍천에서 춘천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기차로 갈아타고 서울까지 가는 동안 기차 안에서 삶은 달걀을 까먹으며 사이다를 마셨던 것. 그리고 한 장의 낡은 사진이 서울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남산 팔각정에서 아빠의 선글라스를 끼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사진. 우리 가족의 마지막 추억 속 한 장이다.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고 내 머리통을 두 손으로 잡아 번쩍 들어 올리며 작은딸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던 아빠는 내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기에 우리 가족 여행은 서울 남산이 유일했고, 그 서울행이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을 게다.

초등학교 때는 서울이 무서웠다. ‘서울에서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거나 ‘서울깍쟁이는 못 당한다’는 얘기를 늘 들었으니까. 한번은 초등학교 3학년 방학 때 서울 사는 친척 집에 놀러 가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누군가의 발등을 밟은 적이 있다. 내가 잘못했으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데, 되레 나는 서울 사람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왜 내 발 밑에 발을 놓느냐”며 어른에게 바락 대들었다. 그때 그 어른은 기가 막히는지 그냥 웃어넘기고 가던 길을 간 것으로 기억한다. 또 한번은 서울 친척의 자취방에 놀러 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자신의 티셔츠와 똑같은 걸 내가 입었다며 반가워했다. 그 말에 나는 “내가 아주머니 티셔츠를 훔쳐 입은 줄 아느냐”고 화를 내며 대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촌사람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스스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지레 어퍼컷(?)을 날려버렸던 것 같다.

혼자가 된 엄마는 자식은 서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울 태릉 쪽에 집을 지어 서울 유학을 강행했다. 중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서울 깍쟁이 애들 속에서 과연 내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두렵고 떨렸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 얘기에 겁먹은 나는 서울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마구 눈물, 콧물을 흘렸더랬다. 그러나 무시무시할 거란 예측과는 달리 서울 아이들은 순했다. 내 짝꿍은 크림빵을 항상 2개씩 사 와서 나 하나, 자기 하나 먹었다. 살림이 빠듯했던 어린 시절엔 먹을 게 귀해서인지 친구들에게 빼앗길까 봐 몰래 숨어서 먹곤 했는데, 서울 애들은 사는 게 넉넉해선지 선뜻선뜻 나눠 먹는 게 신기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명동에 있는 백화점이란 곳에 갔다. 그 곳은 내게 세상이 흔들릴 만한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예쁜 손가락장갑, 40가지 넘는 색깔의 크레파스, 깎지 않아도 되는 샤프펜슬, 하늘하늘한 샬랄라 원피스와 빨간 구두…. 나는 밤마다 백화점 가는 꿈을 꾸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엄마는 남대문 근처의 도뀨호텔 뷔페에 데리고 가셨다. 백화점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 모여 있었다. 빵이라곤 소보로빵과 단팥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고 예쁜 빵과 버터와 잼, 샐러드라는 걸 그때 처음 먹어본 것이다. 접시를 몇 번이나 비웠는지,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렇게나 먹고도 작고 앙증맞게 포장된 버터가 탐나서 몰래 2개를 가방에 넣어 나오는데 어찌나 뒤통수가 따가웠던지. 이후로 남대문 옆 도뀨호텔을 지날 때마다 훔친 버터가 생각나 마음에 찔리곤 했는데, 어느새 호텔이 없어져버렸다. 버터 2개 갚을 길이 묘연해졌다. 백화점과 호텔 뷔페를 경험한 뒤부터 서울은 나의 꿈이 되었다. 수도꼭지를 틀면 더운물이 나오고, 화장실은 수세식이며, 장작과 연탄을 때지 않아도 방바닥이 뜨끈한 도시. 지하철이라는 신문물이 지하로 쏜살같이 달리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도시.

서울에서 50년을 살았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방송 일을 했으며, 서울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서울에서 소년기와 청년기, 중장년기를 보내고 이제 예순이 넘어 노년의 시기(노년이라기엔 아직 이르지만)에 접어들고 있다. ‘만약 10대에 서울로 전학을 오지 않았더라면?’ 하고 가끔 상상을 해본다. 글쎄, 가지 않은 길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서울에서의 치열한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야멸차게 아나운서를 꿈꾸었고, 그 꿈을 향해 지독스럽게 열심히 준비해왔으며, 서울의 중심 여의도에서 방송 생활을 하며 나의 감각과 취향을 기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인생의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야라는 것은 결국 공간의 감각과 스케일 그리고 앞선 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의 발달한 문화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혹은 지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나를 지금껏 성장시켰으며, 더 나은 상태에 나를 두고자 하는 향상심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몇 해 전 제주도에 자그마한 집을 연세로 얻어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제2의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 틈만 나면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별빛같이 반짝이는 불야성을 이루는 한강 다리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여행도 좋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는 서울의 풍광은 더없이 미덥다. 제아무리 전국 곳곳에 산해진미가 있어도 내 한몸 마음 편히 쉴 곳은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내일을 계획하고 있지만, 컴퍼스의 중심같이 언제나 내가 돌아와 편히 숨 쉴 수 있는 도시, 돌아와서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서울이 있어 떠날 꿈도 꾸는 것이다. 미래를 꿈꾸게 했고, 그 꿈을 이루게 해주었고, 또 다른 꿈을 품게 해주는 서울은 나의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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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미
나이가 무색하게 젊다. 호기심과 에너지 가득한 삶을 지금도 살고 있다. 직접 기획한 여행 프로그램 ‘영미투어’는 오픈 30분 만에 마감되며,
좋아하는 물건을 선별해 함께 나누는 ‘영미상회’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놀 수 있을 때 놀고 볼 수 있을 때 보고 갈 수 있을 때 가고>,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이 있다.

사진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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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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