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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뷰] 재생과 연대,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는 화두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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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에 출근하는 이틀간은 30분 단위로 회의가 있을 만큼 바쁘다는 승효상 총괄 건축가를 만났다.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는 일의 소중함과 그 안에 녹여낼 사람과 건축의 연대를 차근차근 말했다.

서울시청 5층 도시공간개선단에 있는 총괄 건축가 방으로 승효상 건축가가 들어선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는 그는 바로 회의를 주관한다. 잠시 후 회의는 끝나지만 숨 돌릴 틈이 없다. 이곳에서 그는 공공 건축, 공공시설, 도시계획, 조경 등 도시 공간과 환경 전반에 대해 총괄 기획과 자문을 수행한다. 2014년 9월 18일 서울시는 승효상 건축가를 서울시 총괄 건축가로 임명했다. “서울 건축의 정체성을 확보해 600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도시환경과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것이 서울시가 밝힌 총괄 건축가 제도의 도입 배경이다.

도시의 정체성이 곧 우리의 정체성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한 지 꽤 됐고, 고대 이집트에도 국가 건축가가 있었을 만큼 오래된 제도입니다. 서울시는 수많은 건축 행위와 관련해 사전에 정책을 세우도록 권고하고 조정하는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 산하에 개별적으로 도시계획이나 공공 건축과 관련한 부서가 있지만, 이를 일관된 시각에서 자문하는 역할이 총괄 건축가”라고 그는 설명했다. 서울시는 도시 건축 전체를 조율하기 위해 자문의 일관성을 고민해왔고, 승효상 건축가와 협의를 거쳐 처음으로 총괄 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은 전 세계에 위치한 인구 1,000만 도시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1,000만 도시 25곳 중 평지가 아닌 산을 끼고 형성된 입체적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도시 정체성이 없는 평지라면 랜드마크를 세워 그 규모나 위치를 짐작하겠지만, 서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훌륭한 랜드마크를 갖췄기 때문이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급속한 경제개발로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에 랜드마크가 들어섰고, 이는 자연을 가리고 길을 끊고 사람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유의 전통적 관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구의 평면 도시가 들어섰다. 산이 있으면 깎아내 터널을 뚫고, 계곡이 있으면 메워서 만든 평면에 집을 지었다. 우리 삶도 아울러 평면으로 변했다. 도시는 집을 품고, 집은 사람을품는 우주다. 도시와 사람은 하나인 것이다.
“서울은 자연 요소를 거스르지 않은 채 작은 단위로 이뤄진아름다운 집합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랜드마크가 들어섰고 서울은 파편화됐습니다. 도시를 허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디가 문제고 부족한지 한 줄에 꿰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부서진 것을 재생하고 연결해 전체를 이루는 것, 기계나 자동차가 아닌 사람과 정신이 위주가 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절감해야 할 시대적 가치입니다.”

