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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클럽은 단지 유흥문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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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시민들이 거리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뉴시스

홍대에서 시민들이 거리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17

<미녀들의 수다>라는 외국인들의 토크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지목한 곳이 바로 홍대 앞이었다. 한 외국인이 아시아 최고의 여행지로 홍대 앞을 꼽자 한국 출연자들과 방청객들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모두들 여행지를 경치 좋은 곳이나 유서 깊은 곳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경치 좋은 곳이 아니어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재미있게 하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면 어디라도 훌륭한 여행지가 될 수 있다.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홍대 앞을 꼽았다는 건 그 거리에 그런 특징이 있다는 뜻이다.

홍대 앞이 처음부터 그런 공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곁에 있는 신촌이 유흥지로 크게 발달한 것에 비해 홍대 앞은 후미진 지역이었다. 그래서 길도 좁았고 임대료도 쌌다. 90년대 후반 경부터 홍대 앞에 클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나이트클럽은 댄스음악과 발라드 브루스 타임이 반복되는 획일적인 구성이었지만, 홍대 클럽에선 록음악을 필두로 다양한 음악들을 틀었다. 나이트클럽과 같은 부킹이나 부비부비 문화가 없었고, 대신에 자신들만의 음악을 창작하는 밴드들이 공연을 펼쳤다. 저렴한 임대료로 상업적 압박이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현상이다.

그리하여 서울시내 다른 유흥가에선 그때그때 대중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주류 문화만을 접할 수 있었지만, 홍대 앞에선 특이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홍대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타를 맨 인디 음악인과 원래부터 홍대 앞 싸구려 공간을 점유했던 미술, 디자인 계통 종사자들이 만나고, 그러한 문화에 매력을 느낀 출판인, 방송인, 영화인, 그 외 주류취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서울 어디를 가나 상업적인 주류 문화만 있는 현실에서 홍대 앞은 다양한 취향의 해방구 역할을 하게 됐다. 문화적 소수자들의 근거지가 된 것이다. 외국인은 이방인이며 소수자다. 이들은 가장 열린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문화적 소수자들을 품어낸 홍대 앞이야말로 서울에서 소수자와 타자에게 가장 열린 공간이었다. 그 어떤 취향이나 개성도 용납 받을 수 있는 관용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소수자와 타자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바로 그래서 <미녀들의 수다> 속 외국인들이 홍대 앞 찬양에 나섰던 것이다.

서울은 문화적 매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도시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상업문화가 깔려있다. 그러한 서울의 문화성을 올려주는 지역이 두 곳 있었다. 바로 클럽문화가 발달한 홍대 앞과 극장공연문화가 발달한 대학로다. 이 두 곳의 특징이 잘 발전했다면 서울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도시가 됐을 것이다.

불행히도 현실은 그 반대가 돼가고 있다. 대학로는 홍대 앞보다 훨씬 앞서서 그 활력을 잃었다. 공연장들이 조금 영업하는 것이 특이할 뿐 거리의 성격 자체는 일반 유흥가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유흥문화가 발전하고 지역의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연극인을 필두로 한 예술인들이 지역을 떠났기 때문이다. 홍대도 점차 유흥공간으로 변해간다. 남아있는 클럽들도 록음악이나 인디음악이 아닌, 댄스음악을 틀어주는 나이트클럽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러면 홍대 앞의 활력과 매력을 만들어냈던 문화인들은 흩어지고 말 것이다.

대학로와 홍대 앞의 활력이 사라지고 난 후, 다시 또 그런 문화적 활력을 가진 곳이 자연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다. 이미 형성된 지역의 문화적 활력을 더 높여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지역발전을 상업적 가치의 상승으로만 인식했다. 하지만 홍대 앞 같은 곳에선 단순한 상업적 가치의 상승이 문화적 매력을 죽인다. 그러니까 홍대 앞을 발전시키려면 기존의 지역개발 방식과는 다른, 문화인의 활동을 직접 지원해 지역의 문화적 활력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홍대 앞이 서울의 문화발전소로, 국제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곳으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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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클럽은 단지 유흥문화일까?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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