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걸을 맛' 나는 이태원 골목부터 부군당까지...용산기지 둘레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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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 8개 둘레길 중 '부군당 산책'

서울에 속해 있지만 100여 년이 넘게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땅이 있다. 바로 용산 미군기지다. 그 부지가 용산공원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준비를 시작했다.

여의도 면적에 버금가는 300만㎢의 거대부지가 공원으로 바뀌면 뉴욕과 런던의 센트럴파크나 하이드파크처럼 건물로 빽빽한 도심 속에 숲이 생기기에 공원 개발에 대한 기대가 높다. 재화를 들이지 않으면 머물 공간이 마땅치 않은 서울에선, 자연과 일상 문화를 함께 즐기고 심신의 정화를 누릴 수 있는 열린 공원의 존재가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녹사평역 내 용산공원 플랫폼. 용산공원과 관련한 설치물 전시 및 용산 미군기지 주변지역 워킹투어의 출발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녹사평역 내 용산공원 플랫폼. 용산공원과 관련한 설치물 전시 및 용산 미군기지 주변지역 워킹투어의 출발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지영

용산공원 커뮤니티 주관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

현재의 용산 미군기지 부지는 13㎞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단절되어 있지만, 공원화가 확정되면서 그 일대의 역사와 천태만상의 일상 기록을 담아내기 위한 작업들이 한창이다.

그 일환으로 다양한 인문학 걷기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담장 속 삶이 궁금했던 필자도 용산공원 커뮤니티에서 진행중인 8가지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 코스 가운데 ‘부군당 산책’을 일찌감치 신청해 참여했다.

이 코스는 용산기지 일대에 있는 3곳의 부군당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코스로, 6월까지 진행되는 둘레길 산책 신청은 용산공원 커뮤니티 홈페이지(https://yongsanpark.community)를 통해 각 코스의 동선과 소요 시간을 본 후 결정하면 된다. 선착순으로 회당 15명씩 모집한다.

녹사평역 내 ‘용산공원 시민소통’ 공간 조성

필자가 선택한 부군당 산책은 약 120분 간 진행되었다. 첫 만남은 녹사평역 지하 1층 용산공원 플랫폼에서 이뤄졌다. 열체크 및 QR인증을 진행한 후에 녹사평 내 조성된 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이자 기획전시공간, 용산미군기지 주변 지역 워킹투어의 출발점인 이곳에서 간단한 설명과 동선에 대한 안내가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혼자 왔거나 친구, 가족과 함께 참여했다.

간단한 동선 설명을 마친 후 첫 이동지는 녹사평역에서 밖으로 나와 마주하게 되는 육교였다. 이 육교는 숱하게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인상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년에 많은 인기를 끈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자주 등장하면서 명소가 됐다. 물론 그보다는 남산과 둔지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친다하여 ‘찬바람재’, ‘한풍재·한풍치’라고 불리던 곳이란다. 육교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고 설명도 듣고 보니 도로를 만들기 위해 깎여나간 산세와 왜 이곳의 지대가 높은지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녹사평역에서 밖으로 나와 연결된 육교. 이곳에 오르면 주변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오고, 설명판에 부착된 옛 사진을 통해 이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녹사평역에서 밖으로 나와 연결된 육교. 이곳에 오르면 주변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안내판에 부착된 옛 사진을 통해 이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박지영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과 유관순 추모비

육교를 건너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니 유관순 열사 추모비가 있는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 다다랐다. 부군당을 처음 가보긴 했지만 낯설지 않았던 건,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한 독립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나왔던 이태원 부군당의 인상이 좋아서였다. 필자가 생각한 이태원의 이미지와 조금 다른 곳으로, 이태원에 ‘저런 곳이 있었나?’ 싶었는데, 직접 가보니 과연 화면 안엔 다 담지 못했던 용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밤풍경 명소’라는 인증 표시가 있을 만큼, 남산 N타워와 용산기지 일대 그리고 그 주변의 집들이 한눈에 보인다.

