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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넘치는 매사냥 직관! 왕의 매사냥터에서 열린 '응봉 매사냥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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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마을 대표 축제인 ‘제4회 응봉 매사냥 축제’가 응봉교 하부에서 열렸다. ⓒ조시승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골 제국의 창립자, 칭기스칸. 그는 용맹함뿐만 아니라 총명함과 인간적인 면모로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칭기스칸을 살린 매’ 이야기다.
칭기스칸은 사냥을 나갈 때 항상 매를 데리고 다니며 친구처럼 대했다고 한다. 어느 날, 사냥 나간 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했다. 그러나 이날따라 매가 칭기스칸이 받는 물을 여러번 엎질러 놓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화가 난 칭기스칸은 결국 매를 베어 버렸다. 평소와는 다른 매의 이상한 행동에 칭기스칸은 물이 흐르던 곳 위에 독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후회했다. 독이 든 물을 막아낸 충직한 매는 칭기스칸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사냥을 나갈 때 항상 매를 데리고 다니며 친구처럼 대했다고 한다. 어느 날, 사냥 나간 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했다. 그러나 이날따라 매가 칭기스칸이 받는 물을 여러번 엎질러 놓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화가 난 칭기스칸은 결국 매를 베어 버렸다. 평소와는 다른 매의 이상한 행동에 칭기스칸은 물이 흐르던 곳 위에 독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후회했다. 독이 든 물을 막아낸 충직한 매는 칭기스칸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관내 학생들로 구성된 오카리나 합창단 축하공연이 함께 열려 축제의 흥을 더했다. ⓒ조시승
서울시 성동구 응봉동에서는 지난 10월 19일 마을 대표 축제인 ‘제4회 응봉 매사냥 축제’를 응봉교 하부에서 열었다. 응봉동 마을축제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된 매사냥 축제는 지난 2021년 처음 시작됐으며 과거 응봉산이 왕의 매사냥터로서 응방(매 사냥사육관청)이 설치됐던 역사를 주제로 기획됐다. 잊혀져 가는 매사냥의 전통을 살리는 문화행사다. 응봉동의 유래가 된 응봉산도 매가 많이 산다는 의미에서 매 ‘응(鷹)’자를 쓰고 있다.
매사냥 시연을 위해 박용순 응사(매사냥꾼)가 매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조시승
오전 11시부터 개최된 축제는 무형문화재 박용순 응사(매사냥꾼)의 매사냥 시연이 하이라이트였다. 응사는 ‘매를 부려 사냥하는 사냥꾼’을 칭하는 말로 전국에 단 2명뿐이다. 서울 등 도심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색적인 볼거리다. 식전행사인 풍물놀이, 디제잉 및 체험행사 다음에 매사냥 시연이 응봉교 하부 정원에서 행해졌다.
하늘엔 대형 참매 조형물이 바람에 나부꼈다. 많은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무형문화재의 재현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아이들의 호기심이 많았다. 이윽고 박용순 응사(무형문화재 제8호)가 매를 손에 들고 나왔다. 매는 길들여 졌다고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발에 줄을 매달아 응사가 통제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도 취해졌다.
하늘엔 대형 참매 조형물이 바람에 나부꼈다. 많은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무형문화재의 재현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아이들의 호기심이 많았다. 이윽고 박용순 응사(무형문화재 제8호)가 매를 손에 들고 나왔다. 매는 길들여 졌다고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발에 줄을 매달아 응사가 통제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도 취해졌다.
매사냥꾼 박용순 응사가 매사냥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조시승
매사냥의 시범에 앞서 매와 매사냥꾼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조시승
윈래 매사냥은 추수가 끝날 무렵부터 이듬해 봄까지 야산이나 들판에서 매를 풀어 꿩이나 토끼들을 사냥했다. 우선 사냥을 위해 야산에 그물을 쳐서 매를 잡는다. 야성이 강한 매를 잡아 길들이는 사람을 매꾼 또는 봉받이라 한다. 야산에서 꿩을 모는 털이꾼들이 우~우~ 소리와 함께 작대기로 땅을 치며 앞으로 나가면 수풀 속에 있던 꿩들이 날아오른다. 이때 ‘애기야’ 소리를 지르면 매꾼(봉받이)은 매를 날려 보내 꿩을 낚아채는 방식이 매사냥이다.
