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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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랑

나는 틈틈이 서울 걷기를 하여 책으로 묶어 낼 꿈을 갖고 있다. 재일 작가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나 이지상이 홍콩을 집중 취재하여 쓴 <도시탐독>을 보면서 언젠가 꼭 서울 이야기를 써 보리라 다짐한다. 맛깔나게 쓴 그들의 글에서 도시를 사랑하지 않고는 써낼 수 없을 열정을 느낀다.
서울 사람으로 남아 서울에서 나의 꿈을 펼칠 것이라는 내 스무 살의 포부를 실현시켜준 서울. 고집 세지 않으면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개방성과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서울의 세련된 매력에 나는 조금이나마 향수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젊음이 녹아 있는 곳, 서울은 내게 두 번째 고향인 셈이다.
문명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도시, 그 이상적인 아우라가 풍기는 서울….
서울은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살펴도 새록새록 볼 게 나오는 매력 있는 곳이다. 왕과 그 왕가의 전통을 품고 있는 고궁, 고층 건물이 어우러져 있는 삼청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을 탐험하는 외국인들에게서는 묘한 우정마저 느끼게 된다.
방학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들도 줄곧 눈에 띈다. 서너 살 아이부터 초등학생들이 고궁이나 인사동, 박물관, 미술관으로 나와 사진 찍고 조잘거리는 행복한 풍경에 왠지 모를 감동을 받기도 한다.
나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덕수궁이나 동대문, 남대문 새벽시장 등을 데리고 다니며 그 살아있는 도시의 표정들을 보여주곤 했다. 학원과 숙제에 매였던 아이들은 그 역동성 넘치는 정경에 어찌나 신 나 하던지 한동안 방학이면 행사처럼 서울 골목 누비기를 하고 다녔다.
지금 나는 출근길 아침마다 명동 백병원 버스 정류장에 내려 명동성당 앞길을 걸어간다. 출근하는 젊은이들 틈에서 보너스 같은 활력을 얻으며 나의 잃어버린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보수공사 중인 도로를 지나면 벌써 상가들은 문을 열고 식당들은 이미 아침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꾸물꾸물 살아나는 골목을 지나 을지로역에서 다시 출근 지하철을 타지만 그렇게 잠깐이나마 걷다 보면 나는 늘 되살아나는 나의 20대와 마주치며 춤을 추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명동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도록 서울의 파수꾼 노릇을 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명동성당, 클래식 음악다방 필하모니,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남산도서관 가는 길, 드라마센터와 눈 내리는 겨울 처음 맞춘 부츠를 신고 하염없이 걷던 을지로 통…. 어느 곳 하나 그 시대 젊음의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다. 대학생 때 우리는 서울 시내를 많이 걸어 다녔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에 특히 많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 종로 거리, 청계천. 방학이 시작되면 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탔던 동대문 터미널. 그가 휴가를 끝내고 돌아가야 했던 불광동 버스터미널을 어찌 잊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대학 졸업과 그의 군 제대를 앞둔 겨울날. 우리는 장충공원을 지나 남산을 걸어 올랐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동안 계단을 오르니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던 것 같다. 캄캄한 저녁, 발소리까지 크게 들릴 만큼 주위는 가라앉고 그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맹세를 하자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변하지 말고 서울에서 자리를 잡자’는 다짐이었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던 우리의 ‘달을 걸고 했던 남산의 맹세’는 효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가끔 우리는, 도보 신혼여행을 떠났던 과학자 퀴리 부인처럼 도보여행을 떠났다.
자연은 물론 도시를 걷는 일도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힘과 치유를 선물한다. 그리고 서울은 이곳저곳 쏘다니며 영감을 얻기에도 알맞은 곳이다.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서울 시내 산을 찾고, 울기(鬱氣)를 털어버리고 싶다면 축제가 벌어지는 도심으로 발길을 돌리면 될 일이다. 걸어 다녀야 곳곳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서울을 사랑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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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28036895 등록일 2016-11-15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라이선스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