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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됐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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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6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종이접기 아저씨가 등장했다. 1988년부터 20여 년간 TV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종이접기를 가르쳐, 어린이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김영만이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과거 ‘종이접기 아저씨’, ‘색종이 아저씨’ 등으로 불렸다.

그의 종이접기 방송 앞에서 유년기를 보낸 2030 세대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일단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그 모습을 촬영하고, 촬영된 영상을 편집해 일반 TV로 내보내는 2중 방송 체제다. TV 방송은 시청자가 아무리 많아도 방송이 끊기지 않지만 인터넷 방송은 원래 예상했던 숫자보다 많은 사람이 몰리면 방송 서버가 다운된다. 바로 이번 회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서버 다운으로 인터넷 방송이 몇 차례 중단됐다. 2030 세대의 폭발적인 호응 때문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선 그동안 백종원의 독주가 이어졌었다. 제작진은 김영만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이, 마치 백종원이 한 명 더 나타난 것 같은 충격이라고 했다. 요즘 백종원의 인기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김영만 등장에 대한 열기도 사회현상 수준이었다.

사회현상이라는 건 지금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어떤 특징이 반영돼 크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연예인이 예쁘고 잘 생겼거나 재미있어서 호응이 나타난 것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의 욕망이 드러난 사건이다.

김영만이 방송을 하는 동안 채팅창엔 눈물이 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김영만 관련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연관 심리 키워드로 ‘줄어들다, 작다, 울다, 눈물나다, 좋다, 눈물 흘리다, 핫하다. 푸근하다’ 등이 등장한다. ‘줄어들다’와 ‘작다’는 어린 시절 크게 보였던 아저씨가 이제는 작게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울다’라는 키워드다. 방송이 끝난 후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자인 서유리가 눈물이 났다는 소감을 올리기도 했다. SNS에도 울컥했다는 소감이 줄을 이었다.

사실 김영만의 종이접기 방송이 그렇게 재미있었던 건 아니다. 재미로 따지면 얼마 전에 있었던 이은결의 마술쇼가 훨씬 흥미로웠고, 연예인들이 몸을 던져가며 만들어주는 쇼도 종이접기보다는 재미있을 것이다. 종이접기는 한두 번 정도는 흥미로울지 몰라도 곧 싫증날 수밖에 없는 콘텐츠다. 그런데 왜 2030 세대가 뜨겁게 반응한 것일까?

김영만이 젊은이들을 어린 시절로 소환했기 때문이다. 김영만은 시청자들을 어렸을 때 그대로 ‘자 우리 친구들’, ‘우리 코딱지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과거에 그랬듯이 자상하게 종이 접는 과정을 설명해나갔다. 시청자는 김영만과 함께, 고사리 손으로 종이접기를 따라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네티즌은 ‘아저씨가 다 큰 우리를 애기 취급해줘서 좋다’고 했다.

2030 세대의 어른세상은 고달프다. 학자금 대출에, 취업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상은 사사건건 나를 평가하고 조금만 부족하면 인정사정없이 내친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몇몇을 제외하면 자상하게 자신을 끌어주는 사람도 없다.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세상은 막막하고 힘들기만 한 곳이다.

바로 그때 종이접기 아저씨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옛날 호칭과 말투 그대로였다. 종이접기 아저씨는 ‘우리 친구들, 이젠 어른이 됐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다독였다. 2030 세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어른이 됐지만 아직도 세상은 힘들기만 하다고 하소연하고 싶어졌다. 세상은 나를 평가만 하고 잘라내지만 종이접기 아저씨는 내 말을 다 들어줄 것만 같았다.

이런 심정에서 프로그램의 재미와 상관없이 2030 세대의 큰 호응이 나타났던 것이다. 만약 미래 희망이 넘치는 분위기였다면 젊은이들이 추억 소재에 눈물 흘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영만 깜짝 돌풍은 우리 사회 2030 세대가 그만큼 불안한 상태라는 걸 보여줬고, 그래서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봐야 할 젊은이들이 추억에 눈물짓는 사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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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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