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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북촌산책_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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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가래떡 썰 듯 한 달 두 달이 금세 지나간다. 이렇게 세월이 빨리 지나도 되는지 자문하며 슬픈 기분으로 집을 향해 걷는다. 내가 사는 북촌 아래 동네는 집들이 기껏 높아봐야 3~4층 높이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서 낮은 건물들이 있는 곳. 내가 우리 동네라 부르는 지역은 늘 다니는 인사동 건너편부터 삼청공원까지의 산책길이다. 산과 고궁이 보이고 노을이 집과 집 사이로 고개를 내밀다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늘 만끽하며 산다.


한때 서울에는 부자들만 사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적은 경비로 아름다운 한옥집에서 2년 살아본 적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내 서울살이는 이제 10년이 되었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지만 우리 주인댁은 양심적이라 그나마 낫다. 여기서 계속 오른다면 서울 주인들은 잔혹하다 따질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이 동네를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5년이 넘도록 한 동네에서 생활하다보니 이곳 사람들이 가족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늘 동네분들과 인사하며 지내니 더욱 그렇다.


저녁만 되면 우리 동네는 커피 볶는 냄새로 가득하다. 웬 커피집이 그렇게 많은지 꼭 사람들이 커피만 마시며 사는 듯 느껴진다. 왜 커피 볶는 냄새가 가득 퍼져가는 시간이 저녁 무렵이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노을 질 무렵의 커피 냄새는 그리움의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동네 커피집에서 사랑하는 이와 마시고 싶지만 아직 그런 인연을 만나지 못해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연애는 안해도 연애와 관련된 시를 쓰고, 키스를 못해도 키스를 닮은 달콤한 과자를 먹을 순 있다. 우리 동네에는 포르투갈식 나타를 꼭 닮은 에그타르트 가게가 있다. 유명 드라마의 촬영을 한 후 이곳 가게를 지날 때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곤 한다.


내 에세이집에서 포르투갈식 나타와 관련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포르투갈식 나타는 뜨거운 기운이 어느 정도 사라진 후 계피 가루를 뿌려 먹으면 매혹적인 맛이 더해진다. 방송 출연 차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1837년 개업한 유서 깊은 나타 전문점 ‘파스테이스 데 벨렝’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촬영을 위해 나타를 만드는 과정 등 모든 것을 보여주던 가게 지배인은 여러 종류의 나타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빵의 겉은 마른 장미 꽃잎 같아 달콤하고, 걸쭉한 안쪽을 먹는 느낌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나누는 기분이에요.”

포르투갈식 나타를 먹고 난 느낌을 지배인에게 전하자 그는 비유가 아주 적절하다며 기뻐했다.


자신들의 전통 있는 음식을 먼 나라 동양인이 좋아해주니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키스처럼 달콤한 그 맛을 느끼려고 포르투갈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동네 에그타르트 가게에 들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동네 길가 커피집에서 퍼져 나오는 커피 향기를 맡으며 나는 산책을 간다.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향기를 지닌 이곳에서 무척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오래된 전통의 한옥이 하나 둘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포르투갈식 나타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과자집 지배인처럼 우리도 한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 한옥들이 자리한 이 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나는 자부한다. 또 우리 동네 길과 같은 한국의 전통 길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지켜 가길 간절히 바란다. 이곳에 살기 전 미리 이 곳 길을 다니며 쓴 시가 있다. 제목은 ‘사랑의 인사’.


아주 오래전에 목성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울었다는 사람이 생각나요
그후 저 하늘 너머는 어떨까 궁금했어요
우주의 질서를 뱀처럼 또아리 틀고
이렇게 은밀히 별들과 연결됐다니, 흥미롭군요
운명선을 닮은 비행선이
저 멀리 흰 선을 그으며 사라지네요
별 점 보고 돌아가는
안국동의 해질녘
찰나의 내 육체
시골길 골목길 아스팔트길 고행길
길이란 길 모두 맛보며
내 몸 속에 사는 사자랑 달이랑 꽃게랑 노래하고
이승의 슬픔을 흔들며 어여쁜 추억의 한지를 쌓을게요
당신이 잘 지내길 빕니다


봄꽃 향기 짙게 퍼져 갈 때 서울의 길을 모두 다니며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며 행복에 젖고 싶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서글픔도 기쁨으로 번져 가슴이 흔들리는 걸 느끼면서




▲ 신현림

수필가 겸 사진가.

 
시집 『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를 비롯해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등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  『다시 사랑하고 싶은 날』을 출간했다. 이 외에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등 3회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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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북촌산책_신현림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79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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