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지금 서울역 뒷동네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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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래되고 낡은 동네들이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니라 마을 주민이 직접 참여해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형태로 변신을 시도한다. 서울형 도시 재생 지역 중 제일 먼저 서울역 서부 지역을 찾아가본다.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선 서울역 앞 동네와 달리 우리나라 근현대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중림동·서계동·청파동은 현재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도시 재생을 준비하고 있을까? '서울산책’의 윤인주 씨와 동네를 구경하며 주민도 만나고 숨어 있는 명소도 들여다봤다. |
서부역에서 바라다보면 제일 오른쪽이 중림동, 가운데가 서계동, 왼쪽이 청파동이다. 어느 동네부터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중림동으로 향했다. 한국 근대사와 1970~1980년대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볼거리도, 들을 얘기도 많을 것 같았다.
중림동은 1914년 일제강점기 경성부가 서울을 186개 동으로 나눌 당시 약전중동과 한림동에서 한 자씩 따온 이름이다. 세월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살던 동네로, 만리동·중림동·봉래동 일대를 ‘약현(약재를 거래하던 서대문 밖 언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약현성당도 옛 명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약현성당까지 약 100m 구간에 중림시장이 자리한다. 중림동 어시장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서울 3대 난전(亂廛) 중 하나인 칠패시장이 있던 자리다. 18세기 후반 칠패시장은 어물 판매량이 시전(市廛)의 내외 어물전보다 10배나 많았다고 한다. 마포, 서강 등지로 들어온 어물이나 곡물 등 생필품 집결지로 최적의 입지였던 것.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경성수산시장으로 바뀌었고 광복 뒤 중림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어시장이 그렇듯 중림시장도 새벽 시장이다.
“옛날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어. 장사가 잘되니까 새벽에 나와도 힘든 줄 몰랐지. 다 옛날 얘기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없고, 장사하기 힘들어.”
영하 10℃의 새벽, 구멍 뚫린 양철통에 피운 모닥불에 언 손을 녹이던 한 상인이 먹고살기 힘들다며 푸념을 한다. 한때는 손님과 장사치로 발 디딜 틈 없던 시장이었는데 1970년대 초에 도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농산물은 가락시장으로, 수산물은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쇠락해져갔다. 지금은 당시 이곳을 떠나지 못한 상인들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수준. 아침 9시면 파장하는 탓에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 중에는 이곳에 시장이 서는 걸 모르는 이도 많다고.
좁고 추워도 내 집, 내 동네에서 살고 싶어
비릿한 냄새가 나는 시장길을 지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으로 올라간다. 이곳에 성당을 세운 이유는 한국인 최초로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의 집이 인접해 있고, 천주교 박해 때 이곳과 가까운 서소문 밖에서 44명의 교도가 순교했기 때문이다. 약현성당은 1998년 2월 화재로 첨탑과 성당 내부가 완전히 훼손돼 복원 공사를 거쳐 2000년 9월 17일 다시 완공되었다.
성당 오른쪽 골목에는 노란색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약현성당이 1971년 수익 사업으로 건축한 성요셉아파트인데, 주로 중림시장 상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40년이 훌쩍 넘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지만 대한민국 1세대 아파트라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성요셉아파트를 끼고 올라가면 전형적 달동네인 호박마을이 나온다. 호박 넝쿨이 무성하던 곳이라 그렇게 불린다고. 비좁은 골목, 스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 지붕을 덮은 방수 천 등 겨울을 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누추한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빈집도 더러 있다.
“이곳도 재개발해야 하는데,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요. 인근 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개별 분담금을 내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걸 많이 봤거든요.” ‘서울산책’의 윤인주 씨는 “주민들과 서울시의 의견 차이가 큰데, 대부분의 주민이 좁고 추워도 내 집, 내 동네에서 사는 걸 원한다”고 한다. 중림동·서계동·청파동에는 유독 원주민이 많이 산다. 50년은 기본이고, 대를 이어 사는 집도 많다. 그러다 보니 개별 분담금을 내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꼭 고향을 떠나는 것 같다고. 호박마을에서 대로변으로 내려오니 맞은편에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손기정체육공원 옆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좌판 장사만 50년이여" - 중림시장 고덕례 할머니 |
외국인 관광객으로 활기가 도는 서계동
손기정체육공원에서 육교를 건너 서계동으로 넘어온다.