이태원 부군당은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제당(祭堂)으로, 전해지는 바로는 1619년에 외인주택 삼거리에 위치했는데 일제강점기 때 훈련소가 세워지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단다. 신전 내에는 부군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12점의 신상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고, 매년 음력 4월1일과 음력 10월1일에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다른 부군당에 비해 높은 지역에 위치해 미군기지 내부는 물론 일대를 조망하기 좋아 시민들이 자주 찾고 있다.

특히 공원 내에는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안장되었던 옛 이태원 공동묘지 터 일대가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가 일제강점기 때 군용기지로 전환됨에 따라 이장 과정에서 실전(失傳)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내 부군당. 안에는 부군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12점의 신상이 수호신으로 모셔져 있다.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내 부군당. 안에는 부군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12점의 신상이 수호신으로 모셔져 있다. ⓒ박지영

‘걸을 맛’이 나는 재미난 동네, 이태원

언덕을 내려와 이태원 시장을 거쳐 용산구청에 다다르는 동안엔 코로나가 할퀴고 간 아픈 흉터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평일 낮이기도 했지만, 현저하게 줄어든 방문객과 문을 굳게 닫아 둔 대부분의 매장, 그리고 그마저도 임대 및 매매를 붙여 둔 상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늘 북적북적했던 이태원이었기에 비어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적한 상점들을 통과해 용산구청 앞에 다다랐을 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너무 위축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활방역이 정착된 지도 한참이고 기본 수칙만 철저하게 잘 지키면 지난 일상으로의 회귀가 어렵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뒤따랐다. 그러다 마주친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표지판은 이 지역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그림이 들어간 표지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태원 일대는 꽤 볼거리가 많은 동네였다는 생각이 몰아쳤다.
문을 열긴 했지만 활기를 찾기 어려운 이태원 시장의 모습. 코로나 방역 관련 플랜카드가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왔다.
문을 열긴 했지만 활기를 찾기 어려운 이태원 시장의 모습. 코로나 방역 관련 플랜카드가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왔다. ⓒ박지영
용산구청 부근에 있는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안내판.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용산구청 부근에 있는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안내판.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 박지영

발걸음이 옮겨진 곳은 앤틱거리다. 예전에는 평일도 그렇지만 주말마다 사람들이 많이 구경을 오던 곳이었다. 우리 그룹 외엔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는 텅 비어 있었지만 이태원 일대엔 이 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가 멀면 멀수록 그 볼거리는 더 눈에 들어왔다. 바로 건축물이다. 이태원은 이국적인 동네로, 숱한 역사가 뒤섞여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그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음식이었고, 한걸음 뒤에서 관망 할 수 있었던 것이 건축물이었다. 1930년대 붐을 이룬 문화주택의 흔적부터, 1960,70년대 이후의 건축, 그리고 현재의 건축이 섞여있고, 여기에 대사관과 영사관, 그와 관련된 저택들이 각각의 특색을 드러내며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태원 일대다.

이들 안에는 모두 이야기가 담겨있다.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갈 수 없는 해외여행의 아쉬움을 건축물 여행으로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그야말로 '걸을 맛'이 나는 동네다.
공사중인 옛 유엔군 사령부 부지. 앤틱 거리 가기 전 대로에서 눈에 잘 들어온다.
공사중인 옛 유엔군 사령부 부지. 앤틱 거리 가기 전 대로에서 눈에 잘 들어온다. ⓒ박지영
한적한 앤틱거리. 예전에는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한적한 앤틱거리. 예전에는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박지영

