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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도시한옥에서 초고층 아파트까지 서울 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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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울 사람들의 집 유전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정도가 될 듯싶다. 1930년대 도시한옥, 조선주택영단의 표준형 주택1)과 그 뒤를 이은 표준주택2),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의 외인주택3)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갈등하거나 타협하며 모양과 내용을 바꾸어 서울의 집을 이루었다.

똑같은 모습의 주택이 군락을 이룬 상도동 주택단지 c서울특별시

아파트 단지의 꺼풀을 벗겨내면, 그 속에는 한옥에서 초고층 아파트에 이르는 서울 집의 내력과 역사가 온전히 남아 있다.


서울과 역사를 같이한 서울의 집
우르르 몰려 있어 마치 병풍처럼 서울의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을 가리는 아파트 단지의 꺼풀을 살짝 벗겨내면, 그 속에는 한옥에서 초고층 아파트에 이르는 서울 집의 내력과 역사가 온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 집의 변화는 여러 소설 작품 안에도 묘사되어 있다.
1937년에 발표된 이태준의 소설 &;복덕방; 속 노인들은 이렇게 넋두리한다. ‘관철동, 가회동, 다동 등에 도시한옥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어졌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옥중개업에 뛰어들었으며, 서양식 주택을 일본인들이 번역해 보급한 문화주택4)이 개미나 파리가 몰려다니듯 서울 곳곳을 잠식하고 있다.’

 
서울의 확장이 계속되면서 외곽 곳곳에는 영단주택이며 구호주택이 지어졌고, 그 가운데 신대방동, 상도동, 문래동과 같은 대단위 영단주택지가 똑같은 모양의 집으로 채워졌다. 소설 &;213호 주택;에서 작가 김광식은 이러한 풍경을 ‘상도동 로터리를 중심으로 똑같은 주택이 잔잔한 계곡을 타고 아득히 보이는 산허리에까지 뻗쳤고, 조선주택영단이 표준형 주택을 만들어 보급한 같은 모양의 특(特)호, 갑(甲)호, 을(乙)호 주택이 줄줄이 좌우로 마치 전차 기갑사단이 푸른 기를 꽂고 관병식장에 정렬하여 서 있는 것 같은 감의 주택들이 뒤를 잇는다.’라고 묘사했다.


1930년대 북촌 도시한옥 설계도 c서울시립대 역사도시건축연구실


전쟁 후 등장한 서양식 주택과 상가주택
한국전쟁은 서울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 서울로 환도를 했지만 사람들의 거처는 형편없었다. 수도 서울의 재건과 살림집의 마련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정책적 과제였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전재민주택, 난민주택, 구호주택이라는 이름의 주택들이 지어졌다. 국제기구의 원조 자금이나 국채 발행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부흥주택이며, 재건주택, 희망주택5) 등이 곳곳에 지어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을 위한 주택이 이태원이나 한남동 등에 들어섰다. ‘서양식 주택’으로 일컬어지는 양식주택의 본격적인 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외국인들을 위한 주택 임대를 통해 당시로써는 적지 않은 외화 벌이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1958년부터 상가주택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전쟁의 흔적이 여전한 남대문 일대를 둘러보던 이승만 대통령은 판잣집만 무질서하게 들어선 것을 보고 장관들에게 “이곳을 재건 복구하여 수도 관문의 위신을 세울 수 없는가?” 물었고, 국무위원들이 구수 회의를 통해 수도 서울의 미화와 주택난을 동시에 해소하는 묘안을 짜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상가주택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1~2층은 상가, 3~4층은 주택으로 쓰이도록 의도한 4층 이상의 상가주택을 지을 수 있는 기술력이 없어 육군공병감실에서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 변에 상가주택을 시공했다.


지금도 종로 대로 변과 간선도로 변에는 시간의 켜를 간직한 채 남아 있는 상가주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제기구의 원조나 국채발행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지어진 청량이 부흥주택 c정기황


지금도 세종로~동대문에 이르는 종로 대로 변과 종로3가~퇴계로에 이르는 간선도로 변에는 시간의 켜를 간직한 채 남아 있는 상가주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운상가아파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신도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쯤 되는 주택 유형이기도 하다.


