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문화 산책] 문학으로 서울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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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수록 소설 속 그때 그 시절의 서울이 새롭게 느껴진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은 주인공의 삶을 통해 풀어내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랜 시간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서울은 문학작품 속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 소설 속 주인공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색다른 감동을 전한다. 문학작품 속 서울의 모습은 당시의 생활상이나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서울과 서울 사람을 담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서울 곳곳을 바라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서울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서울에서 만나는 문학작품 속 그곳, 작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길을 조용히 걸어본다.

일제강점기(1910~1945년)

서울의 관문, 서울역을 만나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동소문은 한양도성 내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 가운데 북문과 동문 사이에 세워진 사소문 중 하나로 동소문은 지금의 혜화문이다. 동소문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고난을 겪었다. 조선총독부가 도로를 낸다는 이유로 동소문을 허물었기 때문. 반세기가 지난 후 1994년 현재의 혜화문으로 복원됐다. 다만 예전 자리에 이미 도로가 생겨 위치와 모양은 예전과 다르지만, 동소문 일대와 오르막길에서 인력거를 끌었을 김 첨지를 떠올려본다.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중략)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던가.”
“일 원 오십 전만 주십시오.”

큰돈을 벌게 해준 남대문 정거장은 지금의 구 서울역사다. 김 첨지는 남대문 정거장까지 가는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가던 도중 아픈 아내의 목소리가 떠오르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손님이 남대문 정거장에 내리자 이내 기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낯익다. 비 오는 날의 서울역. 지하철, 버스, 택시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과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등. 시대는 변해도 풍경은 그대로인 서울이다.


그때 그 시절의 청계천

박태원, <천변 풍경> - 1936

1935년부터 1936년까지 1년 동안 청계천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흐르는 청계천의 빨래터에서 아낙네는 빨래하고, 청계천 위로는 인력거와 자전거가 다닌다. 여름에는 ‘아이스케키’를 팔고, 겨울에는 ‘군밤’을 파는 소소한 일상을 표현한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약국집, 평화카페, 은방, 이발소 등 사람 사는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은 졸졸 흐르는 청계천에 자리를 잡고 읽어도 좋겠다.

전후 복구 시기(1950~1960년대)

언덕진 고개에 자리한 주택촌, 상도동

김광식, <213호 주택>

“잔잔한 계곡을 타고 자리 잡은 똑같은 형의 특호 주택, 똑같은 형의 갑호 주택, 똑같은 형의 을호 주택이 줄줄이 좌우로 마치 전차 기갑사단이 푸른 기를 꽂고 관변식장에 정렬하여 서 있는 것 같은 감이다. 관악산의 줄기가 병풍처럼 천여 호의 주택을 둘러쌌다. 이 주택촌을 상도동이라고 한다.”

1954년 4월 1일 창간한 순수 문예잡지 <문학과 예술>은 1955년 6월 <문학예술>로 속간되었다. 외국 문학 소개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신인 추천제를 두어 많은 신인을 발굴했는데, 1956년 6월호에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은 김광식의 <213호 주택>이 수록되었다. 이 소설은 자동화 기계의 도입으로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인쇄 공장 기사장 ‘김명학’을 통해 현대 기계문명 속 소외된 인간의 비극을 그린다. 시대는 1950년대 후반, 서울에 다양하게 공급된 재건 주택의 풍경과 그곳의 일상을 보여준다. 김명학이 사는 동네는 일제강점기부터 집단주택지로 개발된 서울 동작구 상도동으로,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건설한 재건 주택촌이다. 상도동에는 여전히 언덕진 고개와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자리한다. 똑같은 주택이지만 각자 인생을 걱정하고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이 가득한 상도동은 2020년, 지금도 따뜻한 동네다.


그 시절 아픔으로 가득했던 신촌과 서대문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1965

이야기는 추운 겨울밤, 서울의 한 포장마차에서 시작한다. 세상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연히 만난 ‘나’와 ‘안’ 그리고 이들과 합석을 원하는 ‘사내’. 사내의 괴로움이 시작되는 곳은 아내의 시체가 있는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이다. 소설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알려주는 전차는 비록 선로에서 마주할 수 없지만, 아쉬워하지 말 것. ‘서울역사박물관’ 광장에서 그 시절 전차를 만나볼 수 있다.

산업화 시기(1970~1980년대)

친구들과 함께하던 종로

강석경, <숲속의 방>

“부잣집 막내딸이자 대학교 신입생 소양은 음악을 좋아하고 꽃과 향초 모으기가 취미다. 강단도 있어 카페에서 버젓이 담배를 꺼내 피우기도 한다. 여성 흡연이 못마땅한 주인이 담배를 끄라고 요구하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맞서는 것도 예사다. (중략) 밤새 종로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황한다. 언니 미양이 나서 동생이 방황하는 이유를 캔다.”

