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회색빛 콘크리트, 알고보니 고향은 따뜻한 열대 바다!

문서 본문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2) 서울숲에서 꿈꾸는 산호초 해변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하늘에서 본 영동대교 남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하늘에서 본 영동대교 남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혹시 지금 실내에 있다면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아마도 콘크리트로 만든 벽이 보일 것이다. 서울은 물론 한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 대단히 많다. 그러니 마침 지금 한옥에 머물고 있다는 등의 예외가 아니라면, 집이든 사무실이든 학교든 무슨 가게 건물이든 콘크리트 건물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한다.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의 2020년 자료를 보면 서울 사람들의 59%가 콘크리트로 만들기 마련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에서 아파트로 분류되지 않는 다른 방식의 공동 주택이나 심지어 단독 주택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건물이라면 콘크리트 건물의 비율은 굉장히 높다. 그러므로 21세기 현대 서울 시민이라면 대다수가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에서 산다고 보아야 한다.

도대체 서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콘크리트를 좋아하는 것일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나라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목조 주택이 집의 기본 취급을 받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대형 콘크리트 아파트를 이렇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콘크리트가 간장, 된장이나 쌀밥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내려오던 물건은 아닐 텐데. 한국인은 왜 이런 것일까? 이런 콘크리트 건물은 누가 언제부터 짓기 시작한 것일까?

‘콘크리트 건물의 원조’라고 할 만한 유럽에서도 사실 현대 콘크리트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따져 보자면 건축 기술이 발달한 로마 제국에서 지금의 콘크리트와 꽤 닮은 재료를 고대의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서 사용했다고는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로마의 콘크리트 기술은 잊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중세시대 이후에 탄생한 유럽의 고색창연한 석조 건물과 옛 성벽, 높다란 대성당 등은 돌을 재료로 만들었지만 콘크리트로 지은 것은 아니다.

콘크리트는 19세기 영국에서 ‘포틀랜드 시멘트’라는 현대 시멘트의 주류 제품이 개발되면서 탄생했다. 그렇다고 해서 포틀랜드라는 지역에서 개발된 시멘트 혹은 포틀랜드 선생이 개발한 시멘트로부터 콘크리트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저 포틀랜드 지역에서 발견되는 다른 재료와 재질이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일 뿐이다. 포틀랜드 시멘트에 소위 골재라고 하는 모래, 자갈 등을 넣고 적절히 반죽해서 섞은 재료가 바로 현대의 콘크리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과 우리가 일하고 공부하고 노는 공간을 가득 채운 많은 콘크리트는 영국인의 발명품이 멀리 서울까지 건너와서 이렇게나 많이 쌓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콘크리트는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했다.
영국인의 발명품이 멀리 서울까지 건너와서
이렇게나 많이 쌓인 것이다.

서울에서 콘크리트, 토목, 건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좋은 곳을 꼽으라면 나는 성동구의 ‘서울숲’, 그것도 그 서남쪽 끄트머리 부분이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넓게 펼쳐진 싱그러운 숲이면서도 주변의 높은 콘크리트 빌딩과 콘크리트 아파트들을 보기에도 좋은 장소다.

원래 서울숲은 뚝섬의 일부로 간주 되던 ‘뚝섬 경마장’이 있던 곳이었는데, 뚝섬 경마장을 비롯해 근처의 뚝섬 놀이 공원 시설과 어린이 대공원의 동물원이 모두 과천의 경마장과 서울 대공원과 인근으로 이사 가면서 빈 땅이 된 장소다. 그 빈 땅을 다른 용도로 개발하지 않고 자연을 되살려 숲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서울숲에는 과거의 경마장 시절을 상징하는 말과 관련된 조형물들이 지금도 눈에 뜨인다. 그런 만큼 서울숲은 개발이 무엇인지, 건물이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 보는 산책로로도 어울리는 곳이다.
과거 ‘뚝섬 경마장’ 자리에 조성된 ‘서울숲’은 콘크리트, 토목, 건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좋은 곳이다.
과거 ‘뚝섬 경마장’ 자리에 조성된 ‘서울숲’은 콘크리트, 토목, 건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좋은 곳이다.

게다가 지금 서울숲에서 볼 수 없는 공간에는 그보다 더 재미난 이야깃거리도 있다. 원래 지금의 서울숲 인근은 이렇게나 넓고 탄탄한 땅이 아니었다. 서울숲 인근의 한강에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저자도’라고 하는 꽤 큰 섬이 있었다. 지금 이 지역은 강북 지역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저자도는 한강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저자도의 남쪽이 지금의 강남과 가깝다고 느끼기도 했다. 조선시대 글을 보면, 저자도 근처 멀지 않은 곳에 압구정이나 봉은사가 있다고 설명하는 내용도 보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은 1970년대 초 한강 일대에 대한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이 이루어진 때부터다. 건설 사업을 위해 서울시 당국은 저자도라는 섬을 완전히 없앴다. 그러면서 캐낸 막대한 흙, 모래, 자갈로 한강가 남쪽과 북쪽을 다져서 메우도록 허가했다. 그렇게 해서 한강 북쪽에는 지금의 서울숲 근방의 평평하고 넓은 땅이 생겼고, 한강 남쪽을 메운 땅 위에는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지금의 압구정동 지역 중 상당 부분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땅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한강물이 흘러 다니던 곳이다.

