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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제]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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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볼로냐는 인구 40만의 도시로 1인당 GDP는 4만 달러를 상회하고, 평균 실업률도 이탈리아 전체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볼로냐가 탄탄하고 안정적인 지역 경제를 갖춘 비결은 협동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볼로냐 지방에서 레가코프(LegaCoop)는 지역 공동체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의사 결정과 제3섹터의 복지뿐 아니라 지역 산업과 경제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상위 조합 형태다. 레가코프에 가입한 협동조합이 300여 개에 이르고, 2만5000명의 직원과 40만 명의 조합원이 있다. 볼로냐 시민이 약 42만 명임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시민이 협동조합 조합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 연합회 아래 다양한 업종의 협동조합이 소속되어 있어 상호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소속 조합원에 대한 교육 훈련과 신생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한다. 1992년 협동조합법 개정으로 출자조합원 제도(이자를 목적으로 협동조합에 출자할 수 있는 제도)가 인정되었고, 협동조합 개발 기금(코프 펀드)이 창설되어 금융 기능까지 갖추어 명실상부한 협동조합 중간 지원 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볼로냐 지방이 지속 가능한 협동조합의 생태계를 갖춘 데에는 이러한 지역 연합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볼로냐 지방을 방문하면서 이곳 협동조합의 대가로 알려진 볼로냐 대학의 자마니 교수와 협동조합 발전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자마니 교수는 서울의 협동조합 육성 정책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는데, 토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 중 하나가 협동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크게 인위적으로 출발하기보다는 작지만 성공 모델을 만들어 이것이 확산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 볼로냐 시민은 대부분 한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옛 그림을 복원하는 볼로냐 인페르노 거리의
`누오바 보테가 델 루초` 공방/볼로냐의 아드리아티카 소비자 협동조합의 매장

지역 밀착형 신용협동조합
볼로냐 지방의 또 다른 특징은 신용협동조합이다. BCC라는 신용협동조합을 방문하면서 이곳의 협동조합 금융 생태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BCC는 전국 420개의 신협, 4,300여 개의 창구를 보유하고 조합원만 115만 명에 이르는 연합 조직이다. 개별 신용협동조합이 상향식으로 연합 조직을 구성하고 15개 지역이 참여하는 형태이며, 에밀리아로마냐 주만 23개 신협과 직원 4,200여 명이 있다.
초기 BCC에서는 농민 대상 상품부터 시작해 수공업자, 이민자 등 지역 내 약자를 위한 대출 상품을 개발했고, 이후 청년과 노인을 위한 상품 및 환경 관련 상품을 개발(전담 전문가 보유)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없으며, 세금 공제(농협의 경우 이익의 80%까지 공제) 같은 제도상 지원을 받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 정부와 정기적 회의(위원회 구성)를 통해 농민, 수공업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지 상의하고 결정하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진 발생 시 기업 재건을 위해 무이자로 정부에서 대출하도록 상호 협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협동조합 금융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이탈리아 같은 지역 밀착형 신용협동조합의 역할이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협동조합은 955개 조합, 586만 조합원, 50조 원의 자산을 보유해 외형상 상당 규모의 역량을 갖춘 상태지만, 협동조합 금융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볼로냐 지방은 보육 서비스의 질이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카디아이라는 돌봄 서비스 협동조합을 방문했다. 카디아이는 해고된 유치원 교사, 간호사, 전문 교사가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1985년에 설립한 노동자 협동조합이다. 카디아이에서는 수준 높은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에 대한 전문 지원과 안정적 수입을 보장하고, 서비스 제공과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연구 및 교육을 지원한다.
지역 내 노인, 어린이, 문제 청소년, 장애인, 약물중독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 해에 약 2만7,000명이 돌봄 서비스 혜택을 누린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이렇게 큰 규모의 서비스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의 경우 비정규직 형태의 파견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왜 협동조합을 설립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개별 협동조합의 컨소시엄도 눈길
카디아이를 거쳐 볼로냐 외곽에 있는 한 보육 시설을 방문했다.