이 작품은 1980년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회색빛 삶을 다룬다. 대학생 소양과 그 주변 인물의 다양한 삶을 조망하며 어떤 삶이 진실한 것인지 물음을 던진다. 주인공 소양은 가족의 삶의 방식, 세 자매의 삶의 방식,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의 방식을 대비하며 진실한 삶을 찾으려고 애쓴다. 가족 몰래 학교를 휴학하고 외박하는 소양을 외면해버린 가족. 언니 미양은 소양의 귀가를 기다리던 어느 날, 혜양과 함께 종로로 나선다. 소양이 잘 간다는 카페에서 남학생들과 합석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젊은이들의 삶을 엿듣는다. 그녀가 갔다던 카페는 ‘학림다방’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가족의 낙원이자 행복동이었던 중림동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1976

1970년대 산업화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의 참상을 우화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판자촌 동네인 중구 중림동을 ‘낙원구 행복동’이라 이름 붙였다. ‘난쟁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현대(1990년대~현재)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종로

황정은, <百의 그림자>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중략) /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눈에 익숙한 곳이 누군가에게는 쉽게 ‘슬럼’이라고 불리는 그곳에 여전히 사람이 산다. 2020년의 종로는 다채롭다. 세운상가와 같이 도시 재생 사업으로 탈바꿈한 건물, 옛 공구 상가와 카페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 등이 가득하다. <百의 그림자>는 서울 종로에 있는 낡고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두 남녀, 은교와 무재의 이야기다. 재개발로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곳을 터전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소개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J. M. G. 르 클레지오, <빛나: 서울 하늘 아래>

5.5평 지하철 한 칸의 작은 공간에서 주인공 ‘빛나’가 시선을 피해 구석 한편에 자리를 잡고 관찰한 서울의 모습을 만난다. 빛나의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는 이는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그는 201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오가며 ‘서울’이라는 도시에 흥미와 애정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서울의 하늘 밑을 걷는다. 구름은 천천히 흐른다. 강남에는 비가 내리고, 인천 쪽에는 태양이 빛난다. 비를 뚫고 북한산이 북쪽에서 거인처럼 떠오른다. 이 도시에서 나는 혼자다. 내 삶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은 어떨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숙한 표현으로 서울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 놀랍다.

서울 속 이육사의 흔적을 담다

소설가 고은주는 저항시인 이육사의 삶의 동선이 궁금해졌다. 2016년부터 이육사 시인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여러 자료를 모으고, 답사와 인터뷰를 거듭해 2019년 <그 남자 264>를 출간했다.
고은주 작가와 함께한 서울에서 작가의 흔적 찾기는 이육사의 옛집터인 종암동과 그가 걸었던 홍릉에서 이루어졌다.

이육사가 걸었던 홍릉 숲길.

#1. 청량리역~홍릉

청량리역은 이육사가 베이징의 일본 총영사관 부속 헌병대 감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아내와 어린 딸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소로, 당시 그는 온몸이 포승줄로 꽁꽁 묶이고 얼굴엔 용수가 씌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를 기리고 홍릉으로 향했다. 1943년 1월 1일, 이육사 시인은 신석초 시인과 함께 있었다. 중국에는 새해 첫날 눈을 밟는 ‘답설(踏雪)’이라는 풍습이 있다며, 홍릉까지 눈을 밟고 걸어가자고 했다. 홍릉 숲에 이르러 이육사는 신석초 시인에게 곧 베이징으로 떠날 것을 알렸다고 한다. 신석초 시인은 이육사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홍릉 숲을 천천히 거닐었다.

문화공간 이육사 1층 청포도 라운지.

#2. 문화공간 이육사~종암동 북바위 둘레길

2019년 12월에 개관한 ‘문화공간 이육사’ 입구에는 청포도 시비가 자리한다. ‘청포도’는 이육사가 종암동에 살 때 발표한 시다. 종암동 62번지는 이육사의 옛집터다. 옛집은 사라지고 그터엔 빌라가 들어선 까닭에 근처 적당한 곳을 물색해 건물을 지었다. 1층은 북 카페 형식의 라운지, 2층은 이육사의 생애를 보여주는 상설 전시장, 3층은 종암동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 4층은 옥상 정원으로 꾸몄다.

‘종암동 북바위둘레길’의 3구간인 ‘이육사시인길’은 600m 길이로, 시인이 살던 곳을 한 바퀴 둘러보는 짧은 코스다.

‘서울문학기행’ 프로그램

문학작품 속의 서울을 찾아가는 ‘서울문학기행’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에서 신청 가능하다. 올해 서울문학기행은 코로나19로 회당 참여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해 운영한다. 하지만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현장 해설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므로 누구나 문학작품 속 서울 곳곳의 모습을 온라인으로 둘러 볼 수 있다.
동영상 보러가기

‘서울문학기행’에서 선정한 문학 코스

정지용의 <녹번리> 녹번역-산골마을-정지용 시벽-정지용 집터
심훈의 <그날이 오면> 노들역-사육신묘-흑석동-심훈 시비-심훈 생가터
박태원의 <천변 풍경> 무교동 박태원 생가터-청계천-세운상가
박경리의 <불신시대> 정릉 한규설 가옥-정릉천-박경리 가옥-옛 청수장
이상의 <날개> 이상의 집-옛 제비다방-옛 낙랑파라-신세계백화점 옥상
이태준의 <달밤> 최순우 가옥-조지훈 가옥-간송미술관-이태준 수연산방-심우장
염상섭의 <삼대> 사직공원-매동초등학교-광화문-안동교회-정독도서관
이문구의 <장한몽> 당인리 발전소-경의선숲길-연희문학창작촌-연희초등학교
이희승의 <딸깍발이> 남산골한옥마을-이희승학덕추모비-필동 남부학당-장충단-호현당
윤동주의 <서시>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안산공원-북아현동 하숙집터-정지용 기와집

※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시설 이용, 프로그램 운영 가능 여부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시설 이용 여부를 미리인 확하고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잘 지켜주세요.

표다정 사진 인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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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0-09-01
관리번호 D000004974385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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