보광동 무후묘로 불리는 둔지미 부군당

그렇게 쉬며 가며를 반복하다 만난 보광동 무후묘는 이 코스의 두 번째 부군당인 둔지미 부군당이다. 오늘날 용산미군기지 사우스 포스트 지역에는 원래 둔지미 마을이 있었는데, 용산이 일본 군용지로 수용되면서 마을주민들이 두 차례 강제 이주를 당했단다. 1906년에 이어 1917년에 이뤄진 2차 강제 이주 때 용산구 보광동 일대로 이주했는데, 마을공동체 상징인 부군당을 보존하기 위해 오늘날 이곳에 옮겨왔다고 한다. 둔지미 부군당에는 제갈공명, 산신 등의 무신도가 봉안되어 있고, 음력 10월 1일 간단한 유교식으로 제례를 올린다.
보광동 무후사 명판과  골목 전경.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그 앞의 좁은 골목, 낮은 집들, 겹쳐진 공중선들이  인상적이었다.
보광동 무후사 명판과 골목 전경.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그 앞의 좁은 골목, 낮은 집들, 겹쳐진 공중선들이 인상적이었다. ⓒ박지영
육교에서 바라본 수송부 부지. 유엔사 부지와 수송부 부지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육교에서 바라본 수송부 부지. 유엔사 부지와 수송부 부지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박지영
미군기지 벽면에 부착된 '미군용시설 , 무단출입 금지' 표지판. 곧 사라질 표지판을 기록으로 남겨봤다.
미군기지 벽면에 부착된 '미군용시설 , 무단출입 금지' 표지판. 곧 사라질 표지판을 기록으로 남겨봤다. ⓒ박지영

태조 이성계와 부인 강씨를 모신 서빙고동 부군당

걸음을 재촉해 이동한 곳은 서빙고 터로, 조선시대 얼음 저장 창고인 빙고이다. 1936년 설치된 서빙고는 궁중, 문무백관 및 환자나 죄수들에게 나눠줄 얼음을 저장했다는데, 안타깝게도 표지석만 있고 당시 둔덕에 땅을 파고 회를 발라 지은 8채의 움막집 형태의 보관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지막 장소인 서빙고동 부군당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세워진 제당으로 인조 13년(1635년)에 고쳐 지은 내용을 기록한 기문부터 1927년 중수기 까지 남아있어 그 오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역시 1910년대 초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단다. 안에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와 왕비 강씨가 모셔져 있고 매년 음력 1월 1일 유교식 제례를 올린다는데, 안타깝게도 공간이 개방되지 않아 신당 내부는 볼 수 없었고 밖에서만 둘러보았다.
서빙고동 부군당 정문. 경사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서빙고동 부군당 정문. 경사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박지영
서빙고동 부군당 내부. 낮은 담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서빙고동 부군당 내부. 낮은 담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박지영

‘걷는다’는 건 건강에도 좋다. 자연에 파묻혀 조용히 걷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도심 속을 걸으며 도시의 모습에 집중하는 것도 참 좋다. 용산 둘레길 산책은 해설사가 있어 대상에 의미를 더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산책이 또 있을까 싶다. 한가지 아쉬운 건 신당이다 보니 개방되지 않는 곳들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은 사전 협조를 통해서 잘 조율되었으면 좋겠다. 8개 코스를 모두 완주하면 특별한 선물도 있고, 매 코스마다 다르게 발행되는 리플릿 4개를 모으면 커피 쿠폰도 증정한다. 봄을 맞은 지금, 용산 기지 담장 안팎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둘레길 산책에 참여해 보면 어떨까.

■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

○ 코스 안내: 총 8개 (독립의지의 길, 과거전환의 길, 부군당 산책길, 녹사평 산책길, 한강로 산책길, 이촌동 산책길, 철도명암의 길, 일제흔적의 길 등)
○ 신청 기간 및 진행 시간 : 4~6월까지 매주 목·토요일 10:00~12:30
○ 신청 방법: 용산공원 커뮤니티 홈페이지
용산공원 홈페이지
※ 코스별 신청 및 중복 신청 가능, 마스크 필참, 편한 신발, 생수 개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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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맛' 나는 이태원 골목부터 부군당까지...용산기지 둘레길 코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박지영 생산일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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