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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국외여행 결과보고

문서번호 남북협력담당관-10305 결재일자 2019.11.5. 공개여부 부분공개(5) 방침번호 시 민 주무관 사회문화교류팀장 남북협력담당관 남북협력추진단장 서도석 정환학 김창현 11/05 황방열 협 조 공무국외여행 결과보고 2019. 11 남북협력담당관 안중근 의사 의거 기념식 참관 국외출장 결과보고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0주년 기념식 및 유적지 등 행사를 참관 하고 그 결과를 보고드림 Ⅰ 출장개요 ○ 일시/장소 : 2019.10.24.(목)~10.26.(토) / 중국 하얼빈 ○ 주 최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 행사내용 : 문화공연, 기념식, 유적지 방문 등 ○ 참가규모 : 60여 명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회원, 일반시민, 학생 등 ○ 참가목적 : 서울시 예산 지원 관련 행사 전반 점검 Ⅱ 주요일정 일 시 행 사 내 용 비고 10.24(목) (1일차) ? 인천출발 → 하얼빈도착 ? 조린공원 - 안중근의사가 유언으로 남긴 옛 하얼빈공원 10.25(금) (2일차) ? 동북항일열사기념관 ? 정률성기념관 방문 ? 문화공연 10.26(토) (3일차) ? 안중근의거 기념 미사 ? 안중근의사 기념관 방문 ? 731세균부대 방문 - 만주 하얼빈에 세워진 일제 만행 고발 현장 참관 ? 하얼빈출발 → 인천도착 Ⅲ 행사 내용 ○ 조린공원 방문 ? 1900년에 세워진 하얼빈 최초의 공원, 중국의 항일 운동가인 이조린(李兆麟)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에 이 장군의 유해를 안장하고 조린공원으로 명명. ? 유묵비의 앞면은 '청초당'과 단지 손도장이 새겨져 있고 뒷면은 '연지' 라고 쓰여 있는데, 청초당과 연지는 안중근 의사가 옥 중에서 쓴 휘호를 옮긴 것으로 안중근 의사는 평소에도 조린공원을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던 일이 많았다고 함 ? 여순 감옥에서 사형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안정근, 안공근 두 동생들에게는 "내가 죽으면 조린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의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쟁해달라"는 유언을 남김 ? 조린공원 정문 및 조린공원의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유묵비 ? 청초당(靑草塘)은 “못가에 파란 풀이 돋아난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암울한 일제치하에서도 못가에 봄풀이 돋아나듯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과 염원을 담은 글 ○ 기념미사 및 기념만찬 기념미사 기념만찬 ○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 ? 중국 하얼빈시 하얼빈역 구내에 있는 기념관. 2014년 1월 19일 하얼빈역에 개관 ? 중국에서 다른 나라 인물의 기념관을 개관한 것은 이례적인데 개관당시 중국은 '안중근 의사는 저명한 항일의사로 중국 인민의 존경을 받는다'라고 의의를 부여 ? 안중근의사 동상과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근현대사 동북아시아 유력 지도자들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칭송 글들이 다수 전시 ? 저명한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동북아 항일투쟁의 기나긴 항거의 시발점으로 대단히 높게 평가하며, 동양평화의 선각자로 사상가로 안의사를 추모 (영웅의 면모가 부각됨) 안중근 의사 동상 - 참가자들이 안의사의 항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념관에 전시된 이등방문 주살 장면도 안중근의사의 동상과 안의사가 남긴 휘호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의 동북아적 의의를 적시 안중근 의사가 집을 떠나면서 지은 시 “사나이 큰 뜻 품고 타국으로 떠나가니 살아서 성공못하면 죽어서 돌아오지 않으리..유골을 구태여 선조의 무덤 옆에 묻으랴세상엔 가는 곳마다 청산이 무진한데“ 안중근 의거에 연루되어 감금된 사람들 왼쪽부터 김형재,김성옥,류동하,조도선,우덕순 하얼빈역 이등박문 주살 현장 ? 삼각형이 안중근 의사가 방아쇠를 당긴 곳 ? 사각형이 이등방문이 주살된 곳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서 ○ 정율성 기념관 방문 ? 광주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자 천재음악가로 알려진 정율성은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재중(在中) 작곡가 ? 