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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기획] 서울의 미래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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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미래를 상상하다 '21세기 세계의 수도를 꿈꾸며'

그리스인 소크라테스는 “고향이 어디냐?”라는 물음에 “아테네”라 대답하지 않고 “세계”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테네가 세계의 수도이던 헬레니즘 시대의 일화이다. 누군가 내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 역시, 내 중심은 “세계”, 그러니까 “서울”이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성립되려면, 세계는 곧 우리의 서울과 등가를 이루어야 한다. 나에게 세계란 태생지로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되어온 문화적·정신적 성소(聖所)이다.

내가 세계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문자를 깨우치던 일곱 살 전후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문자의 뜻을 알게 되는 순간은 혁명이나 기적처럼 일대 획기적인 사건이다. 문자를 해독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일은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세계를 파악한 것이었다. 어린 나를 매혹시킨 몇 가지 것 중 하나가 세계지도책이었다. 그것만 있으면 언제든 혼자라도 심심하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별처럼 박혀 있던 이국(異國)의 수도의 이름을 찾아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에 열중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체코의 수도 프라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쿠바의 수도 아바나, 미합중국의 수도 워싱턴DC, 프랑스의 수도 파리,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서울, 나는 서울의 이름을 몇 번 곱씹어 불렀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모든 아름다운 것은 중심으로 향한다. 아름다움이란 살아 있는 것, 빛을 내는 것, 숨 쉬는 것, 매 순간 부르고, 이끄는 것. 온 열망으로 그쪽으로 향하게 하고, 온 힘을 바쳐 그쪽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힘. 지난 25년 동안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린 시절 세계지도책에서 발견하고 꿈꾸던 세상의 수도들을 일일이 두 발로 찾아 나섰다. 잉카 왕국의 옛 수도 마추픽추처럼 인류에게 잊혔다가 폐허로 다시 등장한 곳이 있었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처럼 20세기에 새롭게 계획되어 단장된 곳도 있었다. 800년 가까이 이웃 섬나라 영국의 식민지 수도였던 더블린처럼 골목골목 한(恨)이 흐르는 우울한 곳이 있는가 하면, 대항해 시대에서 산업혁명까지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의 식민지 경영으로 세계 자본의 수도를 자임했던 영국 런던처럼 위풍당당한 곳도 있었다. 그뿐인가. 헬레니즘 시대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가 유럽 연합의 유로화 단일 체제 이후 최빈곤국의 수도로 전락하면서 귀부인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기도 했고, 이데올로기 희생양의 여파로 녹슬어 삭아가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일면을 그저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어린 시절 세계지도책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낯선 수도들과 청춘 시절 이후 직접 두 발로 찾아다니며 확인한 수많은 수도들은 설렘과 황홀을 안겨주는 동시에 안타까움과 슬픔도 던져주었다. 아테네, 부다페스트, 더블린이 후자의 경우라면, 20세기 전후 세계 예술의 수도이자 지적인 수도였던 프랑스 파리, 유럽 종교의 성도(聖道)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상업을 통한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 그리고 동서양의 접점 베네치아와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등은 전자의 경우였다. 그런데 설렘과 황홀조차도 이면에는 쇠락의 흐름 속에 처한 오래된 세계의 서글픔이 짙게 배어 있기 일쑤였다.

세상의 수많은 수도들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내가 사랑하는 수도, 내가 꿈꾸는 서울은 무엇인가. 20세기 전후 런던이 세계 경제의 수도였다면, 같은 시기 파리가 세계 예술의 수도였다면, 이후 뉴욕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면, 21세기 이후 미래에는 서울이 새로운 개념의 세계 수도가 될 수 있을까. 한갓 허황된 꿈일까.

아테네인 소크라테스는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 세계의 중심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경제력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꼭 그것만은 아니다. 젊음의 힘, 젊음의 물결이 대안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드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지난 몇 년간 해외 현지에서 만난, 그리고 지금 내 생활 주변에서 만나고 있는 이국의 젊은이들은 서울에 오기를, 심지어 서울에서 살아보기를 꿈꾼다. 그들은 한번 서울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본국으로 떠나려 하지 않는다. 서울의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까. 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외친다. 서울은 24시간 깨어 있다. 빠르다!

이들의 전언을 뒤집어보면, 서울은 속도 경쟁이 치열하고,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일에 치여 피곤한 곳이다. 내가 청춘 시절부터 파리로 향한 것은, 또 뉴욕으로, 뮌헨으로 떠난 것은 이들이 내게 말하는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처럼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곳, 그래서 살다 온 곳을 떠올려본다. 내가 뉴욕에 간 이유는 폴 오스터의 소설 속 거리를 걸을 수 있고, 파리에 간 이유는 프루스트의 소설 속 마들렌느와 홍차를 맛볼 수 있으며, 이스탄불에 간 이유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 속 탁심 광장을 보고 보스포루스 해협의 뱃고동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서울은, 거리거리 다양한 인종의 젊은 물결이 넘치고, 세계의 독자들이 서울을 무대로 쓰인 소설을 읽고, 서울을 꿈꾸며 서울로 향하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서울은, 서울 사람이 세계 시민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리하여 서울이 자연스럽게 21세기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함정임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로 등단한 이후 <내 남자의 책>, <소설가의 여행법> 등 30여 권의 소설책과 문학기행서, 번역서 등을 출간했다.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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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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