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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의 시민 시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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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면 가끔 감정이 울컥해지는 경험을 한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승강장 안전문에 게재된 시들이 소소한 위로를 주기도 한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는 시민 창작시 208편과 유명 시인의 시 107편이 게시되어 있다. 지하철 1~9호선, 분당선 총 314개역 승강장 안전문은 4,093면으로, 이걸 시집으로 친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시집이 될 것이다. 시민 창작시는 2011년부터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된 시들이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는 시민 창작시들이 게재되어 있다 ⓒ최은영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는 시민 창작시들이 게재되어 있다 ⓒ최은영

올해는 6월 15일부터 7월 8일까지 시민 창작시 200편을 공모했다. 시민 1인당 1편씩 온라인으로 응모 가능했으며 8월 31일 선정작이 발표된다. 선정작은 10월부터 314개역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재될 예정이다.

시민 창작시는 문학평론가, 관련 학계 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의 특성과 감상자인 시민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주제의 적합성, 내용의 공공성, 시민의 공감성 등 심사기준에 부합하는 우수한 작품을 선정한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최은영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최은영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된 시민 창작시들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아울러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는 작품들이 게재된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고, 평화로운 서울의 일상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작품들이 게재될 예정이다.

올해 선정될 시들에 대해 기대하며, 그동안 지하철을 타고 오가면서 짬짬이 읽어 본 지하철 시민 창작시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짧고 함축된 시 언어에 삶에 대한 시인의 깊이 있는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시민 창작 시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생활 속 소재들이어서 더욱 공감이 갔다.

이런 시를 쓴 시민들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지하철 시민 창작 시에 선정된 세 분과 비대면으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하철 시민 창작시에 선정되었던 서순보 씨, 선관종 씨, 원효정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삶의 고단함, 시로 풀어내

“일단 써 보세요. 몇 줄이라도 써 보고 자꾸 써 보세요. 매일, 몇 개월 쓰다 보면 결론이 나옵니다.” 2013년 지하철 시민 창작시에 선정된 서순보 씨가 시를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의 말을 해주었다.
2013년 지하철 시민 창작시에 당선되었던 서순보 씨 ⓒ최은영
2013년 지하철 시민 창작시에 당선되었던 서순보 씨 ⓒ최은영

서순보 씨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으나,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정착하고 생활 기반을 마련하느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소설은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긴 글을 써야 하는 소설 대신 생활 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짬짬이 메모했다가 쓸 수 있는 시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자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메모해 두었다가 시를 썼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시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을 시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많이 아파봐야 글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동대문역 근처에서 민물장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서순보 씨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시를 쓰면서 이겨내려 했다고 한다. 다음은 2013년 지하철 시민 창작시 선정작인 서순보 씨의 ‘그대에게’ 이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되었던  서순보 씨의 '그대에게' ⓒ서순보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되었던 서순보 씨의 '그대에게' ⓒ서순보

그대에게

그대 좋아하는 봄이 오면 / 그 봄 못가게 묶어놓고
낙엽지는 가을이 오면 / 그 겨울 못오게 하오리다
그대 달을 보고 외로워하면 / 그달 바닷속에 집어넣고
그대 눈이 부셔 하늘을 못보면 / 그 태양 물을 뿌려 끄오리다

서순보 씨는 한동안 지하철 시민 창작시에 응모하지 못해서 올해 응모해보려 하였으나, 생활에 바쁜 일들로 인해 응모 기간을 깜박 놓쳤다고 한다. 기다렸다가 내년에 다시 응모해보고 싶다며 지하철 시민 창작 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를 읽고 쓰는 문화가 확산되길

"각박한 세상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로 위로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나가면서 가볍게 읽어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감정이 순화되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 시민 창작 시를 읽어보면 순간 재치 넘치는 시도 있고 좋은 시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마스크’라는 시로 지하철 시민 창작시에 당선된 선관종 씨는 응모하게 된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 된 선관종 씨의 '마스크'  ⓒ최은영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 된 선관종 씨의 '마스크' ⓒ최은영

마스크

춘분지나 / 뒤늦게 / 마스크 쓰고 오신 봄
마중 나온 민들레가 / 부직포 아래서 / 용을 쓴다
겨우내 / 가슴 적시던 / 봄날이 지나간다.

코로나19 상황 아래서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고, 비대면으로 만나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봄이 마스크를 쓰고 왔다고 표현했다. 코로나 상황 아래서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려 했다고 한다.
선관종 씨의 '마스크'가  게재된 영등포구청역 ⓒ최은영
선관종 씨의 '마스크'가 게재된 영등포구청역 ⓒ최은영

코로나 상황에도 희망 전하고파

“작년에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힘들었던 시민들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종착역’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힘들지만 코로나도 종착역이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2020년 ‘종착역’이라는 시로 지하철 시민 창작 시에 당선된 원효정 씨는 응모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며 소재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재된 원효정 씨의  '종착역'  ⓒ최은영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재된 원효정 씨의 '종착역' ⓒ최은영

종착역

마스크 쓴 당신 / 아름답고 감사합니다
숨을 고르려 잠시 벗었나요 / 안쓰럽고 미안합니다
오늘도 마스크 안에서 / 애쓴 당신, 고맙습니다
이번 내리실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코로나 19역입니다
잊으신 슬픔이 있으시다면 / 이 역에 놓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원효정 씨는 글을 전문으로 쓰는 시인은 아니지만, 작년에 글이 쓰고 싶어져서 100일 동안 꾸준히 글을 쓰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매일 글을 쓰다가 인터넷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했다고 한다.
원효정 씨의 '종착역'이 게재된 불광역  ⓒ최은영
원효정 씨의 '종착역'이 게재된 불광역 ⓒ최은영

“시는 자기와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됩니다. 아울러 누구나 읽었을 때 공감이 가면 됩니다.” 원효정 씨는 시를 쓰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지하철 시민 창작 시에 당선되어 신기하고 행복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지하철 태릉입구 역사 내 예술 조형물 ⓒ최은영
지하철 태릉입구 역사 내 예술 조형물 ⓒ최은영

지하철 시민 창작시 당선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 코로나19 등의 상황을 시로 나타내고 이겨나가려 해서 좋았다. 진솔하게 시 쓰는 방법에 대해 조언도 해 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다수의 시들이 있는데 지면의 한계로 세 편만 전하게 되어 아쉽다. 현재 지하철 승강장 시민 창작시는 지하철에서만 읽을 수 있으나, 코로나 상황으로 여기저기 다닐 수 없으므로, 관련 홈페이지에도 싣거나 연도별로 모아서 시집으로 발간해도 좋을 것 같다.

다시금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와 변이 바이러스 출몰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시를 읽고 쓰면서 달래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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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의 시민 시인을 만나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최은영 생산일 2021-07-28
관리번호 D0000043115642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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