매사냥의 시범은 여건상 응사가 모든 과정을 다 할 수는 없어 주요 과정 특히 먹이를 돌리며 매의 주의를 끈 다음 매가 날아오면 먹이를 날려 던져 낚아채는 시연에 중점을 뒀다. 오랜기간 매와 교감하며 소통한 박용순 응사를 신뢰한 매가 일체된 모습. 매사냥 모습을 본 아이들도 함께 온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 간 듯 “와!” 탄성의 소리를 지른다.
매사냥의 시범은 여건상 응사가 모든 과정을 다 할 수는 없어 주요 과정 특히 먹이를 돌리며 매의 주의를 끈 다음 매가 날아오면 먹이를 날려 던져 낚아채는 시연에 중점을 뒀다. 오랜기간 매와 교감하며 소통한 박용순 응사를 신뢰한 매가 일체된 모습. 매사냥 모습을 본 아이들도 함께 온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 간 듯 “와!” 탄성의 소리를 지른다.
아이가 신기한 듯 바라보자 매사냥꾼이 매를 만져 볼 수 있게 지도했다. ⓒ조시승
매는 태생이 높은 산이나 언덕 위의 자연에 익숙해져 있는 맹금류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에 길들여 지더라도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는 경계심이 많다. 자칫 매사냥 시연행사가 의도대로 되지 않고 실수할까 조마조마했으나 깔끔하게 성공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매체험 부스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아 있는 매를 연신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매가 자기를 공격 안 할 것이라는 안심이 들면 만져보기도 한다.
매사냥 홍보부스에서 실제 살아있는 매를 볼 수 있고, 관련 사진과 도구도 함께 전시돼 있다. ⓒ조시승
매사냥 홍보부스에서 볼 수 있는 도구는 대중적인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응사가 직접 제작한다. 사냥매의 이름표격인 시치미와 방울, 절끈, 멍텅구(미끼새), 젓갖끈, 매밥통, 버렁(매 앉히는 장갑), 날림줄, 통아리(횃대) 등 종류도 많았다.
‘시치미 뗀다’는 말과 의미의 유래도 알 수 있었다. ‘시치미’라는 단어는 고려시대 매사냥에서 유래됐다. 당시 사람들은 매사냥 시, 매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의 꽁지나 발목에 시치미라는 작은 뿔 조각을 달았다. 이 시치미에는 매의 이름, 종류, 주인 정보 등을 새겨 매의 소유주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사냥 중에 다른 사람의 매를 발견하면, 시치미를 보고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매인 척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 그 매를 가로채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에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이 유래돼, 지금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렇듯 매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시치미 뗀다’는 말과 의미의 유래도 알 수 있었다. ‘시치미’라는 단어는 고려시대 매사냥에서 유래됐다. 당시 사람들은 매사냥 시, 매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의 꽁지나 발목에 시치미라는 작은 뿔 조각을 달았다. 이 시치미에는 매의 이름, 종류, 주인 정보 등을 새겨 매의 소유주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사냥 중에 다른 사람의 매를 발견하면, 시치미를 보고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매인 척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 그 매를 가로채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에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이 유래돼, 지금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렇듯 매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전통 국궁체험도 할 수 있는 부스가 있어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다. ⓒ조시승
부대행사로 전통의상 대여와 함께 포토존을 운영하고 캐리커처와 활쏘기 등 전통놀이 한마당도 꾸며졌다. 축제는 전통놀이 체험, 축하공연, 디제잉쇼, 먹거리장터 등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리기 좋은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어 흥을 더했다. 오랜 전통의 명맥을 잇는 왕의 매사냥 축제 행사! 성동의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행사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소통하며 어울리는 성동구의 문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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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 내손안에서울 | 제공부서 | 콘텐츠담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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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조시승 | 생산일 | 2024-10-24 |
관리번호 | D0000051944765 | 분류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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