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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식] 도시의 인간, 인간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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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청계천을 따라 얼마간 걸어가면 전태일의 동상이 보인다. 평화시장의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가혹한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몸을 불살랐다. 40여 년 전이다. 오늘날 평화시장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전태일이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피를 쏟아가며 일하는 어린 소녀들은 이제 그곳에 없다. 평화시장은 낡고 한산한 도매상가가 되었다. 전태일은 시장의 상인들을 자본가의 앞잡이라고 불렀지만, 다 옛이야기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영세 자영업자’라고 부른다. 한때 왕국과 같은 번영을 누리던 시장은 인근 쇼핑몰의 내려다보는 높이에 납작하게 짓눌려 가여워 보일 지경이다. 도시는 변한다. 스스로 살아 있는 것처럼…. 섬유산업의 전성기였던 1960~7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풍경이 동대문 평화시장이었다면, 전자산업 위주로 경제가 재편된 1980~90년대 서울의 대표적 풍경은 용산 전자상가다. 80년대 용산의 한강 건너 맞은편 여의도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나는 매서운 강바람에 옷깃을 싸매며 원효대교를 건너서 용산 전자상가까지 걸어 다니곤 했다. 앙상한 철골 구조의 고가를 덜덜 떨며 걸어 내려와 노점에서 어묵 국물을 한 잔 마시고 나면,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전자상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조명 가게, 음향기기 가게, 컴퓨터 가게 등 게임 가게. 모든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호객 행위에 열을 올리는 점원들이 팔목을 한번씩 붙들었다. “찾는 거 있어?” 질문에는 대꾸를 삼가야 했다. 일단 말을 붙였다간, 욕설을 뒤집어쓰기 전엔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손님이 등을 돌려 떠난 자리에 침을 뱉는 상인들도 더러 있었다. 점원들은 하나같이 위협적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고용된 이유였을 것이다. 물정 모르는 어린 고객이었던 나는, 제 가격에 제대로 된 제품을 구입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제 돈 주고 산 게임은 불법 복제품이었고, 워크맨은 중고였으며, 흥정은 시작조차 해보지 못했다. 경제가 성숙하면서 기업들이 직영 유통망을 확대하기 시작하고, 인터넷 구매시장까지 열리면서 용산 전자상가는 존재 가치를 잃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간신히 살아남은 소매점들은 물류 창고 혹은 인터넷 유통 거점으로 변했다. 이제 그곳을 걸어도 팔뚝을 붙잡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사람이 없다. 주차장 구석에는 금이 가고 먼지가 쌓인 폐가전 제품이 뒹굴고, 햇빛이 비스듬히 기어드는 차양 아래서는 물류관리 직원들이 모여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 연기를 내뿜을 뿐이다. 평화시장을 닮은 가라앉은 공기가 용산 전자상가에도 감돈다. 나는 그 공기에서 고요한 피로의 냄새를 맡는다. 도시가 또 변한 것이다.

청량리역, 영등포역, 서울역, 용산역. 서울 동서남북의 기차역 근처에는 오래전부터 비슷한 형태의 상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침에는 상경한 사람들이 맛없고 비싸기로 악명 높은 역전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밤에는 귀향하는 사람들이 기차 시간까지 역 뒤편 사창가를 배회하는 곳. 하지만 국토를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는 고속열차가 도입되고 철도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국철역 상권의 모습도 격변했다. 역사에는 대형 백화점과 고급 식당가가 들어섰고, 인근에는 마천루처럼 높다란 고급 주거지역이 생겼다. 시와 정부는 하얀 피부 위에 솟아난 여드름한 점처럼 국철역과 간선도로 사이의 금싸라기 땅을 차지하고 있는 사창가를 폐쇄하려고 압박했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보진 못했다. 도시 재개발 정책이 추진된 2010년 이후에야 국철역의 사창가들은 차례차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재개발의 기대 아래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부동산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던 포주들이 스스로 자리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이번에도 먼저 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도시다. 의문이 생긴다. 도시는 삶의 조건을 따라 재편되는가? 아니면 반대로 삶의 조건이 도시를 좇아 재편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도시의 인간으로서 살고 있는가? 공간과 인간의 주객이 바뀔 때 삶은 양상이 아니라 개념이 다른 것으로 변한다. 건축가 이영범은 저서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에 이렇게 썼다.
“도시의 죽음에는 오직 장소의 죽음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도 도시는 장소의 죽음을 발판으로 삼아 영원불멸의 삶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나를 판단하기 어려운 지금, 이 순간의 도시에서 진정 살아 있음의 가치는 만들어지는 것들의 언어가 아니라 만드는 이의 언어일 것이다.” 가장 높은 건물, 가장 큰 백화점, 가장 비싼 땅. 도시를 조직하는 언어는 쉽게 인간의 관점을 배제시킨다. 그래서 공간이 수명을 다하면 삶의 기억도 소멸해버린다. 그것만으로 도시는 충분한 것일까? 60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60년 전의 삶조차 가물가물한 도시, 앞으로 또 60년 후의 사람들은 우리가 이곳에 살았음을 기억해줄까? 언제쯤이면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도시를 기록할 수 있을까?





글 손아람(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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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5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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