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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햇살 같아" 따스하고 편안한 돌봄공간 '봄터'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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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기독교복지관 내에 필자가 설계한 돌봄지원센터 ‘봄터’를 찾은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린 스케치.
태화기독교복지관 내에 필자가 설계한 돌봄지원센터 ‘봄터’를 찾은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린 스케치.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23) 봄날 같은 공간을 만들다, ‘봄터’

서로 봅니다. 함께 봅니다.
같이 봅니다. 키워 봅니다.
놀며 봅니다. 도우며 봅니다.
성장하며 봅니다.
우리는 서로 돌봅니다.
돌봄은 서로의 곁에 같이 존재하는 것, 신경 쓰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기르고 가르치는 양육이나 키움보다는 느슨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려면서도 마음의 부담을 가지는 것. 누군가는 스토리가 있는 노동이라고도 표현했다.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돌봄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필자는 건축가로서, 돌봄이 집단적인 훈련처럼 그 대상을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봄은 꼭 아이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봄터’의 공간 구성.
‘봄터’의 공간 구성.
 ‘봄터’의 입구와 환대하는 분위기의 내부의 작은 창.
‘봄터’의 입구와 환대하는 분위기의 내부의 작은 창.

돌봄을 지원하는 공간

종로에서 1921년 개관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1995년 부터는 강남구 수서에 건축가 정시춘이 설계한 현재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태화복지재단은 6층까지 뚫린 아트리움과 입체적인 평면을 갖고 있는 이 복지관 건물에서 다양한 계층의 지역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 재단은 질병, 사고, 노령 등으로 인해 몸이 불편한 가족 구성원을 돌보느라 지친 가족들을 지원하는 공간을 복지관 1층에 새로 조성하기로 하고, 필자의 EUS+건축에 연락해왔다.
봄터 내부에 들어서면 보이는 전경.
봄터 내부에 들어서면 보이는 전경.

이곳을 설계에 들어가며, ‘같이 걱정’하고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능하려면 지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족 내 돌봄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편안한 또 다른 ‘집’이 필요할지 모른다고도 느꼈다. 매일 같은 일상의 돌봄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그 마음을 나누고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정감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두 가지 다른 톤의 타일은 안정감 있는 영역의 구별을 전해주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을 느끼게 해준다.
두 가지 다른 톤의 타일은 안정감 있는 영역의 구별을 전해주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을 느끼게 해준다.

돌봄의 축

EUS+건축은 이 공간의 개념을 '돌봄의 축'으로 세웠다. 기존 복지관 건축이 갖고 있는 삼각형 정체성을 두 개의 축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 상담공간(들어봄)과 집단 프로그램실(바라봄), 놀이공간, 미니카페와 라운지(서로봄)를 담아 명확한 공간적 질서를 갖도록 했다. 그 두 개의 축은 지칠 수 있는 상황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의미로 두 가지 컬러의 단단한 타일로 마감한 두툼한 벽이 되었다. 그 벽은 상담과 모임을 나누기도 하고 걸터앉거나 테이블이 되기도 하며 식재를 포함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자 했다.
원래 건축이 갖고 있는 각도가 그대로 공간의 세밀한 부분까지 반영되어 외부와 내부가 이어지는 느낌으로 조성했다.
원래 건축이 갖고 있는 각도가 그대로 공간의 세밀한 부분까지 반영되어 외부와 내부가 이어지는 느낌으로 조성했다.

‘봄터’가 어떨까요?

이 공간이 설계되고 시공되어가는 중에 이곳의 명칭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복지관 내부에서 한창 고민 중이실 때 설계자로서 필자는 문득 이 장소가 ‘봄’ 같은 기운을 가져오지 않을까 했다. 돌봄에도 봄이 들어가고 마침 혹독하게 추운 계절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때이기도 했다.

‘돌봄지원센터’라는 초기 기능적 명칭에서 줄이다보니 ‘봄터’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내부 논의에서 정하시겠지만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시설적인 명칭보다 좀 따뜻한 이름이면 좋겠네요. ‘봄터’는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드렸다. 바로 온 답신에서 너무 직관적이지 않고 각 영역의 명칭을 들어봄, 바라봄, 서로봄 같이 응용해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반기셨다.