중국 3대 혁명음악가 중 한 사람이자 항일정신을 고취한 작곡가로 '신 중국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조국인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 더 많이 알려진 인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열단 활동을 하면서 음악으로 항일투쟁을 전개 ? 1928년 광주 숭일소학교를 졸업, 1933년 전주 신흥학교를 중퇴하고 중국 난징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의열단에 가입하여 일본군 감청, 항일 정신 선전 활동 등을 전개하면서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 ? 1936년 첫 작품 '오월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중일전쟁 발발 후 난징 을 떠나 1937년 10월 중국 공산당의 본부가 있는 옌안에 도착. 1939년 중국 공산당 에 가입하고,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 ? 작곡 활동과 함께, 1941년 7월부터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비롯해 이듬해(1942년) 12월부터 타이항산의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 ? "해방행진곡", "3·1행진곡", "조선인민군행진곡" 등 각종 작품 360여 편을 창작 정율성 기념관 정문 및 같은 건물에 있는 하얼빈시 조선민족 예술관 정율선 선생의 동상 정율성 선생을 소개한 각종 자료 조선민족 박물관 하얼빈의 조선족 마을을 형상화 ○ 731 부대 전시관 방문 ? 731부대는 일본 제국 육군 소속 관동군 예하 비밀 생물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중국 하얼빈에 있던 부대로 공식 명칭은 관동군 검역급수부 ? 1932년에 설립되어 중일 전쟁(1937~1945년)을 거쳐 1945년까지 생물·화학 무기의 개발 및 치명적인 생체 실험을 실행 ? 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의사였으며 731부대의 진짜 목적을 위장하기 위해 휴대용 야전 정수기를 개발을 시도 .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며, 히로 히토의 막내 동생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가 부대의 장교(고등관)로 복무 ? 만주국 괴뢰 정부의 영토에 주둔해 대외적으로는 관동군 주력부대에 물을 공급 하는 급수전문 전투지원부대로 알려졌으나 화학·세균전 준비를 위한 연구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 ? 민간인과 군인 모두 1만 명의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이 이 부대의 실험 대상이었으며, 이 부대에서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에 의해 연구된 생물학 무기의 사용으로 수만 명의 중국인이 사망 ? 인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 부대의 속성상, 부대 주변 지역을 전부 소개하고 부대 인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생물학무기를 실험. 실험 대상은‘통나무’ (마루타)라 불리었으며 실험에는 남녀노소를 불문, 심지어 임산부까지 동원. 부패 등이 실험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실험과 해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없이 이뤄졌으며, 수용자들을 다양한 질병에 감염시킨 후 외과수술로 해부하였고,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 ? 연구소에서 키운 벼룩을 저공비행으로 중국 도시에 살포했는데, 1940년에는 닝보 시에서, 1941년에는 창더 시와 허난 성에서 살포. 이로 인해 발생한 페스트 전염으로 수천 명이 사망 ? 1945년 패망 후 부대를 폭파, 소각하여 존재 자체 은폐를 시도하였으며, 모든 실험 자료는 일본으로 가져갔고 이후 미국에서 731 부대의 실험자료를 건너받는 대가로 731부대 관련자들을 면죄 ○ 동북항일열사 기념관 방문 ? 하얼빈에 있는 동북항일열사 기념관을 방문 ?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이 중국어로 기재되어 있으나 조선족 가이드의 풍부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해설로 민족적 자부심이 가득한 투어였음 ? 1930~40년대 북만주에서 수많은 조선족들의 항일무장투쟁 자료를 볼 수 있었으며 그 시기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가 반드시 재조명되어 할 필요성을 체감 ? 동북항일연군의 상당수는 조선족이었다고 하며, 일제와 전투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고 함 ? 수많은 조선족 장군과 무명열사들의 항일 무장 투쟁의 역사에 감동하면서 조속히 우리 역사로 편입되어 일제강점기 치열한 선열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보존할 필요 ○ 문화공연 ? 