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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 그 이상! 도시 공간에 새로운 페이지가 될 '페이지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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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리 도시건축가
‘페이지 명동’ 3층, 근현대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와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공 테라스
‘페이지 명동’ 3층, 근현대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와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공 테라스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 (3)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페이지(PAGE) 명동’

연말이다. 딸랑딸랑 구세군 종소리가 들리는 거리에 사람이 가득 북적이는 식상한 명동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보기 힘든 귀한 풍경이 되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명동은 급격하게 생기를 잃었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극적인 대비는 소상공인들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더욱 아프다. 한 상점에서는 원래 팔던 품목이 아닌 마스크를 대량으로 들여놓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명동의 중심인 명동8길 주위의 ‘명동거리’의 1층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고 ‘임대’라는 안내만 퀭하게 붙여져 있다.
현재 명동거리의 1층 모습
현재 명동거리의 1층 모습

사실 명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이자 ‘걷고 싶은 거리’의 대명사다. 상업지역이라면 대규모 실내공간부터 만들고 보는 우리나라에서, 명동은 보기 드믄 세장형 소규모 집합 상업가로지역이다. 자본 위주의 도시공간으로 치우치다 보면 이윤극대화에 따라 합필로 대규모 덩어리 건축으로 치환되기 마련인데, 명동은 지나친 지가 때문인지 역설적이게도 소규모필지로 분화, 유지되었다. 이와 더불어 서울의 중심지로서 도시 근현대의 역사적 흔적도 풍부하여 도시공간의 서사 또한 이 지역의 가치를 높여왔다. 일부 차 없는 거리, 보행자전용도로로 구성하면서 보행의 극대화를 누려왔다.

이러한 명동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 집중된 지나친 외국인관광객 중심으로 변화되던 시점부터 아니었을까. 품목 또한 창의적인 소매업에서 대부분 화장품 및 대기업 브랜드 등으로 획일화되면서 가로의 조밀한 물리적 구성이 무색하게 천편일륜적인 가로 입면으로 변해 버렸다. 내국인들은 잘 찾지 않고 주로 외국인들만 북적이는, 사실상 선택적 분리(segregation) 도시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프로그램적 단순화는 코로나19를 맞으며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외국인이 없으니 당연히 찾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적어졌다. 지나친 단편적 소비층으로의 의존이 명동을 명동 같지 않게 변화시켰고, 코로나 이후에는 큰 위기로 찾아왔다. 약 2년간 명동은 비어져갔다. 이제는 원인을 찾고 좀더 혼합의 도시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대비 해야하지 않을까?

최근 명동성당 앞 근대건축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한국YWCA 건물이 리모델링을 거쳐 ‘페이지 명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전에 대부분 근린상업시설로 채워져있던 건물이 본래의 순백색의 벽면을 드러내며 그야말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리모델링 전 YWCA모습(좌), 리모델링 후 ‘페이지 명동’(우)
리모델링 전 YWCA모습(좌), 리모델링 후 ‘페이지 명동’(우)

현재 YWCA를 리모델링해서 ‘페이지 명동’을 마스터리스로 건물을 운영하고 있는 (주)더함은 이름 그대로 ‘명동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길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던 토론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의 명동을 다시 회복하고 커뮤니티 프로젝트로서 페이지 명동을 운영하고 있다. 건물 내 수익형 상업시설 임대를 최소화하고 대부분 비영리, 또는 공공, 창업/사회혁신 기업을 운영주체로 기획하였다.

또한 도심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서울시민대학과 퇴근길 명동학교 등을 진행했고, 명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로컬잡지 ‘이면도로’를 무가지로 배포하고 있다. 관광객 위주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뻔한’ 도시에서 이벤트와 재미가 숨어있는 ‘로컬’로서의 명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소비를 촉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서울 원도심 명동에서 지역시민으로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여 결과적으로 명동지역에 새로운 임택트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숲과 같은 1층 로비(좌), 7층 옥상정원(우)
숲과 같은 1층 로비(좌), 7층 옥상정원(우)

프로젝트 ‘페이지 명동’은 초현실부동산과 사이트앤페이지가 기획에 참여하였고, 1960년대 차경순 건축가에 의해서 마지막 증축이 된 모더니즘 건축을 60여년이 지나 2020년 이진오 건축가의 리모델링에 의해 재탄생했다. 이진오 건축가는, 단아한 모더니즘적 외관을 지키며 그 프레임 내부에서 명동성당을 바라보는 매력을 느끼는, ‘안에서 바깥을 보는 건물을 만들자’라는 포인트를 지키며 설계를 진행했다고 한다.

