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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길까? 이순신의 거북선 VS. 콜럼버스의 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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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10) 한강변에서 만나는 현대의 거북선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거북선과 해적 영화 속의 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거북선과 해적 영화 속의 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조선 시대의 거북선과 해적 영화에 나오는 유럽의 옛날 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거북선이 이순신 장군의 활약 속에서 싸운 이야기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거북선을 처음 만든 사람이 이순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한국인들이 거북선을 개발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시대보다도 훨씬 더 먼저다. 이미 '조선왕조실록'의 서기 1413년 음력 2월 5일 기록에 거북선을 사용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의 시대보다 거의 200년 앞선 시대에도 한반도의 바다에는 거북선이 돌아다니고 있었다.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개발한 장군이라기보다는 실용적으로 거북선을 잘 활용한 장군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다.

1413년보다 한참 후인 1492년, 유럽의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갔다 오는데 성공했던 배의 크기는 대략 거북선과 비슷하거나 조금 큰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배의 크기를 따질 때 자주 사용하는 단위로 배수량이라는 숫자가 있는데, 이 숫자 기준으로 보았을 때 콜럼버스의 배였던 ‘산타마리아 호’의 크기는 대략 200톤 내외라고 한다. 그런데 거북선의 바탕이 된 조선 시대의 ‘판옥선’이라는 배 크기가 시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100톤에서 300톤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니 산타마리아 호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배수량’이라는 수치는 배를 바다에 띄웠을 때, 그 배를 떠받치고 있는 힘의 크기가 물 몇 톤 무게를 받치는 힘에 해당하는 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배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센 힘으로 물이 받쳐 줘야 배가 가라앉지 않을 테니 이 수치는 배의 규모를 나타내기에 적당하다.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배수량의 의미를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아주 아주 커다란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거기에 배를 띄웠을 때 물이 얼마나 넘치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라고 봐도 좋다. 덩치가 큰 사람이 욕조에 들어 가면 물이 많이 넘치고 작은 사람이 욕조에 들어 가면 물이 적게 넘치듯이, 큰 배가 물에 들어갈수록 물이 많이 넘칠 것이다. 거북선이나 산타마리아 호가 들어갈 만큼 거대한 욕조를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배의 배수량도 넘친 물의 양을 말한다고 보면 맞는 이야기다.

이렇게 넘친 물의 무게는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를 떠받치는 힘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배수량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그 숫자는 같다.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를 떠받치는 힘을 다른 말로 배를 띄워 주는 힘이라는 뜻으로 ‘부력’이라고 부르는데, 부력과 물에 잠긴 물체의 부피, 즉 넘친 물의 무게가 서로 같다는 원리를 로마 시대의 과학자 이름을 따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설처럼 돌아다니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다가 이 원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르키메데스가 당시 배에서 사용하는 펌프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에, 꼭 목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역이 발달한 고대 지중해 시대의 배를 보다가 아르키메데스가 이런 과학 원리를 떠올렸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콜럼버스 시대만 하더라도 조선의 군함과 유럽의 군함은 그럭저럭 한 번 겨루어 볼 만했을 것이다. 배의 특성이 다르고, 사용하는 무기와 병사들의 실력이 다르기 때문에 거북선이 이긴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모르긴 해도, 이순신 장군 같은 뛰어난 장군이 지휘를 했다면 조선의 군함이 콜럼버스의 함대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내 상상이다.
충무공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거북선의 55% 축소 모형
충무공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거북선의 55% 축소 모형
이순신 장군 같은 뛰어난 장군이 지휘를 했다면
조선의 군함이 콜럼버스의 함대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내 상상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역사다. 조선의 거북선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그 이후 유럽은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고, 무역을 하고, 탐험을 하는 일이 수백 년간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아 빠르게 성장하는 역사를 경험했다. 덕분에 유럽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먹고사는 민간 경제 분야에서 배 만드는 기술이 꾸준히 계속해서 성큼성큼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유럽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배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다. 배를 철로 만드는 기술이나 증기기관을 이용해 바람이 없을 때에도 배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술 등등 여러 가지 과학 기술이 계속해서 개발되어 군함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민간 산업 기술과 국방과 군사력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조선 초기에는 겨루어 볼 만했던 군함의 수준이 조선 말기에 이르면 터무니없는 격차로 벌어지게 된다. 조선의 군함은 조선 말기에도 여전히 배수량 200톤이 좀 넘는 정도의 배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에 비해 유럽에서는 1만 톤이 넘는 거대한 군함이 등장했다. 조선 고종 43년인 1906년에 개발된 유명한 영국 전함 드레드노트 함은 물건을 다 실었을 때의 배수량인 만재 배수량 기준으로 거의 2만 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였다. 거북선의 크기가 200톤이라고 치면 그 백배에 해당하는 까마득한 규모다. 사람이 권투나 레슬링으로 싸운다고 할 때에도, 덩치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날 때 정신력으로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싸우러 나갔는데 상대방이 나보다 덩치가 백 배 큰 거인이라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세계 강대국들은 바로 이런 기술력의 엄청난 격차를 이용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다. 조선 역시 그런 역사의 불행한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세기에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적극적으로 과학 기술과 산업을 받아들여 새롭게 발전해 보려고 애쓴 것이 한국의 현대사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군함은 어떻게 되었을까?

