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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울문화재'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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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비대면 활동이 늘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문화재 관람도 비대면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카드뉴스로 서울문화재 홍보에 나섰다. 매월 그 달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서울의 문화재를 ‘이달의 서울문화재 카드늬우스’로 발행하는 것이다.

2월 시작된 카드늬우스의 첫 주인공은 ‘구 러시아공사관’과 ‘양화나루 잠두봉 유적’, 그리고 ‘승동교회’다. 왜 이 명소들이 선정된 것일까? '이달의 서울문화재 카드뉘우스'에 소개된 세 곳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서울문화재 정보를 전하는 ‘이달의 서울 문화재 카드늬우스’
서울문화재 정보를 전하는 ‘이달의 서울 문화재 카드늬우스’ ⓒ서울시 문화본부 인스타그램

1.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1895년 을미년에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 그 후 조선 왕실은 일본군과 친일 내각이 장악하고 임금이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결국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왕세자가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고종은 약 1년 동안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렀다.
공사 가림막 일러스트에 등장한 옛 러시아 공사관. 현재도 남아 있는 탑이 보인다.
공사 가림막 일러스트에 등장한 옛 러시아 공사관. 현재도 남아 있는 탑이 보인다. ⓒ이선미

구 러시아공사관은 원래 2층 벽돌 건물에 3층 탑을 세운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이었다. 한국전쟁 때 불타 탑과 지하 2층만 남은 것을 1973년 현재와 같이 복원했다. 지금은 탑 보수공사를 진행하느라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이달의 서울문화재로 선정된 구 러시아공사관, 현재 공사 중이다.
이달의 서울문화재로 선정된 구 러시아공사관, 현재 공사 중이다. ⓒ이선미

바로 이어지는 정동공원에는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이 계속되고 있다.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그리고 고종의 승하까지 대한제국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 전시다.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 아관파천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해 승하하기까지 대한제국의 마지막 순간들이 담겼다. ⓒ이선미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 아관파천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해 승하하기까지 대한제국의 마지막 순간들이 담겼다. ⓒ이선미

정동공원에서는 ‘고종의 길’이 이어진다. 1896년 2월 고종이 일본군 감시를 따돌리고 경복궁을 탈출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갔던 길의 일부를 복원한 것으로,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복원 사업이 시작돼 2018년 10월부터 정식 개방되었다.
정동공원에서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지는 총 120m의 ‘고종의 길’
정동공원에서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지는 총 120m의 ‘고종의 길’ ⓒ이선미

2.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옛 양화나루의 잠두봉은 원래 ‘봉우리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 얻은 이름이었는데, 무수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한 뒤로는 ‘머리가 잘렸다’는 뜻의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옛 양화나루 위쪽에 있던 30m 높이의 잠두봉이 천주교 신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절두산 성지가 되었다.
옛 양화나루 위쪽에 있던 30m 높이의 잠두봉. 천주교 신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절두산 성지가 되었다. ⓒ이선미

1791년 신해박해로 시작된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1866년 병인년 가장 처참하게 치달았다, 2월23일 장경일(베르뇌 시메온, 프랑스인) 주교와 홍봉주가 체포되면서 시작된 병인박해는 마지막 박해이자 최대의 희생을 치른 박해로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을 포함한 8천여 신자가 처형됐다.
절두산 마당에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교수형 집행에 쓰도록 고안된 형구돌이 있다.
절두산 마당에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교수형 집행에 쓰도록 고안된 형구돌이 있다.ⓒ이선미

한국 천주교회는 1956년 절두산 부지를 매입해 1967년부터 성지로 조성했고, 1997년에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지정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성당과 기념관 등이 문을 닫은 성지에서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19로 성당과 기념관 등이 문을 닫은 성지에서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선미

3. 승동교회

코로나19로 지금은 한산하지만 늘 인파가 붐비던 인사동 초입에 뜻밖의 장소가 숨어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된 승동교회다. 1893년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무어가 16명의 신자와 시작한 승동교회는 ‘백정교회’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무어가 신분타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전도해 백정 신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승동교회는 ‘백정교회’라고도 불릴 만큼 신분제 타파에 힘을 쏟았다.
승동교회는 ‘백정교회’라고도 불릴 만큼 신분제 타파에 힘을 쏟았다. ⓒ이선미

2월의 카드늬우스에서 승동교회가 소개되는 것은 1919년 2월20일 김원벽을 중심으로 학생 대표들이 모여 3.1운동을 준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 1,500매가 학생 대표들에게 전달된 곳도 승동교회였다. 신분 타파에 앞장섰던 교회가 3.1만세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교회 앞에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학생대표들이 모의하였던 곳’ 표석이 있다.
교회 앞에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학생대표들이 모의하였던 곳’ 표석이 있다. ⓒ이선미

일제 강점기에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한 승동교회 마당에는 ‘이율곡이 살던 집터’라는 표지석도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온라인 예배만 드린다는 승동교회는 입구의 문도 닫혀 있었다.
승동교회는 정부 시책에 따라 대면예배 대신 온라인 예배를 하고 있다.
승동교회는 정부 시책에 따라 대면예배 대신 온라인 예배를 하고 있다. ⓒ이선미

서울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문화재를 통해 근현대사의 명암을 살펴볼 수 있는 이달의 서울문화재 카드늬우스. 3월에는 어떤 문화재가 소개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첫 선을 보인 ‘카드늬우스’, 앞으로의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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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울문화재' 현장을 찾아서...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이선미 생산일 2021-02-16
관리번호 D000004193803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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