특히 처절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던 초기 YWCA가 현재 민주화 이후에는 (건물의) 사회적인 존재 이유가 굉장히 모호해 지면서 상업적으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이 되다보니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사회적 요구를 도입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페이지 명동’이 탄생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초현실부동산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 및 연계된 컨텐츠를 ‘초현실 디렉토리’라는 책으로 엮어내어 건물과 YWCA의 역사, 미래를 담아냈다. YWCA는 명동 한복판에서 한국의 시민운동과 근현대 문화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이 리모델링을 계기로 건축물이 갖는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정치, 문화, 종교, 예술, 경제, 디자인, 출판,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면서 건물의 생애 이력을 추적하는 의미 있는 또 다른 성과물을 내놓았다.
왼쪽부터 서울YWCA 1층 SH청신호 홍보관, 커뮤니티 마실, 페이지 명동
왼쪽부터 서울YWCA 1층 SH청신호 홍보관, 커뮤니티 마실, 페이지 명동

페이지 명동과 나란히 서 있는 커뮤니티 마실, 서울YWCA도 이러한 흐름선 상에 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이시영 6형제 집터이기도 한 현 커뮤니티 마실은 가설건축물로 새로운 건축물로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터는 YWCA의 소유이기도 하니, 무색무취의 상업, 오피스 공간이 아닌 좀 더 발전된 버전의 또 다른 페이지의 명동으로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이러한 비영리 단체의 공공적 순환의 움직임이 단순 영리 상업시설에서도 서서히 꿈틀대고 있다. 체험형 매장인 나이키 바이유(Nike by you) 커스텀 서비스매장은 단순 판매시설을 뛰어넘는 실험을 하고 있고, 최근 물결치는 입면으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신한은행의 익스페이스는 협업하는 국내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및 해외진출을 지원하며 사회에 가치를 더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이키 바이 유 커스텀 서비스매장의 1층 로비(좌), 신한은행의 열린 R&D공간 Expace(우)
나이키 바이 유 커스텀 서비스매장의 1층 로비(좌), 신한은행의 열린 R&D공간 Expace(우)

페이지 명동에서 도드라진 장점은 다름 아닌 시민들에게 100% 열린 외부공간을 입체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1층은 물론이고, 명동성당을 가장 멋있게 조망할 수 있는 3층 데크는 카페소유가 아닌 시민개방공간이며 7층은 옥상정원을 준비 중에 있다.
타임워크 빌딩 내 공유정원, ‘녹녹’
타임워크 빌딩 내 공유정원, ‘녹녹’

이와 비슷하고도 다른 공간이 명동에 또 하나 자리 잡았다. 타임워크명동 빌딩(옛 SK명동빌딩) 7층에 위치한 약 1,000㎡면적 규모의 ‘녹녹 타임워크 명동’이다. ‘조경/정원 플랫폼 스타트업’이라는 생소한 비즈니스를 연 앤로지즈는 최근 도심 유휴공간에 정원을 조성한 후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유경제 사업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이곳은 요가수련장, 식물장터, 가드닝 클래스 실습장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하여 방치된 건물 옥상공간에 정원을 조성해 이용자에게는 정원과 관련된 경험을, 건물주에게는 버려진 공간에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명동은 아파 신음하고 있다. 명백히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 켠에서는 명동의 또 다른 페이지를 써내려가는 다양한 움직임들도 있다. 몇 년간 코로나로 방치되어 있는 1층 공간, 높은 임대료로 비어진 상가 및 오피스 공간, 그리고 숨겨지고 버려진 공간들을 재점검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소규모 창의 상업공간을 복돋아주고, 이미 자리하는 역사문화시설과 공공공간의 위상을 강화하고, 그리고 단일관광상업기능이 아닌 서울 원도심으로서의 활력을 되살리며, 더불어 이 기회에 문화, 주거, 숙박, 그리고 여러 종류의 도시지원시설의 균형을 맞춰 좀 더 복합화되고, 상업과 문화, 공공이 경계를 넘어 혼합할 수 있는 그 절묘한 기회의 시간. 페이지 명동에서 그 시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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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 그 이상! 도시 공간에 새로운 페이지가 될 '페이지 명동'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박혜리 도시건축가 생산일 2021-12-17
관리번호 D000004434768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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