급하게 군대를 꾸려야 했던 대한민국 초기 상황에서 한국 해군의 주력 군함이 되었던 것은 미군에서 사용하다가 중고로 넘겨주었던 배들이었다. 중고로 넘기는 배다 보니 오래되고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당시로서는 그런 배를 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군대에서는 유령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니기 마련인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군에 도는 이야기 중에 그때 타던 배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사한 미군 유령이 가끔 밤에 나타났고 미군 유령이라서 그런지 햄버거를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니까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정말 햄버거를 좋아한 미군 유령이 배에 붙어 있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장병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유령이라도 나올 정도로 낡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세계 최강의 구축함이라는 ‘이지스함’이라는 배도 척척 만들어서 배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사진은 국내 첫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지금 한국은 세계 최강의 구축함이라는 ‘이지스함’이라는 배도 척척 만들어서 배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사진은 국내 첫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그리고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1980년, 한국 기술로 설계해서 한국에서 만든 주력 군함이 ‘울산함’이라는 배다. 울산함은 호위함으로 분류되는 배인데, 호위함이란 세계 각국이 현대 해전에서 주력으로 쓰는 배인 구축함보다는 조금 더 작은 급의 배를 말한다. 처음 만드는 배다 보니 너무 큰 배를 만들기보다는 실용적인 배를 만들자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평상시에도 재빨리 움직이며 스파이들이 타고 다니는 배를 잡아야 하는 한반도의 환경을 고려할 때 호위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울산함의 만재 배수량은 2,000톤이 넘어가니까 작은 구축함과 맞먹는 규모이며, 조선 시대 거북선보다는 열 배쯤 크다.

거대한 철판을 정확한 각도로 구부리고 매끈하게 용접해서 붙여야 현대의 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나란히 화물을 차곡차곡 싣는 화물선과 달리 군함은 대포, 미사일, 포탄 등등의 장비를 이곳저곳에 싣기 마련이므로 배 곳곳의 무게와 모양이 이리저리 달라진다.

지금이야 가정용 컴퓨터에서도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로도 이런 다양한 장비의 무게와 모양의 영향을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작업하던 한국 기술인들이 처음 이런 계산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땅 위에서 돌아다니는 기차나 트럭은 땅 위에 올려놓으면 어찌 되었든 만든 모양대로 서 있기는 하지만, 물 위에 떠 있어야 하는 배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얼마만큼, 어떤 모양이 물속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배가 받는 부력이 부분부분 달라진다. 배의 모양을 조금 잘못 만들면 어떤 부분은 너무 물 위로 많이 뜰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물 아래로 너무 많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울산함을 처음 만들어 바다에 띄웠을 때 배가 똑바로 뜨지 못하고 배 앞쪽이 살짝 삐딱하게 위로 들리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국내의 한 일간지 보도를 보면, 하는 수 없이 배 앞쪽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무게를 좀 더 주는 방법으로 겨우 균형을 맞춰서 배를 정상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은 울산함은 한국 해군에 제대로 자리 잡았고 지난 몇십 년간 훌륭히 제역할을 해냈다. 이후 울산함과 같은 형태를 가진 배를 여러 척 만들어서 해군에서 사용했는데, 이런 배들을 통틀어서 ‘울산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울함공원
서울함공원

울산급 군함 중에 시멘트로 균형을 맞춰야 했던 등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울산함에 이어 두 번째로 제대로 만든 배가 바로 ‘서울함’이라는 배다. 서울함이 탄생한지도 지금은 40년이 지났기에 이제 이 배는 일선에서 물러나 서울의 망원한강공원에 ‘서울함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함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자리인데, 이 배는 지금 시민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거북선, 판옥선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들이 직접 개발해서 배치한 주력 군함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 보고, 그 배를 탔던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지, 나들이 삼아 나왔다가 감흥에 빠져 보기에도 좋다.

21세기인 지금은 한국 조선 산업이 크게 발전했기에 배를 만드는 양을 보면 항상 중국과 세계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 되었다. 길이 기준으로 세계에서 만들어진 배들 중에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배라고 하는 길이 488미터 짜리, ‘프렐류드 FLNG’라는 배 역시 다름 아닌 한국 회사에서 만들어 판매한 배다. 그렇게 산업과 경제를 떠받치는 기술이 발달한 만큼, 지금 한국은 세계 최강의 구축함이라고 하는 ‘이지스함’이라는 배도 척척 만들어서 배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사연들을 돌아보면, 나라를 지키는 일이, 민간의 산업과 과학에 어떻게 연결되며 커 나갔는지, 그 좋은 예를 지금은 평화롭게 떠 있는 서울함이 말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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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길까? 이순신의 거북선 VS. 콜럼버스의 함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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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곽재식 교수 생산일 2024-06-12
관리번호 D0000050979876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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