그리고 한강 북쪽에 새로 생긴 넓은 땅 중 일부에는 레미콘 공장이 들어섰다. 지금은 야외 공연장처럼 쓰이기도 하는 지역으로 서울숲 서쪽 도로 사이의 널따란 터로 남아 있는 곳이다. 레미콘이란 ‘레디-믹스드 콘크리트’의 줄임말로 ‘준비 완료된 콘크리트’, 즉, 재료를 잘 반죽해서 당장 붓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만든 콘크리트란 뜻이다. 서울숲 옆의 레미콘 공장은 공터로 변해 사라지기 전까지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커다란 시설이었다.

이 공장은 197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간 쉴새 없이 가동되며 서울의 수많은 건물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를 만들어 냈다. 최대로 생산을 하면 단 하루 만에 소형 아파트 7천 채를 지을 어마어마한 양의 콘크리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하니, 서울 시내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들의 고향이 바로 이 서울숲 옆 레미콘 공장 터였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어지간한 장식품이나 사진 찍는 공간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좀 더 이런 사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숲 공원 옆으로 지금은 사라진 ‘삼표 레미콘’ 공장이 보인다.
서울숲 공원 옆으로 지금은 사라진 ‘삼표 레미콘’ 공장이 보인다.
서울 시내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들의 고향이 바로
이 서울숲 옆 레미콘 공장 터였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기왕에 이런저런 상상을 시작해 본 김에 아주 먼 과거로도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국은 지하자원이 별로 많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그나마 한국에서 풍부하게 나는 지하자원을 찾자면 ‘석회석’이 있다. 석회석은 한국의 산에 꽤 많이 묻혀 있는 돌이어서 오래전부터 꾸준히 생산이 이루어졌고, 많은 광산이 문을 닫은 21세기에도 석회석 캐는 곳은 여전히 운영될 정도로 흔한 물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석회석이 포틀랜드 시멘트를 만드는 주재료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울에 이렇게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이유가 ‘한국에는 석회석이 많기 때문에 시멘트를 만들어 쓰기에 부담이 없어서’라고 말해 볼 수도 있다. 북극에 사는 사람들은 북극에서 찾기 쉬운 얼음으로 ‘이글루’를, 대나무가 많은 중국 남부에서는 예로부터 ‘대나무집’을 만들었다는 식의 풍습과 석회석이 풍부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콘크리트 집에서 사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큰 차이는 없는 문화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 석회석이 많은 것일까? 석회석의 주성분은 탄산칼슘이다. 도대체 왜 산속의 어느 지역에는 탄산칼슘이 모여서 거대한 바위가 되어 있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일까? 땅속에서 사는 어떤 신령이 탄산칼슘 성분들을 향해 이쯤에 모이라고 주문이라도 걸어 둔 것일까?

혹시 조개껍질이 탄산칼슘 성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지금 발견되는 석회석이 먼 옛날 조개나, 조개 껍질과 비슷한 성분의 단단한 성분을 가진 작은 동물들의 껍질이 오랜 시간 쌓이고 변해서 생겨났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말은 한국의 석회석 나오는 산이 아주 먼 옛날에는 바닷속이었는데, 그 바다에 살던 조개 비슷한 생물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엄청난 양으로 쌓이고 또 쌓여서 석회석 더미가 되었고, 더 세월이 흐르면서 그 바닷물이 빠지고 땅이 산처럼 솟아오르면서 생겨났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같은 자료를 보면, 3~4억년 전에는 한반도가 적도 근처의 열대 지방의 바닷물 속에 있었고 그곳에 산호를 비롯한 태고의 생물이 가득했는데, 그것이 석회석으로 변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시내에 가득한 콘크리트 건물을 볼 때마다, 한때는 그 건물이 열대의 따뜻한 바닷속 산호초였다는 상상을 해 봐도 좋을 것이다. 도시 거리의 삭막함에 지칠 때 잠깐 여유를 즐겨 보기에 좋은 공상의 재료라고 생각한다.

문서 정보

회색빛 콘크리트, 알고보니 고향은 따뜻한 열대 바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곽재식 교수 생산일 2024-02-15
관리번호 D0000050128264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