고유한 풍경과 일상 회복이 메타시티의 본질

승효상 건축가는 총괄 건축가에 취임하면서 서울의 도시 방향을 ‘메타시티(Metacity)’로 천명했다. 서양의 메트로폴리스와 메가시티는 도시가 팽창하고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팽창하거나 성장하지 않았다. 이제 도시는 양적 팽창이 아닌 질적 팽창을 이뤄야 할 때다. 지리적 확장이 아니라 연대가 지축이되고 반경을 이루는 도시, 내적 성찰과 성장이 목표가 되고 인간 존엄성이 확보되는 도시는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게 흐른다.
“메타시티는 고유한 풍경의 회복, 역사의 회복, 시민 일상의 회복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도시에 침을 놓듯 작은 부분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내세운 메타시티는 시민들이 도심을 마음껏 걸어 다니는 보행 친화적 도시, 낡은 건물과 시설의 재생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하는 도시다. 연대와 재생은 비단 서울시의 얘기만은 아니다. 세계의 도시가 짓고 부수고 다시 짓는 대신,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고 공간의 맥락을 살펴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더욱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메타시티는 고유한 풍경의 회복, 역사의 회복, 시민 일상의 회복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도시에 침을 놓듯
작은 부분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생과 연대로 회복할 서울역 고가도로와 세운상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나 세운상가 정비 등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 활성화는 재생과 연대의 관점에서 비롯했다. “서울역에서 남산을 가려면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도무지 걸어서 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를 이용하면 걸어서 10~15분에 다다를 수 있어요. 게다가 이제껏 볼 수 없던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남대문을 떠올려보세요. 대우빌딩에서 쏘는 디지털스크린은 극장이 되고, 고가도로는 객석이 됩니다.”
세운상가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길은 동서남북으로 발달해있다. 그런데 청계천을 조성하면서 모든 길이 동서 방향으로만 통했다. 남북 방향으로 난 길은 세종로밖에 없다. 1960년대 말 그것을 복원하려고 지은 건물이 세운상가인데, 서울시는 낡고 폐허화됐다며 현대 건축사에서 이렇듯 중요한 자료를 부수고 그 자리에 큰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승효상 총괄 건축가는 세운상가를 부수는 대신 세운상가 건물들을 연결하는 공중 보행교를 복원해 길을 이어갔다. 세운상가 길은 남산과 종묘를 거쳐 창경궁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보행로의 기반이 될 것이다. 서울시는 남산에서 출발해 세운상가를 거쳐 북악산까지 걸어가는 행사를 조만간 마련할 계획이다.
“낡으면 허물고 새로 짓겠다는 생각은 기억을 상실하겠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기억을 잃으면 미래가 없고, 재생이 없으면 선조가 살았던 기억이 사라지고 맙니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도시의 지속성을 이어가는 방법입니다. 소중한 기억을 되찾는 일이 곧 정체성을 확인하는 길인 것입니다.”

불편한 도시에서 관계가 살고 창조가 이뤄진다

승효상 총괄 건축가는 연대와 재생 외에도 비움을 강조한다. 도시를 비운다는 것은 도시 공동체가 형성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의 비움은 우리나라의 마당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마당에 무언가 꽉 들어찬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네 마당은 비워져 있어요. 그곳에서 노동도 하고 축제도 벌이지요. 그러나 일이 끝나면 다시 텅 빈 마당이 됩니다. 마당에서 행사를 열기 위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만들고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옆에 있는 부대시설을 사용했다가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총괄 건축가는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종묘라고 <서울의 재발견>에서 밝혔다. 조선 왕조의 신위를 모신 종묘는 서울 한복판에 유일하게 남은 성소다. 그가 말하는 종묘의 아름다움은 종묘 앞에 자리한 빈 공간에 있다. 죽은 자가 내려가고 산자가 올라가서 만나는 월대 앞에 서면 그는 경이를 느낀다고 했다. 건축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때면 찾아가서 새로운 힘을 받는 곳이 종묘다. 종묘는 도시의 비움에 관한 또 다른 은유가 될 것이다.
“좋은 집은 우리를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약간 불편한 게 좋죠. 불편해야 생각을하고 사유 끝에 창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동선이 짧은 공간에서 버튼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꽉 막힌 공간이 아니라 몸을 일으켜 반응하게 하는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건물이나 친근하고 좁은 골목길이 익숙한 도시, 자동차 대신 발걸음이 길을 내고 걸어서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도시가 좋은 도시다. 불편함이 우리를 창조로 이끈다면, 우리를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불편한 도시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승효상 서울시 총괄 건축가

15년간 김수근 선생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를 시작으로 자신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담은 건축물을 꾸준히 선보였고,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승효상 도큐먼트>,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서울의 재발견> 등의 저서가 있다.



글 양인실 사진 문덕관(램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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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뷰] 재생과 연대,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는 화두에 관해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2-26
관리번호 D000002803650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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