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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동 골목에 들어선 작은 전시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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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효창동 주택가 골목에 들어선 `예술의 기쁨` 전시관

지난 7월, 서울 효창동 주택가 골목에 들어선 `예술의 기쁨` 전시관

서울 효창동 주택가 골목에 특별한 전시관이 들어섰다. ‘예술의 기쁨’이란 이름으로 지난 7월에 개관한 이곳은 조각가 김세중(1928~1986)과 시인 김남조(88) 부부가 1955년부터 거주한 오래된 옛집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김남조 시인은 15년 전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세중기념사업회를 통해 190여 평의 대지를 기증했고, 3년간의 공사 끝에 연면적 234평의 2층짜리 건물을 지난 7월 준공했다.

광화문 이순신동상을 만든 김세중 조각가는 김남조 시인의 남편이기도 하다

광화문 이순신동상을 만든 김세중 조각가는 김남조 시인의 남편이기도 하다

김남조 시인의 부군인 조각가 김세중(1928∼1986)은 광화문 이순신동상을 만든 조각가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마침 전시관에서는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작가 23명의 개관기념전(지난 7월14일부터 올 연말까지)’이 열리고 있었다. 김세중 조각상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고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7년 한국 현대조각 1세대 작가인 선생의 예술적 위업을 기려 제정됐으며 올해로 29회를 맞았다.

백색 칠한 벽과 높은 천장은 전시장에 경건함을 더한다

백색 칠한 벽과 높은 천장은 전시장에 경건함을 더한다

‘예술의 기쁨’은 전시와 각종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대형 전시실과 소형 전시실, 공연장, 담소공간, 옥상, 자갈공원 등으로 구성됐다. 백색의 대형 전시실은 높은 천장과 전면의 훤히 보이는 통창으로 인해 다소 경건한 분위기이다. 넓은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채광은 실내조명이 빛을 잃을 정도로 밝다. 전시관 마당의 수령 600년 된 상수리나무는 두 개 동으로 이어지는 건축물 사이에 우뚝 솟아 튼튼한 대들보인양 전시관을 받쳐주고 있다.

조각가들은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달할까?

20여점의 전시작품 중에는 조각 외에도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실험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도 있었다. 조각이라고 하면 통상 나무와 쇠, 돌 같은 재료를 깎거나 틀을 만들어 브론즈 작품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정형성을 탈피한 작품들도 상당 수 있어 눈길을 잡아끈다. 시와 스케치, 크레파스케이스, 병따개 등 다양한 물체들이 집합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진이나 의상이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한국전쟁당시 주한미군 부대를 찾은 마릴린먼로 위문공연 사진으로 만든 작품

한국전쟁당시 주한미군 부대를 찾은 마릴린먼로 위문공연 사진으로 만든 작품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을 위문하고자 한국을 찾은 마릴린먼로의 위문공연 사진은 작품 ‘서해별곡(이상현작가)’으로 전시돼 있었다. 설치미술인 듯 퍼포먼스인 듯 다양한 미술의 장르를 포괄하고 있어 뚫어져라 응시하게 한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해 작품 해석이 좀 어긋난들 어떠랴? 계속 유추해 내는 상상이 한편으론 관람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끈다. 다소곳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의 여인상에서, 헬멧을 쓴 채 반 쯤 눈을 감고 모로 누운 조각상 앞에서 많은 생각들을 키운다.

헬멧을 쓴 채 반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조각상 앞에서 생각에 잠겨본다

헬멧을 쓴 채 반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조각상 앞에서 생각에 잠겨본다

현대사회 속 고립된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여인의 우수 어린 뒷모습이 못내 아쉽고 웅크리고 있는 사람은 아프지 않은지 살피며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진다. 친절한 작품설명이 따랐다면 아마도 무생물체인 조각상에 이만치나 동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멋대로의 이런 작품 감상은 포만감을 주기도 한다. 굳이 미술사적 작품 해석 보다는 음악 감상하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다녀가라는 의미로 읽힌다.

작품 배치도 전시실뿐이 아닌 곳곳에 해 즐거움을 더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전시관 입구와 계단, 심지어 지하 주차장 출입구에도 숨은 그림처럼 튀어 나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만든다. 외벽에 걸린 전시작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또한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 무심코 발견하게 됐다. 1시간이면 돌아보기에 충분하지만 하나하나 작품을 마주하고 음미하다 보면 포만감이 느껴진다.

야외전시장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 흉상

야외전시장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 흉상

3층 옥상은 야외전시장이다. 사방이 탁 트인 이곳으로 나오면 상수리나무는 더욱 푸른빛을 띤 채 넓은 그늘을 드리운다. 저만치?이순신장군 동상이 보인다. 전신상 아닌 흉상이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볕이 내리쬐는 옥상 뜰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듯 광화문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1968년 김세중 작’이라고 씌어진 글귀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동상을 제작한 고인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 됐다. 어느덧 찾아 온 가을은 장군의 동상 아래에도 나뭇잎새와 도토리깍정이를 떨구고 있었다.

부부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예술인들의 둥지가 된 이곳에서는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작가 23명의 개관기념전’에 이어 30주년인 내년에는 ‘조각상 역대 수상작가의 전시’를 마련할 예정이다.

“문턱을 낮춰 많은 예술인들이 부담 없이 교류할 수 있는 둥지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개관날에 전한?김남조 시인의 축사처럼 이곳이?늘 따뜻하고 수준 높은 예술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는 예술 공간이 되길 바란다. 전시관 관람은 무료이며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 ‘예술의 기쁨‘ 전시관

?○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5-390번지

?○ 문의: 02-713-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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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동 골목에 들어선 작은 전시관 이야기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5-10-12
관리번호 D000002382214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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