이러한 따뜻한 느낌의 ‘봄터’에는 식재가 필요했다. 타일로 마감한 ‘단단한’ 느낌과 대조적으로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식재가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공간을 파서 식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벤치나 파티션의 역할을 겸하게 하여 단지 바라만 보는 관상용이 아닌 공간의 일부가 되도록 했다.
입구 부분에 벤치 겸 식재 공간이 통합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입구 부분에 벤치 겸 식재 공간이 통합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안쪽에는 미니카페와 라운지 (서로봄)의 공간이 조성되어 서로 교류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안쪽에는 미니카페와 라운지 (서로봄)의 공간이 조성되어 서로 교류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돌봄의 공간학

‘서로’, ‘함께’의 가치를 공간에 담으려면 일방적인 공간을 제시하기 보다 ‘주도적 활동’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벽과 벽으로 막아서 폐쇄적으로 나누기보다 영역적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두툼한 벽이면서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가 되고, 식재 공간이면서 벤치 그리고 안내판이 이어지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쓸 수 있게 폴딩도어로 설치하여 넓은 행사와 소규모 활동에 모두 대처할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구분되어야 하는 곳도 높은 창으로 빛이 이어지게 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아이와 같이 온 이용자를 위한 어린이 놀이공간도 안내데스크와 가장 가까이 배치하여 안심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창가 공간에는 캐주얼 함을 반영한 미니카페를 배치했다.
설계 단계에서의 다양한 공간영역 뷰.
설계 단계에서의 다양한 공간영역 뷰.
봄터 공간을 이용해 지역돌봄을 위한 오픈클래스 등의 활동 모습.
봄터 공간을 이용해 지역돌봄을 위한 오픈클래스 등의 활동 모습.

이 공간이 조성되고 다양한 ‘봄날’ 같은 돌봄 지원 활동들이 시작되었다. 지원자를 모집하고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포스터가 붙었다. ‘봄날 새순 같은 공간, 봄터. 어서오세요’
봄터 공간을 이용해 지역돌봄을 위한 오픈클래스 등의 활동 모습.
봄터 공간을 이용해 지역돌봄을 위한 오픈클래스 등의 활동 모습.

돌봄으로 마을이 만들어진다면

이런 돌봄의 공간들은 다양한 상황, 다양한 가족만큼이나 다양한 기관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런 공간들이 도시 내에 흩어져 있을 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이에 여러 돌봄 공간, 돌봄 지원 공간들이 서로 군집을 이루어 마을과 같이 구성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방과 후 활동 공간, 어린이집, 도서관, 교육공간, 실내놀이터, 공유 식당 같은 공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설계된다면 단순히 기관에 맡기고 볼일을 보러 가는 개념이 아니라 마을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돌보고 서로 성장을 이루는 장소가 될 수 있겠다. 필자는 이런 개념을 담아 ‘봄마을’을 구상해보고 있다.
돌봄 마을을 구성한 계획안 스케치.
돌봄 마을을 구성한 계획안 스케치.

학교에서의 일반 교실과 돌봄 교실이 만날 때

학교에서 특히 돌봄 교실의 수요가 많다. 별도의 돌봄 교실로 설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의 교실과 결합하여 다른 시간대에 사용되는 특성을 반영, 공간의 활용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겠다. 돌봄 시의 다양한 주체적 활동을 위한 공간들이 일반 교실에도 적용되어 일반 수업시간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설계한 사례다.
한 초등학교의 일반 교실과 돌봄교실의 결합형 모형.
한 초등학교의 일반 교실과 돌봄교실의 결합형 모형.
두 일반 교실 사이의 가변 벽을 설치하여 방과 후 통합된 돌봄교실로 사용하기 위한 설계.
두 일반 교실 사이의 가변 벽을 설치하여 방과 후 통합된 돌봄교실로 사용하기 위한 설계.

교실 사이의 벽은 구조체가 아니기에 변형이 가능하다. 기존에 일률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교실들을 두개씩 합치고 그 가운데 구분 벽을 회전식 가변벽으로 구성한다면, 일반 교실 활용시에는 구분하여 쓰고, 돌봄 교실로 활용할 시간대에는 90도 회전시켜 두개의 교실을 다양한 돌봄 활동의 장소로 쓰게 하는 안을 필자의 EUS+건축은 제안하기도 했다.

돌봄 공간의 효시

이러한 돌봄 공간의 발전은 최근 들어 사회의 인식 변화와 함께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 움직임에 영감을 줄만한 사례는 이미 1998년 인천 만석동에 세워진 한 건축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건축의 사회적 참여와 공동체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그를 위한 건축으로 풀어내려 애쓰셨던 건축가 고 이일훈은 방치된 동네의 아이들 누구나 들어와서 공부하고 휴식하고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오밀조밀하게 다양한 공간을 구성하고 전망을 위한 옥상 마당까지 설계하여 동네를 조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듯한 공간을 만들었다. 수동적인 돌봄을 넘어, 서로 돌보고 서로 보고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 문화의 회복에 기여했기에 아직도 남아서 활용이 되고 있다.

2024년 봄날, 돌봄이 봄날 같은 공간으로 확산되어 21세기의 주도적인 공동체의 마을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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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햇살 같아" 따스하고 편안한 돌봄공간 '봄터'를 만들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지정우 건축가 생산일 2024-03-22
관리번호 D0000050389786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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