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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식] 달동네 시절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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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처음 본 것도 많고 유별나게 겪은 일도 부지기수고 만난 사람도 어마어마하지만, 살았던 동네들이 가장 애틋하다. 내가 서울 시민으로 산 것은 지방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상경했던 스물여섯 살 때부터 수도권 임대아파트로 내려간 서른여섯 살 때까지 딱 10년간이다. 시골 출신이 대개 그렇듯 내 한 몸 누울 곳을 찾아 달팽이처럼 옮겨 다녔다.

봉천역 근처. 선배에게 얹혀살았는데 바퀴벌레를 처음 보았다. 그전에도 바퀴벌레를 보기는 했지만 ‘이게 그 바퀴벌레구나’ 할 만큼 거대한 놈은 처음이었다. 공덕역 근처. 공덕역 부근은 화려한 빌딩 숲으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대기업 빌딩 아래에서 주점가와 저택들을 지나 높은 곳의 사글세 방까지 올라가노라면 다단계를 밟는 듯했다. 안국역과 비원 사이에 솟은 산언덕. 그 유명한 궁궐과 큰 부자들이 산다는 저명한 동네 사이에도 달동네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재개발되기 전의 답십리. 거기는 평지에 집이 밀집되어 있었다. 집과 집의 간격은 1m가 될까 말까 했다. 집과 집은 바둑판처럼 정렬돼 있어 큰비가 내리면 집집 사이에 수로가 생겼다. 창문 아래로 물 흘러가는 게 보였다. 부엌 겸 거실 공간은 반지하처럼 파여 있었다. 그 방 두 개짜리 수백 호는 공중화장실을 함께 썼다. (서울에서 겪었던 것 중에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그 공중화장실을 꼽을 테다. 남녀 공용인데다가 여섯 칸밖에 안 되었다. 그 많은 주민과 포장마차촌 주객들이 함께 이용하다 보니 24시간 형용하기 어려운 에피소드가 속출했다.)

그리고 아현동 340-1번지. 나는 2005년, 2호선 아현역과 5호선 애오개역 사이의 산언덕 마을에 살았다 내가 화려한 빌딩 숲에서 일하는 동안 처자는 그 공간에서 인내해야 했다. 혼자 몸으로 자취하며 잠만 자는곳이었던 달동네와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똑같은 번지수를 가진 집들이 여럿 있었다. 시골이니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현동 ‘340-1번지’라는 주소를 가진 집이 쉰 집은 넘는 듯했다. 내가 세든 집이 1호인데 몇 호까지 있는지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마을 분들도 자세히 몰랐다. 한 달 동안 내 집을 잘 못 찾았다. 배달을 시키거나 기사님을 부르면 집을 제대로 가르쳐 줄 수가 없었다. 골목길에서 휴대전화에 악쓰며 기다려야 했다.

집들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위층 소리와 골목길 맞은편 집 소리, 옆집 아랫집 소리가 공중에서 아무렇게나 뒤섞였다. 온갖 미담과 애환과 싸움을 청취하고 목격할 수 있었다. 딱 서민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였다.

아이를 안고 업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본 적이 있다. 다다귀다다귀 붙은 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파트 비슷한 빌라에서부터 각양각색의 단독주택이 별의별 모양새로 촘촘하게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산악경주로 같은 차도가 나 있었고, 차도 위에는 또다시 빽빽한 집이었다.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언덕에 움막으로, 판잣집으로 깃들었다. 그 움막과 판잣집이 수십 년 세월을 거쳐 진화했고, 진화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었다. 한참만에 기진맥진해 도달한 꼭대기에는 모래밭 놀이터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인지 뜬금없게도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책이 생각났다. 아래에 신비한 절경처럼 펼쳐진 집들이 오로지 정상을 향해 꾸물꾸물 기어오르는 애벌레 같았다. 내려오다가 기어이 길을 잃었고, 내려가 보니 이대역이었다. 큰길을 따라 아현역으로 돌아왔는데 그쪽에서 보아도 꼭대기까지 오밀조밀한 달팽이집이었다. 저 산언덕에 대체 얼마나 많은 집들이 있는 것일까, 자주 감탄했다.

집에서 백 걸음만 내려가면 아현시장이었다. 시장에 가면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서울 한복판의 재래시장은 몇 개의 시골 시장을 합쳐놓은 것처럼 복잡다단하고 시끌벅적했다. 근처에 대학교가 많아서 오고 가는 청춘도 허다했고, 아현동에 사는 청춘도 부지기수였다. 청춘들이 발산하는 세련된 활기까지 가미되어 시장은 더욱 빛이 나는 듯했다.

내가 살았던 달동네들은 지난 10년 새 모두 소멸했다.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거나 공사 중이거나 재개발 예정지로 을씨년스럽다. 재개발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한때 달동네 주민이었던 이들에게 아옹다옹하며 서민적으로 살았던 삶터는 으뜸가는 서울 기억일 테다. 자신들이 서울에서 가장 어려웠지만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를 어떻게 잊을까!





글 김종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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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식] 달동네 시절은 영원하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2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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