아래내용 참조

1) 표준형 주택(영단주택) : 조선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의 전신, 1941년 설립)에서 대규모로 건설 및 공급한 주택. 규모에 따라 갑형에서 무형까지 다섯 종류로 나뉜다.2) 표준주택 : 서울시와 대한주택공사(1962년 설립)가 보급한 주택3) 외이누택 : 6·25 전쟁 이후 주한외국인들의 주거안정에 기여하고자 등장한 주택4) 문화주택 : 일본 주택 양식의 하나로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주택 형태5) 희망주택 : 대지와 공사비를 입주자가 부담하고 건축자재를 대한주택영단에서 배정·분양한 주택

좌: 1958년부터 상가주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세운상가아파트의 모습 c서울특별시, 우: 대한주택공사 주도로 공급된 화곡동 국민주택c대한주택공사

6)시영주택 : 서울시가 주도하여 공급한 공공주택 7)국민주택 : 단독 혹은 연립주택의 형태를 지니며, 대한주택공사 창립에 따라 집단·공공적 차원에서 공급된 주택, 7) 국민주택 : 단독 혹은 연립주택의 형태를 지니며, 대한주택공사 창립에 따라 집단·공공적 차원에서 공급된 주택


인구 증가와 아파트의 등장
1960년대 이후에는 서울시가 주도한 시영주택6)과 대한주택공사의 국민주택7), 그리고 아파트가 본격적인 경합을 벌이기 시작한다. S영주택법이 제정되면서 그 반대편에 놓인 민영주택 건설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전국적으로 연평균 3%에 가까운 인구 증가 속에서 주택 건설은 활로를 찾지 못했고, ‘조립식 주택과 아파트만이 땅을 절약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구호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아파트는 ‘서민용 주택’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다. 어렵사리 아파트에 입주한 시민들도 언젠가는 마당이 있는 내 집에 들어갈 것을 소망했다. 수유리, 불광동, 답십리 등에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으로 이루어진 국민주택지가 만들어지고, 연립주택은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아파트 대체 주택으로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상가아파트가 서울 도심 곳곳에 들어선 것도 이때부터다. 1970년대 서울 풍경을 바꾼 것은 서울시민아파트다. 당시 김현옥 시장이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밀어붙인 서울시민아파트는 구릉지의 시유지와 국유지를 택해 하루에 15곳 이상에서 기공식이 거행되는 등 대량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여전히 서민들의 집단주택이었고, 때론 공간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당시 건설된 시민아파트에는 동마다 모범 경찰관 한 명이 입주하였고, 그에게는 보안관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시민아파트의 경우, 아파트의 측벽에 서울시의 마크(市章)와 동수를 1.5m 크기로 써 붙인 첫 사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요즘 브랜드 아파트의 선배 격인 셈이다. 작가 김인숙의 소설 &;봉지;에서는 당시 시민아파트가 ‘산동네 자취방과 다름없이 공동화장실을 쓰고, 연탄을 옮겨 불을 때야 하는 곳’이라며 열악한 주거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금화 시민아파트 c서울특별시, 오른쪽 : 여의도 시범아파트 건설 현장, 아 아파트는 197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 지은 아파트 중 가장 높은 아파트(12층)였다. c서울특별시


아파트 시대의 개막
지금처럼 아파트가 서울시민들의 보편적 주택 유형으로, 혹은 규모에 따라 중산층의 상징으로 정착한 것은 한강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여의도시범아파트와 한강맨션아파트 그리고 반포주공아파트(당시에는 남서울아파트)가 조성되며 그전 아파트에 비해 전용면적이 최대 6배까지 늘었고, 중앙난방 방식이며 온수 공급 등의 설비가 고급화되었다. 처음으로 주택(모델하우스)이 등장하기도 했고 단지 안에 공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금 서울시민들이 아파트를 바라보거나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경제적·문화적 감수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들을 가리켜 ‘단지족’이라 불렀듯 반포아파트에 사는 이들을 ‘반포족’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러 구분한 것도 이때가 시작이다.

 
바야흐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겪었으며, 여전히 소망하는 아파트 시대의 개막이며, 아파트공화국의 탄생이 이루어진 것이다.


박철수 :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의 연구위원을 거쳐 2002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거론과 주거문화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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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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