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서울마을이야기] 모두가 주인이 되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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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꾼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모두가 주인인 도서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도서관을.” ‘모두’의 비전을 읽으면, 국내 최초 다문화도서관에 왜 ‘모두’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다양한 나라와 문화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 어떻게 생겼고 어떤 언어를 구사하든 다 같이 동등하고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곳. 이문동에 자리잡은 다문화도서관 ‘모두’는 전세계로 열린 곳이다.

`모두` 활동가 선생님들이 일하는 곳. 책을 빌리려면 여기로!

`모두` 활동가 선생님들이 일하는 곳. 책을 빌리려면 여기로!

‘모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멀리 잡으면 1994년 10월에 한글교실을 개설한 게 시작이랄 수 있겠네요. 글을 배우고 세상을 알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기에, 한글을 배우지 못한 분들을 위해 수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수업을 하다 보니 이 사람도 한글 모르는데 좀 가르쳐 달라며 외국인노동자를 데려오는 분들이 있었죠. 그래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한글교실’을 1998년에 개설했지요. 교실에 노동자뿐 아니라 결혼이주여성들도 많이 오는데, 자신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애써 아이들과 대화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어요. ‘저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아이들과 대화하려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이분들을 위해 모어(母語)보육 환경 조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서인지 모국어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더라고요. 그때 생각이 닿은 것이 책이었어요. 책을 같이 읽으면 잊힌 언어가 조금 더 쉽게 나올 수 있겠구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도 전달할 수 있으니 효과적이겠구나라고요. 마침 ㈜STX에서 기업사회공헌차원으로 다문화도서관 개관을 지원해 주셔서 2008년 9월에 이문동의 ‘모두’가 개관할 수 있었어요.”

도서관 `모두`의 안내자이자 활동가 장지현 선생님

도서관 `모두`의 안내자이자 활동가 장지현 선생님

활동가 장지현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사단법인 ‘푸른사람들’이 20여 년 전 활동을 시작한 것이 ‘모두’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느껴졌다. 이주민들의 교류와 상담을 위한 ‘이주여성사랑방’과 ‘이주노동자팀’, 그리고 한글교실이 바탕이 된 ‘푸른어머니학교’를 운영하는 ‘푸른사람들’은 이문동 ‘모두’의 운영 주체이기도 하다. 이문동을 시작으로 ‘모두’는 전국에 일곱 군데가 있다. 창원, 부산, 구미, 대구, 충주, 그리고 제일 나중으로 안산에 개관한 것이 2011년. 하지만 ㈜STX의 지속적인 후원이 어려워지면서 전국의 ‘모두’ 도서관들은 각자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이문동 ‘모두’는 사회복지공동모금을 통한 기업 후원금과 일반 후원금 등으로 운영중이다.

‘모두’는 다문화도서관이자 어린이도서관, 그리고 마을도서관이다. 한국어 책 14,000권, 외국어 책 7,000권은 대부분 유아부터 청소년을 독자로 삼는 것들로, 크게 언어별, 종류별(만화책은 별도 서가가 있다)로 정리되어 있다. 조용하고 엄숙한 도서관이 아니라 푹신한 쿠션이 놓인 긴 나무의자들, 숨어서 책 읽기 좋은 낮고 평평한 의자들이 곳곳에 있고,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며, TV나 칠판이 설치된 세미나실도 세 개 있다.

6월, 도서관 ‘모두’는 찾아오는 이들을 캄보디아로 초대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파랗고 빨간 캄보디아 국기, 물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종이 수련들, 곳곳에 아이들이 한국어와 캄보디아어 써 둔 인사, 그리고 커다란 앙코르와트사원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캄보디아어로 쓰인 책들이 눈에 잘 띄는 서가에 나란히 꽂혀 있다. 도서관의 회원이자 도서관을 위해 일하는 캄보디아인과 한국인 활동가들의 솜씨다.

매달 특정나라를 정해 널리 알린다. 6월의 해당국가는 캄보디아(좌), 천상의 여신으로 불리며, 앙코르 와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압사라`(우)

매달 특정나라를 정해 널리 알린다. 6월의 해당국가는 캄보디아(좌), 천상의 여신으로 불리며, 앙코르 와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압사라`(우)

“특정 나라를 선정하여 널리 알리는 행사는 꾸준히 해 왔어요. 하루 날을 잡아 동네로 나가 체험 행사를 하기도 했고, 그 나라의 음료를 판매하는 ‘거리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죠. 올해는 ‘이달의 나라’를 선정해서 한 달 동안 그 나라에 맞게 도서관을 단장하고, 그 나라 사람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해요. 지난달에는 중국이었는데, ‘중국의 밤’을 열었죠. 중국 분들은 한국에서 오래 거주하여 한국어가 유창한 경우가 많은데도 행사 끝나고 나서 ‘이렇게 중국어로 실컷 이야기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그만큼 모국어로 마음껏 이야기하고픈 갈증은 이주민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는 얘기죠. 캄보디아 출신 회원은 아직 수가 많지 않아서 그분들의 친구들까지 초청할 계획이에요.”

캄보디아를 테마로 도서관을 꾸미며 가진 오픈식.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캄보디아를 테마로 도서관을 꾸미며 가진 오픈식.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모두의 책들과 사람들

도서관에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22개 언어로 된 책들이 있고, 그 중 베트남, 중국, 네팔, 일본, 태국, 몽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이란, 러시아, 캄보디아, 영어권이 별도 서가를 갖고 있다. 예전에는 ㈜STX의 해외 지사를 통해 책을 사 왔는데 지금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아이가 자라서 가진 책이 필요 없어진 이주민에게 기증을 받거나, 외국 서적 수입 업체를 통해 구매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산다. 이렇게 마련한 책은 한국인 활동가와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서명, 작가명, 타깃 연령층 등의 정보를 외국어와 한국어로 정리하고 분류한다. 책은 도서관 내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고, 후원회원들에게는 관외 대출도 한다.

