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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옛 이름] 물과 함께 흘러온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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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호수, 바다 등에 인접한 ‘수(水)세권’을 주거지로 찾는 이가 많다.
이처럼 예로부터 물은 삶의 터전을 찾는 이들에게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다.

동작구 - 노량진동

노량진동 (鷺梁津洞)은 조선 시대 한강에 있던 나루터인 노들나루에서 온 이름이다. 노들나루는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수양버들이 울창해 노들나루라 했다는 설, 이슬나루라는 뜻의 ‘노진(露津)’이 변해서 된 것이라는 설 등도 있다. 그런데 노들나루의 위치는 지금의 노량진동이 아닌 본동 258-159번지 일대다. 한강철교와 인도교가 놓이며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노량진동의 북쪽에는 노량진수산시장이 있고, 동쪽에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참형당한 사육신의 무덤인 사육신묘가 있다.

+ 이야기 하나 더
노량진역 근처에는 여러 종류의 학원과 수험생들을 위한 고시원 등의 시설이 모여 있다. 1975년 유명 재수 학원 중 하나인 대성학원이 노량진으로 이전하며 재수 학원들이 모여들었고, 이후 공무원 시험·임용 고사 시장이 활성화되며 다양한 종류의 학원이 노량진동에 자리 잡아 고시촌을 형성했다.

성북구 - 길음동

길음동(吉音洞)은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기리묵골, 기레미골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음으로 고쳐 쓴 것이다. 또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 ‘좋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 골짜기는 돈암동과 길음동의 경계가 되는 정릉천을 말하는데, 1980년대까지는 길음동 앞으로 정릉천이 흘렀으나 하천 대부분이 복개되어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 이야기 하나 더
길음동은 원래 미아리였다. 1950년 미아리가 미아동으로 개칭된 데이어 1959년 미아제1동 지역이 길음동이 되었다. 1975년에는 미아동 일부가 편입되며 오늘날의 길음동에 이르렀다.

강남구 - 청담동

청담동(淸潭洞) 일대는 조선 후기까지 청숫골, 숫골, 큰말 작은말, 솔모퉁이 등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청숫골의 명칭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과거 맑은 못이 있었고, 접하는 한강 변의 물이 맑아 붙여진 이름이다. 청담동은 원래 경기도 광주군에 포함되어 있다가 1963년에는 성동구, 1975년에는 강남구에 속했다. 1977년에는 그 일부가 삼성동으로 분동하기도 했다. 강남에서 유일하게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하는 지역으로, 올림픽대로·압구정로·삼성로·선릉로·도산대로·영동대로 등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 이야기 하나 더
청담동의 갤러리아백화점을 기점으로 삼성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명품거리’라고 부른다. 1995년 갤러리아백화점 명품점이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1996년 서울시의 ‘특화거리 조성 사업’을 통해 그 이미지가 굳어졌다. 대로변을 중심으로 여러 명품 매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주력 또는 대표 매장)나 편집 매장이 여럿 등장하며 ‘패션거리’로 거듭났다.

강시내 일러스트 정민주

문서 정보

[서울 옛 이름] 물과 함께 흘러온 동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07-04
관리번호 D000004844056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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