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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서울 '이 산'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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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5) 인터넷의 성지, 관악산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우리 삶에 중요한 인터넷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리 삶에 중요한 인터넷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요즘 우리가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통신 수단은 인터넷이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친구끼리 대화를 할 때는 전화를 사용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볼 때는 TV 방송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글자를 보내는 메신저 앱을 사용하고, 영상 역시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 보다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관공서에서 업무를 볼 때,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할 때, 하다못해 물건을 살 때나 음식을 배달시킬 때에도 우리는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인터넷은 우리 삶에 중요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요즘 세상 사람들의 모든 활동에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도대체 뭘까?

가장 쉬운 설명은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기 좋게 통신 방식을 정해 놓은 것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풀이하는 것이다. 다른 예와 비교해 보자. 라디오는 멀리서 전파를 이용해 보내 주는 소리를 듣는 장치다. 그리고 휴대전화도 전파로 보내는 소리를 듣는 장치다. 그렇지만 보통 휴대전화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는 없고, 반대로 라디오로 휴대전화의 통화를 듣기도 어렵다. 두 가지 기기가 공통으로 통신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TV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TV로 지상파 방송을 보려고 하면 나라마다 방송 방식이 달라서 문제가 될 때가 많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TV를 그대로 다른 나라에 들고 간다고 해도 전파를 받아서 볼 수 없을 때가 많다는 뜻이다.

인터넷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 웹페이지는 어느 회사 컴퓨터로, 어느 나라에서 보든 다 잘 보인다. 심지어 컴퓨터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웹페이지를 보든, 아니면 태블릿PC로 웹페이지를 보든 다들 쉽게 접속해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 페이지가 똑바로 잘 나오지 않는 기계가 있으면, “인터넷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며 불평을 할 정도다.

어떻게 인터넷은 이렇게 전 세계 공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바로 전부 한 가지 표준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바로 인터넷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TCP/IP라는 표준 공통 방식을 기본으로 사용하는 통신 방식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겠다. TCP는 Transmission Control Protocol, 그러니까 전송 제어 규약이라는 말의 약자이고, IP는 Internet Protocol, 바로 인터넷 규약의 약자다.

지금 TCP/IP라고 부르는 방식의 직계 조상이 탄생한 곳은 미국이었다. 1970년대 미국 과학자들은 컴퓨터끼리 자동으로 연결해 두는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로는 냉전 시기의 핵전쟁 공포도 중요한 이유였다.

만약 적이 핵 미사일로 갑자기 아군을 공격해서 우리 수도가 단숨에 전부 파괴되었다고 해 보자. 그래서 대통령과 높은 장군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치자. 그러면 반격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어진다. 그러면 전쟁에 패배할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안 된다. “강력한 핵 무기로 선제 공격을 잘 해서 초반에 적의 수도를 마비시키기만 하면 전쟁에서 별 피해도 없이 쉽게 이길 수 있겠구나”라고 적이 생각하기라도 하면 정말로 공격을 걸어 올 지도 모른다.

적이 그런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하려면, 설령 선제 공격 핵 미사일이 성공해서 우리 편 높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기계 장치가 자동으로 움직여서 적에게 보복 핵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해 두어야 한다. 이런 자동 공격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핵 미사일은 전국 각지의 비밀 기지에 꽁꽁 숨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핵 미사일을 자동 발사시키는 전국의 컴퓨터들은 서로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결은 좀 손상되어도 버틸 수 있는 믿음직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해 두면, 아무리 적이 선제 공격을 잘 한다고 해도 연결된 컴퓨터들이 자동으로 반격을 할 것이기 때문에 적도 결국 굉장한 피해를 입게 된다. 적은 그런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애초에 선제 공격을 한다는 계획을 단념할 것이다.

정말로 인터넷 기술이 실제로 핵무기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부터 개발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컴퓨터 간의 연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랬기에 미국에서는 여러 컴퓨터들이 다른 회사 제품이고 작동 방식이 좀 다르더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했다. 그것이 TCP/IP 였고, 이 방식으로 컴퓨터끼리 이메일도 보내고 자료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이 1970년대에는 어느 정도 현실화 된 상황이었다.
어떻게 인터넷은 이렇게 전 세계 공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바로 전부 한 가지 표준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바로 인터넷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연결은 어디까지나 미국 컴퓨터들만의 연결이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온 세계가 전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통신 연결을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사람조차도 별로 없었다.

