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서울은 그대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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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씨케이

도시 이야기는 도시만큼 복잡하고 삭막할 것 같지만, 그 곁에 앉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면 또 다른 도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의 저자 정석 교수(서울시립대)가 그 속 깊은 도시 이야기를 격주 목요일마다 들려줍니다. 그의 칼럼을 통해 서울 곁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1) 서울과 나 - 서울은 내게 무엇인가?

지방도시에서 나고 자라던 내가 서울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포함해서 온 가족이 아주 큰맘을 먹고 창경궁 나들이를 왔다. 그땐 궁에 동물원이 있었고 이름도 창경원이라 불렀다. 두 번째 서울여행은 이듬해였다. 중학교 미술부원들과 함께 홍익대학교 미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밤새 완행열차를 타고 올라와 새벽에 서울역에 내렸다. 그렇게 스치듯 잠깐 잠깐 서울과 첫 만남을 가졌다.

본격적인 서울살이는 대학 새내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고속버스 안에서 만난 서울의 첫인상은 관악산이었다. 그때의 낯선 풍경이 지금도 떠오른다. 나무와 숲으로 덮여있던 고향의 산들과 달리 나를 맞이하는 서울의 산은 바위투성이였다. 자취집에서 학교까지 오가던 거리들도 온통 공사판이었다. 지하철공사를 하느라 사당역에서 봉천동 신림동에 이르기까지 거리는 대부분 공사 중이었다. 꿈꾸던 대학 입학의 즐거움은 아주 짧은 찰나였고 대학생활은 씁쓸했다. 관악캠퍼스는 전투경찰들이 늘 상주해 있었고 데모와 최루탄으로 조용한 날이 드물었다. 졸업정원제의 압박감도 새내기 어깨를 짓눌렀다.

아주 오래된 옛날 일이지만 서울에 처음 와서 살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때의 낯선 느낌, 불편한 느낌, 그리고 조금은 우울했던 느낌들이 되살아난다. 매일매일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밋밋하고 재미없던 나의 서울살이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한 살 위 우리 형이었다. 한해 먼저 서울에 올라와 미대를 다니던 형은 서울과 친해지지 못하고 자꾸 겉돌기만 하는 아우를 데리고 을지로 뒷골목과 청계천으로 또 동대문운동장으로 안내했다. 멀리서 또 겉으로 보던 서울과 달리 골목길 안 서울의 속살은 내가 살던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재래시장의 독특한 냄새가 서울에서도 맡아졌고, 왁자지껄한 골목길 풍경도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형의 도움으로 서울과 조금씩 낯을 트고 정을 붙여갔다.

대학 2학년 때부터 도시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까지 모두 마친 뒤 서울연구원에서 또 대학에서 도시공부를 계속해온 게 어느덧 33년째다. 나의 도시공부의 대상은 거의 대부분 서울이었다. 도시를 공부하면서 아니 서울을 공부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고 또 아주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다.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인연이 깊어지면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오래 사귀고 사랑해서였을까. 지금은 서울과 눈을 맞추고 얘기를 주고받을 만큼 가깝고 막역해졌다.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이고 발효되고 우러나오듯 서울과 나눈 정 또한 깊어지고 두터워졌다.

도시란 무엇일까? 서울은 내게 무엇일까? 도시는 물건일까? 아니면 발명품이나 작품일까? 상품일까? 도시가 물건이나 발명품이라면 도시설계는 물건 만들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장인이나 예술가가 멋진 도시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도시는 그런 것일까? 아니면 도시는 유기체나 생명체 같은 것일까? 건물과 도로와 시설물만이 도시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함께 본다면 도시는 생명체일지 모른다. 사람만 도시에서 살아갈까? 아니다.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들도 함께 살고, 새들과 물고기와 나비와 벌과 개미들도 우리와 함께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 도시는 어쩌면 이들 생명들과 자연과 인공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거대한 생태계일지 모른다. 도시를 생명체나 생태계로 본다면 도시설계는 생명을 돌보는 일이 될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나는 도시를 사람처럼 보았으면 한다. 서울을 사람처럼 바라보고 서울에서 살면 어떨까? 서울은 어떤 사람일까? 나의 삶을 품어주고 돌봐주는 어버이 같은 존재는 아닐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나를 이끌어주고 돕던 우리 형과 같은 존재, 누이와 같은 존재로 보면 어떨까? 아니면 내가 몹시 아끼고 사랑하는 연인처럼 생각할 수는 없을까?

도시를 사람처럼 대한다면, 서울을 연인처럼 바라본다면,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 다가가 앉듯 서울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한다. 서울 곁에서 우리는 서울의 냄새를 맡고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곁에서 살가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것이고, 또 서울의 아픔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서울은 이렇듯 애틋하다. 당신에게 서울은 어떠한가? 서울은 그대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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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그대에게 무엇인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정석 생산일 2015-10-08
관리번호 D000002380384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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