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명사에게 듣다] 소설가 김영하의 서울 이야기

문서 본문

‘우면산 자락에 자리한 서울시 인재개발원 숲속 강의실에서 지난 10월 5일 특별한 인문학 강의가 펼쳐졌다.
서울연구원이 기획한 2016 도시 인문학 강의 ‘5감의 도시, 서울’의 마지막 아홉 번째 강의 ‘소설가 김영하의 도시 이야기’가 진행된 것이다.
인간과 도시를 통찰하는 소설가 김영하의 강의 내용을 추려 <서울사랑>에 싣는다.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보자.

 

이야기와 도시, 인간이 혼돈을 다루는 방식

인간의 역사는 이야기와 도시를 통해 존재합니다. 도시는 인간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고, 인간은 모이면 반드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월 스트리트의 주식 중개인부터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까지 모두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발전한 문명에는 창건 설화, 창세 설화가 반드시 존재하고, 모든 문명은 이야기를 소비합니다. 우리도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 뉴스 등 많은 이야기를 매일 소비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인간이 살면서 경험한 수많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해님 달님>의 호랑이 이야기를 예로 들면 ‘산길에는 호랑이가 있다’, ‘함정은 위험하다’, ‘배은망덕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 등 다양한 정보를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바로 이 같은 이야기를 통해 ‘낯선 사람을 주의하자’, ‘타인을 경계하고 정보를 확인하라’ 등의 메시지를 전달받거나 전달합니다.
도시 역시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모두 도시로 집결했습니다. 오래된 도시에는 인류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도시 설계 자체에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도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정글 같은 칼레 난민촌도 무질서해 보이지만 도로와 공공 공간, 거주 지역 등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도시는 인간이 혼돈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도시를 떠난 삶을 추구하고, 일시적으로 도시를 거부할 수 있지만, 인간은 언제나 도시의 기능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사건을 단순화해서 보여줍니다. 어린이가 읽는 동화에는 흔히 부모 없는 아이가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아주 위험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주변 사람과 협력해 상황을 극복해나갑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경험을 간접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듯 인간이 현실이라는 카오스를 다루는 방식은 바로 이야기이고, 자연이라는 카오스를 다루는 방식은 바로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무시무시하고, 인간이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자연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인간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회복력을 제공해줍니다. 따라서 공원, 정원이 있는 곳에서 인간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도시가 이야기를 규정한다

도시는 이야기를 규정합니다. 런던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기차역 시계탑이 상징하듯 어떠한 장소에 정시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도시에서 추리소설이 생겨납니다. 정확한 계산을 통해 범인을 찾는 탐정의 추리가 맞으려면 런던 같은 도시여야만 했습니다.반면 오르한 파묵(Orhan Pamuk) 소설의 무대가 되는 이스탄불은 로마와 이슬람 문화가 혼재된 도시입니다. 런던이 질서 정연한 직선의 도시라면, 이스탄불은 구불구불한 길, 다양한 문화권의 설화들이 패치워크처럼 뒤섞인 도시입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광주 대단지 이야기가 있었기에 등장한 작품입니다. 황막한 폐허, 철거 딱지 하나에 의존한 주인공들의 삶은 그 시대 도시 빈민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잠실 주공아파트 1단지의 연탄을 때는 13평 아파트였습니다. ㅁ자 모양으로 배치된 아파트들은 아무 특징도 없이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년을 보낸 이곳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억을 완전히 소거하는 방식으로 서울이라는 도시가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신혼살림을 차렸던 성산동 아파트에서는 난지도 쓰레기 산이 월드컵경기장과 공원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성산동 아파트에서의 경험은 제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골목과 광장의 ‘강북’ & 쇼핑몰의 거리 ‘강남’

오늘날 서울이라는 도시는 똑같은 것을 복제합니다. 균질의 공간이 늘어나면서 장소와 관련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도시 이야기는 골목과 광장에서 시작합니다. 강남은 쇼핑몰 같은 균질화된 공간으로, 사람과 차가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계획된 도시입니다. 반면 강북은 골목과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무질서한 공간으로, 차가 멈추면 사람이 모입니다. 공적인 공간인 ‘광장’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주요한 사건은 모두 강북에서 벌어졌습니다. 강남은 공공의 공간이 사유지에 잠식됩니다. 잘 차려입은 소비자의 공간이고, 모든 것이 쾌적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소설가가 쓸 이야기가 없습니다.
도시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찰이 있을 때, 공적 공간과 인간이 마찰을 일으킬 때 생깁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도시를 인식합니다. 그리고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을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소설가 김영하
제9회 김유정문학상, 제36회 이상문학상 등 수상.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검은꽃>, <빛의 제국>, <살인자의 기억법>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문서 정보

[명사에게 듣다] 소설가 김영하의 서울 이야기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11-07
관리번호 D0000028037145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