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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고래 '벨루가'의 비극…돌고래 쇼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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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8)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내가 살던 여천군 삼일면 월래리 바닷가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MBC가 잘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우리는 KBS만 봐야 했다. 내가 가장 기다리던 프로는 일본 에니메이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덕분에 그 어린 나이에도 마린은 바다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에 갈 때까지도 보이가 왕자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유감이지만…
이 만화가 좋았던 이유는 단지 재밌어서가 아니다. 많은 질문을 낳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호흡법이었다. 당시 나는 수영을 배우면서 호흡하는 데 무진 애를 먹고 있었다. 마린보이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데 깊은 바닷속에서 어떻게 숨을 쉴까? 만화에는 다 방법이 있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산소껌을 씹는다. 어린 마음에 “이런 기발한 방법이 있다니…!”라며 감탄하곤 했다. “내게도 산소껌만 있다면 호흡법 때문에 기가 죽지 않아도 될 텐데…” 하며 부러워했다. 물론 산소껌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또 스쿠버다이버들이 메고 들어가는 통에는 산소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공기가 들어 있다. 그래야 된다.)
마린보이가 굳이 바다에 열심히 들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자 친구가 있다. 인어 넵티나다. 요즘이라면 달리 보였겠지만 당시 내게 넵티나는 관심 밖이었다. 내가 찾던 또 다른 캐릭터는 하얀 돌고래 화이티. 만화를 보면서 생긴 많은 질문 가운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더 있다. “아버지, 화이티는 왜 하얀색인가요?”
다행히 아버지는 “화이트가 영어로 하얀색이니까 화이티가 하얀색이지.” 같은 쉬운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염색체 이상으로 몸이 하얗게 되는 병이 있어. 알비노증이라고 해. 가끔 뉴스에 나오는 백사(白蛇)도 그런 거야. 백색증(알비노)은 사람에게도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아.” 이렇게 체계적인 답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런 비슷한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설명은 틀렸다. 화이티는 백색증을 앓고(?) 있는 돌고래가 아니라 원래 흰돌고래인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먼저 퀴즈. 사람의 목뼈는 일곱 개다. 그러면 기린의 목뼈는 몇 개일까? 10년 전이라면 이런 질문에 일곱보다는 훨씬 많은 수, 아마도 수십 개를 대는 대답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답은 그냥 ‘일곱’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아냐고?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배운다.
사람과 기린뿐만 아니라 쥐나 원숭이도 목뼈는 모두 일곱 개다. 그렇다, 포유동물은 목뼈가 모두 일곱 개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전자 때문이다. 포유류에게는 목뼈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다. 포유류 목뼈 유전자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목뼈의 개수를 일곱 개로 정하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암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목뼈가 일곱 개보다 많거나 적으면 암을 발생시켜서 결국 죽게 된다. 따라서 목뼈가 일곱 개가 아닌 포유류는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매우 적다.
그렇다면 돌고래나 고래의 목뼈는 몇 개일까? 고래가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일곱’이라는 답을 쉽게 낼 것이다. 그런데 반만 맞는 답이다. 고래와 돌고래의 목뼈 역시 일곱 개지만 실제로는 하나처럼 보인다. 목뼈가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목뼈 일곱 개가 붙어 있으니 고개를 돌릴 수 없다.
대서양에서 혹등고래를 본 적이 있다. 혹등고래가 내가 탄 배 가까이로 왔다. 우리는 배를 멈추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혹등고래는 우리와 그 커다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쓱 지나가고 만다. 고래는 한 자리에 멈춰 설 수도 없고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채우지 못했는지 혹등고래는 몇 차례 우리 주변을 더 오락가락 하면서 우리를 충분히 관찰한 다음에야 우리 곁을 떠났다.
고래들은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하지만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종이 있다. 벨루가가 바로 그것이다. 벨루가는 흰돌고래다. 벨루가는 목뼈가 융합되지 않아서 고개를 돌릴 수 있다.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에 나오는 화이티는 고개를 잘도 돌렸다. 이것은 화이티가 백색증에 걸린 게 아니라 흰돌고래 벨루가라는 뜻이다. 우리 아버지가 잘못 알고 계셨다.
벨루가는 성격이 별로 좋지 않다. 대서양 고래 관광선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고래가 스스로 다가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200미터까지만 접근하는 것이다. 혹등고래는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잘 보인다. 무게가 30톤, 길이는 16미터나 되는 워낙 큰 친구니까. 이에 반해 벨루가는 작은 돌고래다. 길이가 4~5미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벨루가에게는 400미터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 성격이 나쁜 녀석이라서 그렇다. 인간이 주는 스트레스에 약한 동물이다.
혹등고래를 잡아다가 쇼를 벌이는 수족관은 없다. 제주도 남방큰돌고래도 거의 바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본 다이지에서 잡힌 큰돌고래 20여 마리와 러시아에서 수입된 벨루가 다섯 마리는 여전히 수족관에서 쇼를 하면서 산다. 귀엽다는 이유로. 심지어 마린보이도 아니면서, 산소껌도 없으면서 벨루가에 올라타서 마치 서핑을 하는 것 같은 체험(?)을 하기도 한다. 벨루가는 스트레스에 약한 동물이다.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가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제 돌고래 쇼는 그만 하자. 보러 가지 않으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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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 내손안에서울 | 제공부서 | 콘텐츠담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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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 생산일 | 2020-08-03 |
관리번호 | D0000041752525 | 분류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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