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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생활사] 싱거울 땐 간장을, 맛이 없을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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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울 때는 간장을 넣으면 되지만
맛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까?



비빔밥이라면 양념장을 좀 더 넣거나 참기름을 몇 방울 더 뿌릴 수도 있겠다. 문제는 국물이다. 밍밍한 국물 맛을 어떻게 할까? 예전에 모든 집에는 화학조미료를 늘 갖추었다.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습관처럼 조미료를 넣었다. 습관이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하는 행동이다. 화학조미료는 어떻게 우리네 음식 문화에서 습관처럼 굳어졌을까.

뜨적제비

수제비를 뜨적제비라고 했음이 눈길을 끈다. (동아일보 1934년 7월 22일)

광고와 고백

“거짓도 천 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 독일 나치스 정권에서 선전장관을 지낸 파울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한 말이다. 1910년대 중반부터 각국은 모든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정책을 선전했다. 정부의 선전은 정치를 판매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와는 달리 상품을 판매하는 수단을 일컬어 광고라고 한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때부터 어떻게든 상품을 알리는 행위가 있었을 테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광고는 1886년 2월 22에 실린 세창양행 광고로 알려져 있다. 독일 회사인 세창양행은 동양에 진출하려고 홍콩에 본사를 두고 이 땅에도 손을 뻗쳤다. 세창양행은 첫 광고에서 “호랑이·수달피·검은담비·흰담비·소·말·여우·개 등의 가죽과 사람의 머리카락, 소·말·돼지의 갈기털·꼬리·뿔·발톱, 조기와 소라, 담배, 종이, 오배자, 옛 동전 등”을 사들인다고 했다. 그리고 “자명종, 뮤직 박스, 호박, 유리, 램프, 단추, 직물, 천, 염색한 옷, 염료, 서양 바늘, 서양 실, 성냥 등을 판다”고 했다. 세창양행은 광고라는 말 대신 ‘고백(告白)’이라고 적었다. ‘아룀’이라는 뜻으로 쓴 이 한자어는 ‘광고’라는 말이 뿌리내리기 전의 용어였다. 일본 상인들이 광고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말이 널리 퍼졌다. 상품이 늘고 매체가 발달하면서 광고가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산소와 질소, 그리고 광고로 호흡한다.”

음식 배달 문화

음식 배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동아일보 1936년 8월 18일)

습관을 만드는 광고

1907년 동경제국대학 교수인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가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이라는 네 가지 기본 맛에 더해 다섯 번째 맛인 ‘우마미’를 발견했다. 감칠 맛이다. 그는 일본에서 음식의 맛을 내려고 썼던 다시마의 핵심 성분이 글루탐산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스즈키 제약사가 이것을 상품으로 만들어서 '마법의 가루'인 아지노모도를 생산했다.

아지노모도사는 1910년 말에 서울의 쓰지모토 상점, 부산 의 복영상회를 특약점으로 삼아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아지노모도사는 1920~1930년대에 식민지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시장권으로 삼는 ‘맛의 제국주의’를 성립시켰다. 아지노모도는 광고계의 큰손이 되어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광고를 실었다. 내가 확인하기로는 1915년에 신문에 처음으로 아지노모도 광고가 실렸다. 그 뒤부터 아지노모도는 세계 최초로 이상적 조미료, 식료계의 대혁신을 이루었으며, 모든 음식을 맛있게 한다고 줄기차게 선전했다. 아지노모도는 광고 기법도 빼어났다. 그들은 근대 여성은 모두 아지노모도를 쓰며, ‘문명적 조미료’인 아지노모도야말로 좋은 맛의 지름길이라고 선전하면서 주부층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양념값을 적게 들이고도 그럴싸한 맛을 내야 하는 음식점도 공략했다. 아지노모도는 ‘광고의 조선 현지화 전략’을 펼치면서 각계각층의 생활 영역을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일정한 자극을 되풀이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 아지노모도는 끊임없이 광고로 사람들을 자극했다. 광고 문안처럼 ‘싱거울 땐 간장을, 맛이 엇을 땐(없을 땐) 아지노모도를’ 습관처럼 넣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지노모도

아지노모도 첫 광고. 일제 강점 5년. 아지노모도 발매 5주년을 맞이해서 순풍에 돛 단 듯이 상품이 잘 팔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매일신보 1915년 9월 13일)

건강의 징표

요즈음과 달리 살찌는 것이 건강의 징표였다. (매일신보 1937년 9월 23일)

아지노모도

신(싱)거울 땐 간장을! 맛없슬(을) 땐 아지노모도를! (매일신보 1937년 12월 14일)

새로운 ‘맛 전쟁’

일제강점기에 ‘아지노모도’라는 화학조미료가 음식에 감칠맛을 내면서 서구식 문화생활의 상징처럼 되어갔다. 한때 “아지노모도 원료는 뱀이다”는 헛소문이 돌만큼 화학조미료는 뭇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식민지 조선에서 아지노모도 판매량은 크게 늘어났다. 아지노모도는 서울과 부산, 평양 등을 집중 공략했다. 특히 평양은 면의 고장으로 냉면집이 많았고, 육수와 곰 국물 요리도 많았다. 따라서 아지노모도는 평양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가 인기를 끌자 뒤이어 ‘가루가 아닌 결정체’로 된 ‘아지노미’라는 제품도 나왔다. 아지노모도는 1939년 가을부터 생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원료인 대두, 소맥분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에서 비롯한 전시 식량 통제로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아지노모도는 1943년 7월에 조선사무소의 문을 닫았다. 해방 뒤에도 아지노모도에 입맛을 들인 부유층은 밀수한 아지노모도를 줄기차게 찾았다. 195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아지노모도를 반찬에 뿌리고, 왜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특별한 맛 내기로 여겼다. 그만큼 아지노모도가 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여놓았다. 길들여진 혀를 달래려고 이 땅에도 화학조미료 공장이 들어섰다. 글루탐산나트륨, 흔히 MSG라고 부르는 화학조미료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친숙한 조미료다. 설령 각 가정에서 MSG를 넣지 않는다 해도 음식점과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등을 통해 날마다 MSG를 섭취하고 있다.

아지노미

아지노모도 유사 상품 아지노미. 후발주자의 강변, “과학은 진보한다”. (<삼천리> 1935년 12월호)

최규진 연구교수은 청암대학교에서 한국 근현대 일상생활사를 연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부민의 여가생활>, <쟁점 한국사-근대편>, <제국의 권력과 식민의 지식>, <일제의 식민 교육과 학생의 나날들> 등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다.

최규진(청암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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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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