그때의 인터넷이란 미국 우주선을 개발하기 위해 어느 미국 대학 교수가 수행했던 복잡한 연구 결과 같은 것을 멀리 떨어진 미국 연구소에 재빨리 전송해 주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한 기술 같은 것이었다. 정말로 세계 곳곳에 TCP/IP 방식의 통신 방식이 널리 퍼져서 다들 인터넷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등의 사소한 통신까지 할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바깥, 처음으로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통신을 했던 곳은 어디일까? 요즘 널리 알려진 답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서울이다. 1982년 5월 서울 관악구에 있던 서울대학교에서 당시 이름으로 전자계산기공학과와 경상북도 구미에 있던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 두 대를 연결해서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사용한 나라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냥 컴퓨터로 글자 몇 개를 주고받은 것뿐이라서 정작 그때는 그 작업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날은 상당히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날의 연결은 인터넷이 앞으로 컴퓨터끼리 통신을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니 그날은 인터넷이 그냥 미국 연구 기관들끼리 사용하던 도구가 아니라 정말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는 공통의 통신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그래서 인터넷이 지금 우리가 아는 인터넷이 될 수 있었던 중대한 기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이 연결 계획을 처음 추진했던 전길남 박사는 현재 한국 인터넷의 대부로 존경받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명망이 있어서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라는 말도 별로 쓰이지 않았기에 이 한국에서는 이 통신망을 그저 시스템 개발 통신망, 영문 약자로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만약 한국 인터넷 기술이 훨씬 빠르게 성장해서 세계를 주도했다면 지금 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것을 SDN이라고 부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82년 5월 서울 관악구에 있던 서울대학교에서
당시 이름으로 전자계산기공학과와
경상북도 구미에 있던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 두 대를 연결해서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사용한 나라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일이 그렇게까지 잘 풀리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에서는 인터넷 연결 연구 사업을 무의미한 연구로 보고 실패한 것으로 간주해 연구비를 끊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창기에는 인터넷을 연결했던 장본인들조차, 막상 어디에 인터넷을 쓰면 좋을지 몰라서 서울과 구미 사이에서 가끔 인사말을 건네보는 정도로밖에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공식 개발비가 끊기면서 한국의 인터넷은 목적이나 돈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유롭게 사용하는 통신망으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그 덕에 더 개성 있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KAIST가 SDN에 연결되고 인터넷의 관리소 역할을 하면서 다른 많은 연구소, 학교들을 연결에 끌어들였다. 그렇게 해서 많은 한국 학생과 연구원들이 인터넷과 컴퓨터 간의 연결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1980년대에 21세기의 인터넷 세상이 어떤 곳일지 일찌감치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덕택에 1990년대 이후 ‘인터넷 보급이 미래에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과학 인력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자라난 인력들 중 상당수가 한국 최초의 인터넷 벤처 기업을 일군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IT 산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한국 인터넷의 시작에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는지, 또 어떤 일은 잘 풀려나갔는지를 지금 살펴보고 기억하는 것은 앞으로 첨단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데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악산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터넷을 사용했던 서울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관악산 정상(기상청레이더).
관악산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터넷을 사용했던 서울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관악산 정상(기상청레이더).

그때 처음 인터넷이 연결된 위치는 정확히 어디였을까? 전길남 박사는 당시 서울대에서 PDP-11이라는 컴퓨터를 이용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PDP-11은 1970년대에 기업용, 연구용으로 널리 쓰이던 컴퓨터로 그때 기준으로는 그나마 값이 싼 제품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우아한 기계였다.

안타깝게도 한국 최초로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언제 쓰레기장에 버려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서울대학교의 전자계산기공학과 역시 이름이 바뀌고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에 인터넷의 탄생 장소가 어느 건물, 몇 층, 어느 곳이었는지는 지금 와서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때 서울대의 통신 회선은 봉천전화국을 통해 구미로 연결되었다는데, 봉천전화국 역시 이름이 바뀌고 조직도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 그때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사실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어렴풋이 관악구 인근이 대략 인터넷이 세계로 뛰어오른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야기해 볼 만하다. 나는 관악구의 적당히 의미 있는 장소에 이런 인터넷 시대의 시작을 기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설치해 놓는다거나, 하다못해 인터넷 동영상 중계를 잘 할 수 있는 스튜디오 같은 곳을 만들어 놓아도 의미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옛사람들은 한라산이나 백두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했다고도 하고, 높은 산에는 산신령이 산다고 믿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서울의 관악산이야말로 인터넷의 신령이 머물기에 딱 어울리는 산이라고 본다.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아 답답할 때, 혹은 IT 일을 하며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잠깐 관악산 쪽을 바라보면서 행운을 빌어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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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서울 '이 산'에서 시작됐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곽재식 교수 생산일 2024-03-27
관리번호 D000005042317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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