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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도시] 서울의 틈새를 누비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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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반드시 거쳐갈 수밖에 없는 곳이 한강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에서 자전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한강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따라 길고 잘 정비된 자전거길이 있기 때문이다. 출발지가 어디든지 상관없이 서울의 모든 길은 한강으로 통한다. 우선 한강으로 나가기만 하면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데만 열중할 수 있다.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얼마든지 오갈 수 있다. 그 덕에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랜 시간 별생각 없이 바라보던 한강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밤이 되면 환하게 한강을 수놓는 각양각색의 다리들을 지나치며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굴려보는 즐거움, 어떤 나들목은 근사한 그라피티를 볼 수 있고, 또 어떤 나들목은 시장을 목전에 두고 있어 군것질 한입 하고 오기에 최적이라는 정보들을 자전거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자전거는 다른 교통수단으로 가기 애매한 ‘틈새’를 다니기에 적합하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고, 그렇다고 차를 타자니 교통 체증과 주차가 걱정되며, 대중교통으론 닿을 방법이 없는 곳을 자전거는 갈 수 있다. 오로지 내 다리를 굴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매력적이다. 내 힘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정지된 세상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자전거를 통해 무언가를 찾고, 보고, 경험하려면 자전거를 움직이는 주체인 내가 열심히 발을 굴릴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종 예기치 않은 순간에 교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자전거와 가까워지고 나서부터 익히 알고 있던 서울의 면모를 새롭고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기 위해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잔잔한 한강을 따라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몇 시간이고 페달을 굴린 적도 많았고, 작정하고 집을 나서 저 멀리 부산까지 며칠에 걸쳐 이동한 적도 있다. 그 수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특별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서울의 남산과 북악스카이웨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곳은 서울의 라이더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라이더들에게 사랑받는 서울의 대표적 ‘업힐(오르막) 코스’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피부로 느낀 건 자전거와 함께 이 두 곳을 오르면서부터다. 자전거와 친하지 않던 시절, 가끔 남산서울타워 근처를 오르거나 북한산을 등산하기 위해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하나둘 지나가면 걸어가도 힘든 곳을 왜 자전거를 타고 오르고 있는지 의아했다. 처음 자전거를 구매해 여기저기 쏘다닐 때도 그렇게 높은 곳은 고려하지 않았다. 어쩌다 잠수교 정도의 야트막한 오르막을 만나면 한숨부터 푹 쉴 정도였다. 부러 그런 고도가 높은 곳을 찾는다는 건 내 사전에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에 익숙해지고 나니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정말 저기를 오를 수 있을까? 턱까지 차는 숨을 애써 골라가며 정상에 다다르는 기분은 어떤 걸까? 매번 물음표만 띄우던 나는 어느 날 큰맘 먹고 서울의 대표적 업힐 코스인 ‘남산-북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는 희열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남산 길은 남산서울타워 바로 밑까지 이어진 일방통행 길을 따라 오르는 1.8km의 짧은 코스로,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곳이 있고 화장실도 있을 뿐 아니라 다운힐(내리막)에서는 반대편 차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히 내려올 수 있어 이제 막 자전거에 입문한 사람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남산에서 내려와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소위 말하는 서울의 중심지를 거쳐 도달할 수 있는 곳인 북악스카이웨이는 서울의 대표적 명소이기도 하다. 성북동에서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백석동이나 사직동에서 시작한다. 북악은 일방통행이 아니기에 오를 때는 물론이고 특히 내려갈 때 안전에 각별하게 주의해야 하며, 3km 남짓의 제법 긴 거리지만 고도가 높은 대신 경치가 좋고,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정상에는 시원한 음료를 파는 편의점도 잘 구비되어 있어 성취감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는 교훈을 자전거를 타면서, 그리고 자전거와 함께 서울 곳곳의 오르막을 누비면서 깨닫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타는 듯한 허벅지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페달을 밟아 올라간 자에게만 허락된 서울의 전경은 한번 맛보면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들숨과 날숨을 물고 들어오는 맑은 공기는 덤이다. ‘해냈다’는 자부심을 끌어안고 안전하게 내려와 다시 푸른 한강 곁으로 합류할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전거가 아니면 몰랐을, 자전거와 함께라서 행복이 배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만난 우연의 순간들은 결국 미래의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것이다. 오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들목을 지나 쭉 뻗은 한강 길로 달음질한다. 오늘의 자전거는 나에게 어떤 즐거움의 틈새를 유랑하게 만들까 고대하면서 헬멧 끈을 조이고 힘차게 페달을 굴린다.


강민영
글을 쓰고 엮는 사람. 영화 매거진<CAST>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프리랜스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다.
에세이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전력질주> 등을 썼다.

강민영 일러스트 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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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10-05
관리번호 D0000049099248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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