경기도 국악당 소속 예술인들의 공연 ? 가야금,거문고 등 국악기 연주가 있었으며 소프라노 등 예술인들이 남과 북에서 인기있는 곡을 새롭게 편곡, 열창 (독주 및 합주)하여 기립박수를 받음 ? 하얼빈 예술인들의 안중근의사 찬양곡 열창은 관객들을 숙연케하는 감동의 장이었음 예술인들의 가야금 연주 남북에서 인기있는 곡들을 편곡하여 열창 중국 예술인들이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곡을 열창 Ⅳ 여행 성과 ○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 면모를 체험 - 그간 이등방문을 주살한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금번 출장을 통해 안중근 의사는 이등방문 주살 이전부터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 ?1908년 대한의군참모중장 자격으로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과 격전. ?노에프스키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의 탐방원으로 활약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 - 110년 전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상한 선각자 ?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으며,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공동체를 결성하자는 동양주의로 안의사는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여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등박문을 주살, 학계를 중심으로 동양평화의 선각자로 주목 - 서예에도 뛰어나 옥중에서 휘호한 많은 유묵(遺墨)이 보물로 지정 안중근 의사 연보 ? 1879 :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 1895 :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 ? 1904 : 홀로 평양으로 건너가 석탄상을 운영. ? 1906 : 을사조약 체결 후 상점을 팔아 삼흥학교(후에 오학교로 개칭)를 설립. ? 1907 : 연해주에서 의병운동에 참가. ? 1909 :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절단하며 맹세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 10월, 하얼빈에 잠입,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 체포 ? 1910 :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사형 집행으로 순국. ○ 동북 항일운동의 자긍심을 제고한 생생한 역사교육 - 안중근 의사 기념관, 동북항일운동 기념관, 정율성 기념관 등을 방문 항일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관련 사진과 가이드의 풍부한 역사적 근거에 기초한 해설을 들을 수 있어 항일 역사에 대한 생생한 체험 교육의 장이었음 ○ 행사전반에 남북 평화와 협력을 기원하는 기조를 견지 - - 행사 전반에 남북평화와 화합의 내용을 강조 ? 행사초기 기획 단계부터 남북공동행사로 추진(북측과 합의) ? 언론광고(한겨레신문)를 통하여 남북공동행사임을 공지, 참가시민을 모객 ? ? 조 ? 기념미사, 버스투어 등 행사 전반에 걸쳐 안중근의사의 유지가 남북?동북아 평화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 한반도 평화와 남북 교류협력을 적극 기원?촉구 Ⅵ 향후계획 - 기념식, 유적지 참관 등 행사 전반에 걸쳐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와 북측과의 교류협력을 적극 강조하는 등 북측에 대한 이해를 제고 ※ 참석자 대부분이 유적탐방 등 행사가 전반적으로 감동적이었으며, 민족적 자부심을 제고하고 남북평화와 교류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힘 ○ 안중근 의사 유적지 탐방, 기념식 참가를 남북교류의 중요 계기로 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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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국외여행 결과보고 - 문서정보 : 기관명, 부서명, 문서번호, 생산일자, 공개구분, 보존기간, 작성자(전화번호), 관리번호, 분류정보
기관명 서울시 부서명 남북협력추진단 남북협력담당관
문서번호 남북협력담당관-10305 생산일자 2019-11-05
공개구분 부분공개 보존기간 영구
작성자(전화번호) 서도석 (2133-8934) 관리번호 D0000038535864
분류정보 행정 > 남북교류 > 남북교류협력 > 남북교류협력사업추진 > 남북교류협력같은 분류 문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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