이곳은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민간 협동조합이 건설해 20년후 보육 시설 소유권을 시로 이전하는 조건 아래 조성한 곳이다. 카라박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으로 카디아이(보육 서비스), 캄스트(건설), 치페아(급식) 협동조합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사례. 개별 협동조합으로는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협동조합 간 협력으로 해결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카라박 프로젝트는 정부와 민간 협동조합이 파트너십을 통해 노동자에게는 좋은 일자리, 수요자에게는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고, 실제 과거 시 정부가 하던 복지 서비스를 민간에서 제공함으로써 공급 가격은 떨어지고 서비스 질은 훨씬 좋아지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우리도 2013년부터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 시 보육 협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카라박 방식의 협동조합간 협동 사례도 시범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볼로냐 지방은 대자본에 대항하기 위한 소상공인, 중소기업, 소비자 협동조합이 매우 발달해 있다. 그중 아.테스토니는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수제화 제조업체로, 창시자 아.메데오 테스토니의 ‘아름다운 신발을 만드는 것’이라는 장인 정신을 고수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루 150켤레 정도만 생산하며, 60여 명의 장인이 168단계의 수작업 공정을 엄수해 품질을 확보하고 있다.
서울도 수제화, 봉제, 귀금속 등 쇠퇴해가는 서울의 핸드메이드 산업을 고부가 중소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수동 일대에 6000여 명의 수제화 종사자가 있으나 대부분 50~60대 고령층으로 청년층 진입이 미미한 실정인데, 아.테스토니와 같이 핸드메이드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청년층 대상 도제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에는 중소기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CNA라는 연합 조직이 있는데, 협동조합 연합 조직인 레가코프와 유사한 상위 연합 조직으로 이해하면 된다.
협동조합뿐 아니라 일반 중소기업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이 지역의 모든 분야에 협동 정신 문화가 확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코프 아드리아타카는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다. 종사자 9,122명, 대형 매장 18개, 소형 슈퍼 153개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시 협동조합, 갈 길이 멀다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을 다녀오면서 서울에서 협동조합이 발전하려면 어떠한 경로를 거쳐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선 서울은 볼로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도시이고, 심화되는 양극화와 높아가는 실업률, 공동체 해체 등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경제 모델이라는 점이다.
서울에서도 오는 3월, 서울시 협동조합 육성 조례가 만들어진다. 우리 민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기질적으로 이미 협동 DNA를 갖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 사람 중심의 사회를 모두가 열망하며 서울이 볼로냐 못지않은 협동조합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간판 ‘coop’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
볼로냐를 둘러보면 다른 도시에 흔한 다국적 유통 체인이나 명품 숍 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흔하게 볼 수 있는 간판은 ‘coop’이라고 쓰인 슈퍼마켓이나 중소기업 브랜드다. 이곳 주민은 실제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고, 실용적이며 검소하다고 한다. 다른 많은 도시와 달리 볼로냐가 유독 협동조합 문화와 전통이 강한 이유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했다.
흔히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주민은 이곳이 르네상스의 발원지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본주의 전통이 오래전부터 강하게 이어져 왔고, 1940년대는 파시즘에 저항해 스스로 독립한 역사가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주도인 볼로냐의 시청 벽면엔 파시즘에 저항하다 숨진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공산당과 이 계열의 협동조합이던 레가를 주축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인 경험이 외부 침략에 대항해 서로 단결하고 협동하는 문화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 발생적으로 협동조합이 발전했다기보다는 협동조합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지방정부의 노력과 지원이 병행되었고,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이곳 사람들의 문화가 어우러져 오늘날 세계 협동조합의 수도로 불린다고 생각한다.
제조업 기반이 워낙 강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도 많은데, 람보르기니나 페라리가 이 일대에서 생산된다. 수천가지가 넘는 자동차 부품을 수많은 중소업체가 협력적 네트워크 안에서 지식과 위험을 공유하며 만들어내고 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과 종속적 관계를 유지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글 김태희(서울시 사회적경제과장) 사진 동아일보, 오마이뉴스,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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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제]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배운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61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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