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이슈 인터뷰] “역사를 알아야 나라를 사랑하는 힘이 생깁니다”

문서 본문

3대에 걸쳐 항일 투쟁을 해온 집안에서 태어난 오희옥 지사는 암울하던 일제강점기를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보냈다. 열네 살 때부터 한국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오 지사는 젊은 세대에게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요즘 어린 사람들은 광복절이나 6·25전쟁도 잘 모르고, 일본이 어떻게 침략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
젊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요즘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연 오희옥 지사는 일제강점기에 경험한 항일 투쟁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집안 사람 모두가 항일 투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오지사 역시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나섰다. 고작 열네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 살 위의 언니 오희영 지사와 함께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 수집과 일본군내 한국인 사병 탈출을 도왔다. 2년 후 청년공작대가 광복군에 편입된 다음에는 아동 교육과 가두 선전 등을 통해 항일운동을 계속해나갔다.
“그때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나서서 항일 연극이나 무용 같은 것을 통해 광복군이 힘을 내게 도왔지. 우리가 항일 투쟁에 열심인 모습을 보고 중국 장개석 총통이 목숨을 바쳐 항일운동을 하는 한국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부러워 할 정도였다니까.”
오 지사의 어머니 정정산 여사 역시 홀로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해 광복군을 지원하며 ‘만주의 어머니’로 불렸다. 언니와 형부는 광복군에 가입해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아버지는 김구 선생의 심복이라 할 수 있었어. 김구 선생을 도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교관으로 일하셨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윤봉길이나 안중근 열사가 한 특수 임무를 맡아 하시느라 해방될 때까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어.”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가족 모두가 힘쓴 오지사의 회상을 듣노라니 역사가 요동치는 대하드라마가 따로 없다.

평소에도 순국선열의 희생을 생각해주길
오희옥 지사는 1926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지역 의병장으로 항일 투쟁을 한 할아버지 오인수 씨가 아버지 오광선 지사를 데리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다 힘들었지.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이 모여서 함께 생활했는데 그 형편이 오죽했겠어? 그래도 함께 지내던 아이들은 다들 중국 학교에서 유명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도 참 많아.”
달리기, 수영 등 체육에 능하던 오 지사는 도 단위 달리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고 수영 대회에 참가해 입상하면서 지역신문에 이름이 나기도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지금도 여든일곱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을 간직한 오 지사는 젊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반드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쳤다.
해방 후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교편을 잡은 오 지사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고 한다. 6월 25일이 되면 학생들을 데리고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를 하는 등 항상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했다. 지금도 오 지사는 한국독립유공자협회 같은 광복 관련 단체에서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현재 오 지사 같은 독립 유공자는 3명의 여성 지사를 포함해 97명이 생존해 있다.
기념일에만 독립운동가를 떠올리지 말고 평소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기억해달라는 오 지사의 바람은 모든 독립운동가의 바람이 아닐까 한다.





글 이선민 사진 강민구

문서 정보

[이슈 인터뷰] “역사를 알아야 나라를 사랑하는 힘이 생깁니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709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