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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랑] 영화 ‘도둑들’의 이곳,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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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일대를 가운데에 두고 인근에는 다양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세운상가 일대를 가운데에 두고 인근에는 다양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도시재생 현장을 찾아서
앞으로는 종묘를 바라보고, 뒤로는 남산 자락을 이고 있는 세운상가 일대. 기차놀이 하듯 8~17층 높이 7개의 건물이 줄지어 있다. 40~50대 이상 장년층들에게는 전자제품이나 해적판 레코드를 사러 한 번쯤 들러봤던 곳일 터. 조금은 흉흉한 모습으로 도심 속에 묵묵히, 거대하게 자리한 세운상가를 찾아가 봤다.

1968년 건립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도둑들>의 한 장면. 낡은 아파트 벽면을 타고 날아다니던 영화배우 김윤석(마카오 박역)을 기억하시는지? 영화 속에서는 부산 지역으로 나오지만, 실상 그 장면 대부분을 촬영한 곳은 세운상가 일대다.

70~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세운상가 풍경은 휘황찬란한 세상의 변화도 무심히 빗겨 간 듯 20~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 쇠락한 모습이 오히려 이국적으로 보여서인지 영화 속 단골 촬영 명소가 됐다. 도시의 뒷골목, 범죄 영화나 액션 활극의 무대로 환영받는다.

지금은 누추한 모습으로 도심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세운상가군은 1968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연예인들이 모여 살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종로~을지로~퇴계로에 이르는 1km에 걸쳐 세운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풍전호텔-신성상가-진양상가가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데, 세운상가 북단에 자리했던 현대상가는 지난 2008년 철거했다. 그 자리에 조성한 ‘세운초록띠공원’은 현재 도심 속 벼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도시농장으로 이용 중이다.

70년대 최고 호황, 도심 기능 이전으로 쇠퇴

세운상가 자리는 일제 강점기인 제2차 세계대전 말 폭격으로 인한 도심 화재를 방지하고자 공터로 비워두었던 곳이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판잣집들이 대거 들어섰다.

세운상가는 불량 주거지 정비를 위해 1960년대 대한민국 최초 도심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겉모양새는 볼품을 잃었지만, 세운상가 내부 중정에 들어서면 과거의 영화로웠던 모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세운상가의 전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여전히 전기,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이 남아있다.

세운상가의 전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여전히 전기,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이 남아있다.

‘세상의 기운이 다 모여라(世運).’라는 이름답게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 건립된 세운상가는 7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세운상가에서는 미사일,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전기·전자·기계금속 등 제조업 산업의 메카로 이름을 드높였다. 그러다 80~90년대 강남, 용산 등 대규모 개발에 따른 도심기능 이전으로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잡한 곳, 오래된 상가, 칙칙한 분위기, 허름한 건물’ 등으로 세운상가를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 고가도로는 오랜 세월 동안 낙후된 도심의 상징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고가를 걷어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면 철거가 아닌 ‘도시 재생’이다

1968년 건립 당시 건물들은 발코니 형식의 데크와 공중 보행교로 연결돼 있었으나, 2005년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세운상가 가동과 청계상가를 잇는 공중 보행교가 철거되면서 그나마 유입되던 행인들의 수도 줄어들었다. 최첨단 건축양식이었을 3층 높이의 데크는 낡은 계단과 구조물로 인해 더욱 낙후돼 보인다.

그러나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세운상가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한 달 용돈을 모아 해적판 레코드를 사러 가봤다거나, 어린 시절 부모님과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구경했던 곳. 성인용 비디오를 사라며 붙잡는 호객꾼 때문에 얼굴이 벌개졌던 추억의 공간이 바로 세운상가다. 미우나 고우나 장년층 이상 세대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들이 서려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2009년 세운 녹지축 조성에 따라 전면 철거될 계획이었으나, 경기 침체와 산업 생태계 교란 등의 우려로 지난 2014년 3월 허물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현대상가가 철거된 자리에 들어선 세운초록띠공원

현대상가가 철거된 자리에 들어선 세운초록띠공원

‘100년 서울 함께타운’ 세운상가의 부활 기대

2000년대 들어 10여 년 넘게 이곳에 뿌리를 내렸던 사업체수는 18% 정도 감소했지만, 여전히 세운상가 주변 지역은 거대한 공장과도 같다. 6천여 개가 넘는 사업체가 밀집해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조명기구, 음향기기, 통신기기, 전자부품에서부터 성인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세운상가와 상가 주변 골목의 주물상회, 공업사, 기계상사 등 간판들은 이제는 쉽게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커다란 금속판을 잘라 다양한 기계부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인적이 드물어 한산한 골목을 뒤흔드는 기계 소리, 요란한 용접 불빛을 두고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생업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상가와 아파트 벽면(좌), 청계천 복원과 함께 세운상가-청계상가의 공중 보행교가 사라졌다(우)

영화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상가와 아파트 벽면(좌), 청계천 복원과 함께 세운상가-청계상가의 공중 보행교가 사라졌다(우)

세운상가는 여전히 다양한 잠재력을 지녔다. 남북으로는 남산에서 종묘~창덕궁, 동서로는 동대문~청계천, 명동과 덕수궁에 이르기까지 역사 문화의 황금 축으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동대문의 의류·패션, 귀금속, 충무로의 영화·인쇄/출판, 광화문의 금융·행정까지 제조 기반 창업에 우수한 입지 여건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도시 재생으로 100년 서울의 미래를 이끌어갈 세운상가의 부활을 눈여겨보자.
www.seuncitywalk.org

■ 도시 재생이란?
도시 재생은 개발의 시대에서 철거와 재개발의 시대를 지나 재생의 시대를 여는 미래 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세계 여러 시들도 노후 건물을 새롭게 활용하거나, 쇠퇴한 낙후 지역 재생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고, 공공 공간 거점으로 활용해 주변 지역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차 산업의 쇠퇴로 몰락 위기에 처했던 공장 밀집 지역에서 도시 재생과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공동체 연계를 통해 지역 주민 중심의 경제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한 런던 코인 스트리트, 1970년대 세관 창고였던 건물을 시가 매입해 문화와 쇼핑이 어우러지는 문화 창고로 재생한 요코하마 아카렌카 창고 등은 노후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활용함으로써 지역 활성화를 꾀했다.
12층 아파트 블록과 100여 개의 노점시장을 현대식 재래시장이자 하나의 지역 커뮤니티로 재생한 로테르담의 마켓홀, 150년 된 양조장을 시에서 매입, 리모델링해 관광 명소로 만든 토론토 디스틸러리 역사지구 등 낙후 지역을 재생한 해외 사례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업의 몰락으로 도심이 쇠퇴하자 100개의 공공 공간을 선정해 디자인과 활용 프로그램을 제시한 런던이나 1.2km 보행전용지구를 만들어 활력 있는 거리를 조성한 코펜하겐 등도 공공 공간을 거점으로 도시 재생을 추진한 좋은 사례다.

출처 : 서울사랑 (글_한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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