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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로샤 검사, 메르스, 그리고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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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특별기획



심리검사도구 가운데 로샤 검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일정한 무늬를 종이에 찍어 다른 표면에 옮겨 붙이는 장식 기법) 방법을 이용해 만든 그림을 피검사자에게 보여준 후 그 그림이 무엇처럼 보이는지를 묻는 것인데, 그림은 정확히 어떤 형태를 갖고 있지도, 특정한 사물이나 모양을 나타내지도 않기 때문에 정답이란 없습니다. 다만 피검사자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같은 그림이라도 서로 다르게 보이게 되고, 특정한 반응은 특정 성격이나 심리 상태와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하고, 모호하고 애매한 지각 자극을 준 다음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해 피검사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검사 방법을 투사검사(投射檢査)라고 합니다. 지능검사와 같이 질문과 정답이 있고 정상으로부터 벗어난 정도를 수치화시켜 보여줄 수 있는 구조화된 검사방법과는 달리 피검사자 스스로 의도적으로 방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의 내적 심리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로샤 검사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요즘 세간의 화제는 메르스가 아니냐고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메르스가 우리 사회에는 마치 로샤 검사의 카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은 이 몹쓸 바이러스가 소개되면서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성격과 마음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이 카드를 보았던 사람들은 아주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 카드에서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고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이 카드를 본 사람들은 처음 보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약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두려움이 사라질지, 그 불안이 합리적인 수준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카드를 본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두려움이 너무큰 나머지 그들은 카드를 다 보지도 못한 채, 처음 카드를 보고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맹렬하게 비난했습니다. 누군가 카드에 대해 설명을 해주려고 했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본 것은 카드의 일부이며 전체가 아니라는 것,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은 너무 지나친 것이라고 알려주려 했지만 그런 말들은 처음 카드를 보았던 사람들의 무책임한 낙관론과 똑같다며 무시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사회 전체가 과도한 불안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메르스가 남긴 아픈 상처로부터 무엇인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메르스와 유사한 카드를 보았을 때는 정상적인 수준의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메르스가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메르스에 대한 지금의 대응책이 괜한 호들갑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확산을 막기 위해 정보도 알려야 하고, 격리도 필요하며,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구별하여 화장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 다니는 의료진의 아이들이 등교 거부를 당하고, 확진 환자가 나온 지역의 사람이라고 해서 만나기를 꺼리며, 병원에 갔다가 감염될 것이 두렵다며 심한통증에도 방문 밖을 나가지 않으려는 이들의 모습은 과도한 반응 수준입니다.


정확한 정보와 이해, 그리고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나친 낙관에 빠져 나는 아무 일 없을 것이라며 무분별하게 행동해서는안 됩니다. 반대로 길거리만 다녀도 바이러스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생각해 집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려고 할 일도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 전염되는지,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실천해 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메르스 카드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카드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어찌 되었든, 메르스는 사라지겠지요. 두려움에 떨던 시민들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메르스가 남긴 아픈 상처로부터 우리가, 이 사회가 무엇인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메르스와 유사하게 생긴카드를 보았을 때는 ‘정상적인’ 수준의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서울시 메르스 피해자 심리지원 서비스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는 메르스 유가족 및 격리자들의 우울, 불안, 불면 등을 돕기 위해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는 격리 생활 등에서 찾아오는 고통에 대하여 정신보건전문 요원들이 전화 또는 화상으로 상담하고,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경우 정신의료기관에 연계하는 등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폭넓게 제공된다. 더불어 격리 생활의 행동지침, 극복비결도 안내한다.

     
  • 메르스 관련 전화상담 1577-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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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서울병원 심리위기 지원단 02-220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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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진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이자 용인병원 정신겅강의학과 전문의, 정신보건을 위한 젊은 정신과의사들의 모임 대표 등으로 활동하여 시민들의 정신겅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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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로샤 검사, 메르스, 그리고 투사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703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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