이곳에는 1970~1990년대에 지은 서민형 양옥, 나지막한 연립주택과 빌라가 고만고만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서울역 바로 앞쪽에 국군기무사령부 수송대가 있어 그 담의 높이를 넘는 집은 지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다 기무사가 이전하고 2010년 빨간색으로 단장한 국립극단이 들어서면서 큰 건물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서계동의 또 다른 변화는 외국인 관광객과 게스트하우스.
“서울 시내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고 교통도 편리해 많은 외국인이 이곳에 머물러요.”
서계동 터줏대감인 개미슈퍼 주인 차효분 씨에 따르면 원래 조용한 동네였는데, 국립극단이 들어오고 외국인 관광객도 늘면서 활기가 돌고 있다. 서슬 퍼런 바이러스 대신 유쾌한 바이러스가 동네에 퍼지고 있는 걸까? 서계동·만리동·청파동 일대에는 아직도 소규모 봉제 공장이 꽤 많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가 폐쇄되면서 우회 교통 정체로 납품 지연이 이어지는 까닭에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이 같은 영세 봉제 공장을 위해 경영 상담및 지원 사업 안내, 인력 양성, 작업 환경 개선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구상 중이다.
서계동·만리동·청파동 일대에는 아직도 소규모 봉제 공장이 꽤 많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가 폐쇄되면서 우회 교통 정체로 납품 지연이 이어지는 까닭에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이 같은 영세 봉제 공장을 위해 경영 상담및 지원 사업 안내, 인력 양성, 작업 환경 개선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구상 중이다.
"100년 된 슈퍼 구경 오세요" - 개미슈퍼 주인 차효분 씨 |
적산 가옥부터 아파트까지 20세기 집 박물관
만리동 고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만리시장에서 배문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오면 청파동이다. 중림동이나 서계동에 비해 골목도 넓고 말끔하다. 청파동은 중림동이나 서계동에 비하면 부자 동네에 속했다. 일본인을 비롯한 일부 부자가 150평, 200평씩 되는 집을 갖고 살았던 탓이다. 해방 이후에는 숙명여대 인근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상권을 형성했다.
건축학자 임석재 교수는 청파동을 두고 “가히 20세기 집 박물관이라 할 만한 동네”라고 평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주택, 한국전쟁 후에는 도시형 한옥, 1970년대에는 서민형 양옥, 1980~1990년대에는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들어섰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빌라고, 일본식 가옥은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야 한다. 하지만 찾고 나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뿌듯하니 청파동에 간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기 바란다.
점심 무렵부터 시작된 중림동·서계동·청파동 탐방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났다. 청파동 명물 ‘포대포’에서 돼지 껍데기와 소주로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녹이면서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되새겨봤다.
“중림동을 비롯한 서울역 배후 지역이 발전해야 서울역 일대 등 전체 도심으로 성장 동력이 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역 서부 도시 재생이 서울역 7017 프로젝트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동안 철도 때문에 단절되거나 소외되었던 중림동·서계동·청파동이 서울역 7017 프로젝트와 함께 앞으로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바라건대, 어떤 식이든 이웃 간에 등 돌리지 않고 옛 모습이 깡그리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돈이 없어 쫓겨나지 않는, 그런 변화였으면 좋겠다.
"서울에 오면 서계동에서 묵어요" - 하리스와 친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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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서울사랑
본 콘텐츠는 서울시'내 손안에 서울'에서 게재중인 콘텐츠 입니다. 내 손안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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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 내손안에서울 | 제공부서 | 콘텐츠담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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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서울사랑 | 생산일 | 2016-03-15 |
관리번호 | D0000025518465 | 분류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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