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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 속 숨은 100년…위수감옥과 강기동 의병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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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라고 하면 대부분 외세와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점철된 공간으로만 알고 계시는데요. 광복절을 맞이해서 용산기지 내에 있던 ‘용산 위수감옥’과 강기동 의병장 같은 인물을 조명해 보는 것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구 미군장교숙소)에서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을 만났다. 양손 가득 역사 관련 자료를 들고 온 그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바로 용산기지의 역사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 용산미군기지 내 용산 위수감옥 전경
현 용산미군기지 내 용산 위수감옥 전경 ⓒ김천수

“강기동 의병장은 우리에겐 의병이죠. 그러나 일본 입장에선 헌병보조원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당시, 민간인 수감지인 서대문 형무소가 아닌 일본군 군사 감옥인 ‘용산 위수감옥’에 수감 시킨 겁니다. 그분이 헌병대에서 근무를 하다가 거기에 수감된 의병들을 탈출시키고 나중엔 의병에 투신을 해서 큰 활약을 했어요. 그에 대한 논문과 글이 나와 있긴 한데, 사료가 많지 않아서 우리가 궁금한 점을 세부적으로 다 알 순 없어요. 용산기지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 수는 있지만, 이곳이 우리의 아픈 수난의 땅인 것은 분명하거든요.” 몇 년 전 용산구청에서 들은 그의 역사 강의 때와 다름없이 용산 지역사 연구가 김천수 연구실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용산기지의 역사를 현장에서 알려왔다. "버스투어를 하면서 직접 역사적 얘기를 해드리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거든요. 위수감옥 담벼락을 보면서 강기동 의병장에 대해 말씀드리면, 보통 여기 용산기지 안에 군사감옥이 있다는 건 많이들 모르시죠. 왜냐하면 가보질 못했으니까 당연해요." 지금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용산기지 버스투어는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김천수 연구실장은 챙겨온 탐방자료를 펼쳐 보이며 설명을 이어간다.
용산기지 버스투어 코스
용산기지 버스투어 코스 ⓒ이정민

“제가 용산지역 사회를 연구하면서 느낀 점은 참 복잡한 땅이라는 겁니다. 일제강점기 때 건물도 백 수십 동이고, 해방 이후에 미군과 우리 군도 주둔을 했었거든요. 한미연합 건물도 있고 관련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도 많습니다. 이런 공간에 녹아있는 역사성과 장소성은 나중에 공원이 되더라도 미래 세대들도 잘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된다고 보는 거죠.”

김천수 연구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착한 곳은 짙은 초록의 잔디와 장교 숙소의 벽돌 색감이 인상적인 잔디마당이었다. 야외갤러리에 전시 중인 흑백의 사진들에 용산의 지난 흔적이 가득 담겨 있다.
야외갤러리에 전시 중인 용산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
야외갤러리에 전시 중인 용산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 ⓒ이정민

발걸음을 옮겨 용산기지의 역사를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용산공원 전시공간으로 들어갔다. “조선 후기에 둔지미 마을부터 시작해서, 러일전쟁이라는 동아시아의 큰 사건과 격변기를 거쳐 1906년부터 본격적인 군사기지가 된 겁니다. 일본군 사령부가 일제강점기 내내 있었고 해방 전까지 여기는 성역이었던 거죠. 예전엔 교과서에서 조선총독부만 배웠고 이 넓은 땅에 대해선 안 배웠죠.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배웁니다.”

전시 공간 안 벽면에 크게 새겨진 ‘용산 오늘 그리고 내일’과 드넓은 용산기지 전체를 1/500 크기로 만든 모형이 시선을 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워나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기분이다.
용산공원 전시공간 내 용산기지를 1/500 크기로 만든 모형
용산공원 전시공간 내 용산기지를 1/500 크기로 만든 모형 ⓒ이정민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김천수 연구실장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죠. 일제 말기에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끌려와서 강제 동원돼서 훈련받던 건물이 그대로 지금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의 이런 역사도 우리가 잘 모르죠." 이러한 점이 용산기지의 역사가 어려운 이유라고 했다.

그런 그가 용산기지에 근무한 인연을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 등을 다니며 용산기지의 역사 자료들을 정리한 책들만 6권이 된다. 쉽지 않은 일련의 과정을 그는 "감사하게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더라"는 말로 압축했다.
공원 안내라운지에 비치된 용산기지의 역사 서적들
공원 안내라운지에 비치된 용산기지의 역사 서적들 ⓒ이정민

그는 "지금도 용산기지 반환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중에 사람들이 이 땅의 100년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거예요. 들어가 볼 수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둔지산 자락이 있고 만초천 지류가 흘렀고, 지금 건물이 1,000여 동 있거든요. 여기에 대한 스토리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민족과 관련된 역사가 여기에 녹아있기 때문에...”라며 용산기지가 미래에는 평화와 번영을 노래하는 그런 희망의 광장이자 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용산기지의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는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
용산기지의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는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 ⓒ이정민

끝으로 김천수 연구실장은 “저 넓은 땅에 실제 공원이 되는 부지는 92만 평입니다. 300만㎡, 그러나 아직도 군사기지라는 거죠. 이 땅에 아직도 이런 높은 벽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용산기지의 광복은 이 벽들이 다 사라질 때가 광복이 되지 않겠나. 단순히 물리적인 벽만이 아니라는 거죠.”라며 시민들에게 깊은 관심을 당부하며 마무리했다.
‘용산의 담장’은 우리의 역사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용산의 담장’은 우리의 역사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정민
용산공원 안내도
용산공원 안내도 ⓒ이정민

용산공원을 나오며 보게 된 안내도엔 장소를 가리키는 ‘오손도손’, ‘두루두루’, ‘차곡차곡’, ‘새록새록’과 같은 명칭들이 친근하고 정답다.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금단의 땅’ 용산기지가 우리들 곁으로 ‘차곡차곡’ 마침내 ‘두루두루’(모두 다) 돌아와 줄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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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이정민 생산일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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