‘모두’에는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고 ‘모두’를 공간적 기반으로 운영되는 동아리들이 있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교류’ 수업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열린다. 이 수업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여성들이 만나고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아이들이 걱정되어 수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수업하는 동안 아이 돌봄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맡아준다. 동아리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우쿨렐레, 요리 동아리가 있다. 취사가 되지 않아 다른 공간에서 진행하는 요리 동아리를 제외한 나머지 네 동아리는 ‘모두’에서 만난다. 선주민과 이주민 여성들이 관심사를 공유하며 어울리는 자리다.(‘모두’에서는 ‘같은 땅에 먼저부터 살던 사람’이라는 의미로 ‘한국인’ 대신 ‘선주민’이라는 단어를 쓴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이주민 여성의 경우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낯선 경우가 많고, 대개 일이나 육아로 바쁜 생활 때문에 활발하게 올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도 해요. 남편 소개로 한국어 수업을 들으러 오거나 같은 나라 사람들로 이루어진 동네 커뮤니티에서 친구 소개로 와서 도서관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선주민 엄마들처럼 도서관에 자주 오는 게 좋다든가 아이를 데려와서 책을 읽히는 게 좋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엄마 나라 말로 책을 읽어주는 엄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도서관 모두는 다음세대재단이 문화다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올리볼리 그림동화`의 오프라인 학습관이다.(www.ollybolly.org)

엄마 나라 말로 책을 읽어주는 엄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도서관 모두는 다음세대재단이 문화다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올리볼리 그림동화`의 오프라인 학습관이다.(www.ollybolly.org)

그래서 활동가들은 더 많은 이주민 여성들이 ‘모두’에서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사람들에게 모국어로 자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도 하며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돈 벌고 아이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만이 한국에서의 삶이 아니라 자신이 자국 문화를 발신하는 주체가 되는 삶, 다른 이주민 여성을 돕는 삶이 한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자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모어보육’을 강조하는 것도, 매년 ‘세계동화구연대회’를 열어 모어보육 환경이 더 널리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주민 여성들의 주체적이고 즐거운 삶을 위해서다.

“나는 엄마다. 내게는 내 가슴에서 나오는 나의 말로 사랑스런 내 아이의 영혼과 대화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나는 가슴에서 나오는 나의 말로 내 아이의 영혼을 보듬어주고 싶다.
그리하여 내 아이가 걸어갈 삶의 길 위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길잡이가 되고픈,
나는 엄마다.” (모어보육 선언문)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이주민 여성은 자녀들의 한국어가 빨리빨리 느는 데다 자신도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많은 경우 거기에다 외부적 압박이 가해진다. 한국어로 말하기를 강요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왜 그녀에게 한국어가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웃들. 하지만 낯선 외국어인 한국어로는 아이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에 서툴고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엄마나라 말을 하는 엄마를 아이는 싫어하게 되고 무시하게 된다. 자기가 낳고 기른 자녀에게서도 이방인이 되어 버리면 이주민 여성은 내내 위축된 타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를 키우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라도 아이는 엄마 나라 말과 한국어를 모두 할 수 있게 되고, 엄마와 엄마 나라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다.

2012년 세계동화구연대회 모습

2012년 세계동화구연대회 모습

“‘세계동화구연대회’에서 가족 단위로 참가하는 경우와 엄마 나라 말과 한국어를 모두 사용하는 경우에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이 또한 모어보육은 이주민 여성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에서예요. 모어보육을 통해 아이를 잘 길러내는 엄마들을 보면서 첫째는 힘겹게 한국어로 키웠지만 둘째부터는 모어로 양육하는 이주민 여성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어가 부족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에서는 ‘1:1 책친구’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자원봉사자가 일대일로 짝을 이뤄 함께 책도 읽고 문화도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책을 통해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습득하고, 독후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장지현 씨는 이 프로그램을 3년째 하던 아이에게서 최근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대화가 지속된 적이 없는 아이였어요. 질문에 대답해주면 그게 끝이었어요. 더 이상의 반응이 없었죠. 언어적 한계 때문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얼마 전 네팔 지진 구호 성금을 위한 모금함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모금함이라고 설명해줬더니 ‘지진이 뭐예요?’라고 다시 묻는 거예요! 지진에 대해 다 듣더니 ‘아, 불쌍해요. 안됐어요’라고 자기 감정까지 표현하는 거예요.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본 게 처음이라 감격해서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얘기해줬더니 다들 놀랐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지금처럼 가는 게 맞는 거구나,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잘못된 길이 아닌 거구나라고요.”

2000년대부터 결혼이민자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5년 4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184만 명, 이 가운데 결혼이민자는 약 15만 명, 그 가운데 여성은 12만 7,800명이다. ‘이웃집 찰스’ 같은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우리 동네에서 외국인 이웃을 만나는 건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 새로운 이웃들과 서로를 이해하며 동등한 관계로 함께 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도서관 ‘모두’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엄마 나라의 전통놀이를 하며 노는 아이들

엄마 나라의 전통놀이를 하며 노는 아이들

‘(사)푸른사람들’과 ‘다문화도서관 모두’ 후원계좌 :
국민은행 527801-01-291761 (사)푸른사람들(기부영수증 발급)

글과 사진_김민주(자유기고가)
자료사진 제공_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
출처 : 서울마을이야기 vol.29호(201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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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마을이야기] 모두가 주인이 되는 도서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서울마을이야기 생산일 2015-07-16
관리번호 D000002293441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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