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말하다]서울 시민, 그들의 일상은 예술이 될 수 있다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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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만화로 산책하다展>에서 박재동 화백은 서울역 주변을 오가는 시민의 일상을 스토리로 보여준다.
대상을 포착해 그림으로 표현할 때 사랑을 느낀다는 그에게 서울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

보통 사람, 보통 일상이 최고 예술

지하철 2호선 을지로4가역, <서울역 고가, 만화로 산책하다展>을 찾은 박재동 화백. 지난달 시청 로비에서 열린 이 전시는 장소를 옮겨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시민과 만나고 있다. 박재동 화백은 동료의 작품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 후에야 자신의 작품 앞에 다다랐다. 그러고는 갑자기 풀썩 자리를 깔고 앉더니 스케치 노트를 꺼내 붓을 놀렸다. 노장의 눈빛은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그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소소한 일상을 포착하기 위해 노트와 붓은 늘 화백의 주머니 안에서 함께했다. 쓱싹쓱싹 단숨에 그려나간 삶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 화백의 품에 들어간 순간 영원히 남을 기록이 됐다.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길에 나뒹구는 돌멩이도 노트에 옮기는 순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담게 된다는 것이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 중에는 보통 사람, 보통 일상을 그린 게 없어요. 하지만 예술은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 게 없어요. 멋지고 화려한 작품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의 단면을 긍정하며 그대로 비춰주는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봅니다.”
갤러리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열린 사람들과 만나는 <서울역 고가, 만화로 산책하다展>을 본 화백은 “시원하니 좋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서울사랑

서울이 회색빛 차가운 도시가 아닌, 다채로운 색채가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랐다.
노래 한 줄에 실린 지역이 명소가 되고, 책에서 표현한 풍경이 발길을 불러 모은다.

지하철 문화, 작가와 시민이 손잡다

박재동 화백은 화장실 화가가 되고 싶었다며 불쑥 고백했다. 몇 년 전 지하철 역사에 있는 화장실에서 짐을 진 아낙네의 그림을 본 이후부터였다. 비록 퀄리티는 낮았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그림에서 위안을 받았고 판타지를 봤노라고. 그런 꼬질꼬질한 그림에서 멀어지려 노력했지만, 어느 날 생활감 없는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느낀 자괴감이 겹쳐왔다. 하루에 수백 명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갤러리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화백은 백방으로 방법을 알아봤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종로구청의 도움으로 인사동 골목 화장실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후 구로구청과 부천역 화장실에도 작품이 걸렸다. 한번은 부천역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이 작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마치 갤러리를 청소하는 기분이라네요”라고 인사말을 전해온 것이다.
박재동 화백은 화장실 갤러리를 뛰어넘어 지하철 갤러리로 생각을 확장해나갔다. 지하철 노선마다 장르나 콘셉트를 달리해 문화 전시관을 만들고 싶었다. 예를 들어 2호선은 만화, 3호선은 영화, 4호선은 소설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지하철역을 작가 한 명씩에게 분양해 단독으로 작품을 걸고 소품도 전시하고 사인회도 하는 뮤지엄을 만들자는 취지다. 지하철역에 작가 이름을 내건 별칭을 붙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작가와 시민이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소통하는 지하철 뮤지엄을 설명하는 화백의 눈빛이 다시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그것으로 변했다.

서울을 그리다, 서울을 사랑하다

최근 박 화백이 그린 그림 중 다수가 서울 풍경과 서울 사람을 묘사한 것이다.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에 산 지 43년이 되어 이제는 어딜 가나 서울에 돌아와야 마음이 편하다. 오래 산 만큼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서울은 아직 그에게 보여주지 않은 게 더 많았다. 작가끼리 ‘달토끼’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달 서울 각 지역을 다닌 10년 동안 서울은 언제나 놀라움을 선사했다. 처음 가본 서울, 여태 몰랐던 서울의 삶이 무궁무진했다. 두 발, 두 눈으로 접한 서울 한가운데, 자신의 삶도 거기에 있었음을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하고 내 시간을 온전히 내줍니다. 그것이 그림으로 구체화됐을 때 더욱 소중해지는 법이죠. 제 그림의 90% 이상이 서울이에요. 그러니 서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죠.”
달토끼는 10년간 서울을 그린 작품을 모아 전시도 열고 <달토끼 서울을 그리다>도 출간했다. 책에는 서울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박 화백은 책을 통해 색다른 서울을 재발견하고 서울이 더 이상 회색빛 차가운 도시가 아닌, 다채로운 색채가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랐다. 노래 한 줄에 실린 지역이 명소가 되고, 책에서 표현한 풍경이 발길을 불러 모은다. 문화가 갖는 자력은 힘이 세다. 서울을 노래하고, 서울을 찍고, 서울을 시어(詩語)로 표현하면 서울은 더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주민, 마을, 도시의 건강한 연결을 꿈꾸며

박재동 화백은 마을을 좋아한다. 무전여행을 다니던 20대의 기억은 아직도 그를 사로잡는다. 어딜 다녀도 살림살이는 가난했지만 인심은 후했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대접할 테니”라고 말했다. 고향과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에 가능한 호기였다. 지금은 그런 애정과 자부심이 사라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행히 서울에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토양이 마련돼 반가웠던 그는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출간 작업에 기꺼이 참여했다. 책을 펼치다 보면 한 장의 그림이 눈에 띈다. 아줌마가 아이를 안고 마을 뉴스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게 진짜 마을의 모습입니다. 주민이 정보를 생산하고 주체가 되는 세상이 미래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든, 풀빵을 굽든, 택시를 몰든 모두가 자기 일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도시’라는 공간의 한계를 단순히 한계로 보지 않고 다르게 해석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이런 작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주민은 마을의 뿌리가 되고 마을은 도시의 자양분이 된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개인이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며, 긍지는 곧 예술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시민은 예술가이고 그들의 일은 곧 예술이 된다. 박 화백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서울은 거대한 하나의 박물관이 될 수 있습니다. 꼬질꼬질한 삶이라도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그게 바로 예술이고, 그런 사람이 모이면 박물관이 됩니다. 그렇다면 서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가 되지 않을까요?”

<서울역 고가, 만화로 산책하다展>

근현대 역사 문화 자원이 풍부한 서울역과 주변 일대의 역사, 풍경, 삶 등을 50여 점의 만화 작품으로 되살린 <서울역 고가, 만화로 산책하다展>. 박재동, 이희재, 박인호, 김용길, 조경봉, 이정헌 등 23명의 만화가가 참여해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역은 물론 미처 몰랐던 서울역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울시와 (사)우리만화연대와 함께 개최한 <서울역 고가, 만화로 산책하다展>의 전시작품은 홈페이지 (www.ss7017.org)를 통해 볼 수 있다. 앞으로 서울역 주변 공공장소에서 전시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박재동 화백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하며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오돌또기>, <별별이야기>, <사람이 되어라>의 감독을 맡았으며, 지은 책으로는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달토끼 서울을 그리다>,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내 인생의 영화> 등이 있다.





글 양인실 사진 문덕관(램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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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28036519 등록일 2017-11-01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3-15
라이선스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