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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이유_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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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 시민 노릇을 해 본 것은 딱 일 년뿐이다. 거의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로 이사 와서 세간을 푼 곳은 영등포구 대림동이었다. 신기하게도 서울에 살던 매형이 돌아다니다 점 찍어둔 집도, 식구들보다 먼저 서울에 올라와 짬짬이 이사할 집을 찾아다니던 내가 마음먹은 집도 그 반지하 전세방이었다. 말이 반지하이지 지상으로부터 50cm가량 묻힌 정도였으니 사람 좋던 주인 내외가 들으면 이만저만 서운해 하실 것 같지 않다. 거기서 우리는 큰애의 돌을 치렀다. 큰애의 돌을 맞아서 회사 직원들을 초대했는데 지금도 그들의 반응이 잊히질 않는다. 돌잔치 때 집으로 초대를 받아 본 적이 그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시골 살 때 너무도 빈번한 일이라 사실은 내가 더 놀랐지만. 그래도 그들은 흔쾌히 장대비를 맞으며 찾아와주었다.


내가 행정구역상 서울에서 등을 눕힌 적은 그렇게 일 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서울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고, 술을 마시고, 모임을 가졌다. 따지고 보면 서울을 벗어나 거처를 서울 인근으로 옮긴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느닷없이 서울에 올라와서 밥벌이를 하게 된 것도 우연한 계기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안 맞게 되는 일은 그 당시에는 언제나 우연이지만 그 우연들을 죽 꿰어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모두 필연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연에서 필연으로, 그리고 다시 필연 속에서 우연을 사는 것일까?


내가 다시 서울을 떠나 살기로 마음먹은 것은 IMF 구제금융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다행인지 유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구제금융의 후폭풍 속에서도 내 일자리는 아주 약간만 훼손되었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저 황량한 세계로 걸어 나가지 않아도 되었으나 나는 벌통 안처럼 안전한 곳이 싫었다. 유달리 모험을 좋아하거나 성격이 진취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탈서울에 대한 염원 같은 게 있었는데 어쩌면 그때 단호한 실존적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IMF가 우리 사회에 그 상흔을 깊이 남기기 시작한 시점에서 꾀한 탈서울 기획은 여러 사람에게 위험하게 보였는지, 나는 파도 같은 반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탈서울 프로젝트는 약간 모양이 빠진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서울을 떠나기는 했지만 일 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서 밥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지하철역에서 내려 안양천을 걸으며 다시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서울을 떠나서 지낸 일 년의 상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것은 확실치 않으나, 서울이라는 공간이 인위적으로 떼어낸다고 해서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랬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거 이렇게 되면 정말 천생연분이 되는 것인가?)


그후로 나름 열심히 서울에서 일상을 꾸려나갔으나 사람은, 아니 생명은 자연과의 관계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단절시킬 수 없는 법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서울이라는 공간을 자연의 타자로 설정한 느낌인데 내게 서울이란 대략 문명이란 말과 이음동의어 정도가 되는 것도 같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이 문명을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럼 다른 생명체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들, 즉 나무나 새, 그리고 냇물이나 구름 없이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이 질문은 난처할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의 상상력을 넓힐 수도 있다. 서울은 내게 아직까지도 그런 곳이다.

얼마 전 서울을 떠나 함께 삶을 꾸렸던 지인과 함께 때 아닌 낮술을 마시게 되었다. 아마 함께 술자리를 가진 게 십여 년 정도 될까. 그도 나도 그 시절의 상처가 남아서 애써 쓰라림을 감추려는 마음 쓰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우리의 계획과 의도대로 꾸려나가기에는 그나 나나 젊디 젊은 때였다. 막걸리가 수차례 돌자 그가 나에게 다시 서울을 떠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술김으로 말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아마도 어쩌면 서울에서만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서울 생활은 어때? 아시잖수. 그럼 왜 서울에 계속 살겠다는 것이야? 서울을 벗어나면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무슨 말인지 알 만허이.


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서울 생활에 대한 이 삼류 시인의 단상이 얼마나 근사할까, 이런 게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시민이 되었든, 아니많이 늘어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서울이 삶의 기능적인 면 이상을 추구하고 또 실행하고 있는지는 확답을 못 내리겠다. ‘과연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서정은 살아 있는가’가 시인들이 갖는 가치 척도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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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이유_황규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81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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