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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친화 도시] 산책자로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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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자, 서울 걷기 예찬

가을로 들어서면서 나는 양화대교에서 망원동 유수지까지 일삼아 걷는데, 하늘은 광활하고 한강은 넘실대며 흐른다. 가끔 젊은 날 산 적 있는 성북동을 걷고, 연남동 경의선 숲길 공원이나 한강 변을 걷고, 어린 시절을 보낸 서촌 일대나 인왕산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는다.
서울을 걷는 것은 추억의 장소에 대한 순례요, 내 삶의 기억을 위한 하나의 탐험이다. 걷기란 자연스러운 취향이고, 일상의 움직임 중 하나다.
나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는 무엇보다도 세상의 자명한 이치요, 자연스럽고도 투명한 행위로 일상적인 움직임의 맥락에 포함된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산책자로 사는 것을 일상의 보람으로 삼고 기꺼워한다. 산책은 도시의 숨은 속살을 만져보는 찰나요, 도시라는 극장에 관객으로 입장해 관람하는 일이며, 권태의 시간을 활력 넘치는 창조의 시간으로 바꾸는 기적의 순간이다.

모든 길에는 저마다 다른 영혼이 깃들지만 대로에는 영혼이 없다. 작고 좁은 길, 낮은 건물들 사이로 가까스로 뻗은 길, 구불구불한 골목길에만 영혼이 있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미로 같은 골목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 서촌 길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책자의 길이었다. 서촌은 이상(1910~1937)과 박태원(1909~1986)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상이 백부의 유산으로 차린 제비다방이 있고,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이 살던 생가도 있다.
박태원이 스스로를 모델로 빚은 작중인물 구보 씨가 방황하며 걸었던 길도 대개는 서촌의 길이다.

걷기란 두 다리를 도구로 쓰는 전진 행위다. 사람의 두 다리는 인류의 유구한 이동 수단이다. 우리가 걸을 때 팔과 다리, 대퇴부와 무릎 관절, 다리와 발 근육의 협업이 필요하다. 걷기는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걷기가 대단한 것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걷기에 몰입할 때 우리는 소소하고 은밀한 기쁨을 누린다. 나는 혼자 걷기를 선호하는데, 거리마다 고유한 영혼과 교접하는 기분을 맛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는 계절의 맛을 온전히 보려고 자주 산책자로 나선다. 한강 중류의 완만한 흐름을 옆에 끼고 강변을 걸을 때 나는 지금 이 찰나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존재의 충만감을 만끽한다.

셈해보니, 나는 어느덧 서울에서 마흔 해 넘게 살아왔다. 열 살 때 서울 사대문 안쪽인 인왕산 산마루의 허름한 집에 안착한 이래 두어 번 서울 밖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산 지가 마흔 해다. 서울은 인왕산과 북악산, 맞은편의 남산과 저 먼 배후에 북한산을 거느리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세다. 한 도시에 정착해 살다 보면 이 도시의 냄새와 오래된 영혼이 촉지되기 마련이다.
나는 서촌 일대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20대를 겪어냈다. 이곳에서 몸 부대끼며 사는 동안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서울의 여러 동네와 지역은 내 삶의 기억이 쌓인 유적지(遺蹟地)가 되었다.

추분 뒤 서울은 일삼아 걷기에 맞춤한 도시로 탈바꿈한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비원과 종묘, 그리고 삼청공원, 용산공원, 효창공원,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등지에 숲을 이룬 느티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 회화나무, 비술나무, 아까시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줄참나무, 팥배나무 같은 낙엽교목, 은행나무나 플라타너스나 양버즘나무 같은 가로수가 울긋불긋 단풍 들 때 그 나뭇잎들은 걷기로 이끄는 초대장 같다. 삼청동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팔판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무 살 무렵 뻔질나게 다니던 정독도서관에서 안국동 풍문여고로 빠져나오는 골목은 여전히 정겹다.
하지만 난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서울의 그 많던 구불구불한 길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것은 애통하다.

나는 특히 북악산의 무뚝뚝한 산세 아래 자리한 경복궁 안 걷기를 좋아한다. 중학생 때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경복궁은 스케치하러 자주 나오곤 하던 곳이다. 봄날에는 경복궁에서 전국 규모의 학생 사생 대회가 열렸다.
그 때문에 경복궁 안의 경회루나 근정문, 동문과 서문 등의 지리는 지금도 익숙하다. 국립고궁박물관 입구가 들어선 동문 쪽의 꽃개오동나무나 영추문 쪽의 화살나무는 저녁무렵 서산에 걸린 진홍 노을빛으로 타오른다. 이 나무들은 고즈넉한 자세로 가을빛의 밀도와 파장을 받아낸다. 가을의 영화(榮華)가 덧없이 안착한 서울 도성을 걷는 것은 시청각적인 것들의 향연이다. 거리의 빛과 소리, 냄새가 내 시각과 청각과 후각에 비벼지면서 기분을 북돋우고 관능적 기쁨을 만들어 돌려주는 것이다.

책 읽기 좋을 때란 딱히 정해진 바가 없다. 날이 서늘하든 따뜻하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좋은 책만 있다면 언제라도 책 읽기에 좋은 때다. 하지만 걷기는 분명 맞춤한 때가 있다. 걸으려면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한다. 장대비가 쏟아지거나 폭풍이 불 때는 좋지 않다. 날이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 때가 걷기에 가장 좋다. 벚꽃잎이 하르르 지는 봄밤이나 은하수가 흐르는 가을밤이 걷기에 좋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보고, 당신이 들은 것을 나도 듣는다. 우리는 풍경이 베푸는 지복, 빛과 어둠, 비와 바람, 나무의 아름다움과 위엄, 공기 중의 방향, 오만 가지의 크고 작은 소리, 계절의 순환이 일으키는 멜랑콜리한 감정을 함께 나누며 걷기라는 행위의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날숨과 들숨을 조절하고, 심장 박동과 피의 흐름을 가만히 살피면서 걷는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는데, 햇빛 아래 비밀 없이 무방비하게 노출하는 풍경은 내게로 다가왔다가 어깨 너머로 멀어진다. 산책자는 머리 위로 가을의 양광을 받고, 금빛 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풍경 속을 뚫고 나아간다. 산책자는 저를 규정하는 여러 정체성에서 벗어나 하나의 자아, 하나의 인격으로 돌아간다. 빛의 은총을 받은 풍경을 눈으로 들이마실 때, 아 살아 있구나, 하는 실감이 생생해진다. 그렇게 기분 전환을 하고 소소한 관능적 열락에 빠져들 때 내면의 근심과 걱정은 그 부피가 작아지고 이윽고 사라진다. 나는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고, 아마 내일도 걸을 것이다. 걸어라, 풍경 속을 뚫고 나아가는 그 걸음이 그대의 근심과 걱정을 사라지게 하리니!

장석주
시인, 독서광, 인문학 저술가.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시립도서관과 국립도서관에서 독학으로 시와 철학을 공부했다. 최근 단순한 삶을 향한 예찬을 담은 생태 산문집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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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10-10
관리번호 D000002803711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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