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글이 써지는 순간은 언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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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뉴시스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6) 축적, 몰입, 융합

많은 글을 썼다.

청와대와 기업에서 천 편 가까운 연설문과 기고 글을 쓰고 다듬었다.

쓰기 시작할 땐 매번 두려웠다.

단 한 번도 자신 있게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번도 못 쓴 적은 없다.

못 쓰면 안 되니까. 써야하니까.

분명하게 경험한 것이 하나 있다.

쓰다 보면 써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깜깜하던 방이 훤해지는 순간이 온다.

왜 이제야 이런 게 찾아온 거야 생각하며 정신없이 쓰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양을 쌓는다

양의 증가는 반드시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어느 지점까지는 양이 쌓여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다가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질이 바뀐다.

어느 순간 비약적 발전이 이뤄진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 글쓰기 패턴이 생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깨우치는 순간이 온다.

무엇을 어떻게 깨우쳤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 이전과 다른 상태가 된다.

글쓰기 양질전화가 일어난다.

참고 기다리며 꾸준히 쓰는 게 어렵다.

조급증과 답답함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 한 해, 두 해 기다려도 싹 조차 보이지 않는다.

죽지 않았나 의심할 무렵,?30cm 죽순이 고개를 내민다.

참고 기다리며 물과 거름을 준 결과다.

그러나 또다시 그대로다.

도무지 더 이상 자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가 5년째에 하루 1m씩?자라?불과 달포 만에 15m 넘게 훌쩍 큰다.

폭발적인 성장,?퀀텀 리프(quantum leap)를 한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2007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올리고 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묻는 분에게 추천하는 사이트다.

여기서 글 쓰는 방법을 배우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10년 가까이 매일 쓰는 꾸준함을 배우라는 뜻이다.

봄풀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자란다.

글쓰기 실력도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매일 자라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더 깊이 뿌리를 내리며??퀀텀리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 확신만 있으면, 그리고 꾸준히 쓰면 써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대상에 몰입한다

글 쓸 때 흔히 범하는 잘못이 있다.

대상 보다 글 쓰는 자신에게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자신의 글 솜씨와 아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글쓰기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써지는 순간이 온다.

글쓰기 대상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상황이나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푹 빠져야 한다.

관심과 공감 정도가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늘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이선희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면 모든 게 궁금해진다.

‘왜 그렇지?’ ‘어떻게 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지?’ 대상에 빙의되면, 그것의 원리, 패턴, 배경, 맥락, 본질을 꿰뚫게 된다.

마침내 ‘아, 이것이구나.’

서울대 심리학과 황농문 교수는 72시간 동안 한 가지 주제만 생각하면 생각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미치면(狂) 미친다(及)고 하지 않든가.

간절하면 뇌가 안다.

내가 다른 일을 할 때도 뇌는 궁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답을 준다.

사흘간만 집중적으로 생각해보라.

못쓸 글이 없다.

반드시 써진다.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뉴턴 모두 몰입을 통해 통찰을 얻어냈다.

다른 것을 섞는다

쓰고자 하는 내용이 있으면 그것만 파선 안 된다.

검색할 때, 책을 읽을 때도 주변을 폭넓게 뒤져야 한다.

그렇게 섭렵하다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낯선 것들이 통합적으로 이해가 된다.

이것저것이 합해져 새로운 상상력이 생긴다.

지식의 영토가 확장되고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그 짜릿한 순간에 글이 써진다.

헝가리 철학자 아서 쾨슬러(Author Koestler)가 주창한 ‘이연현상’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사실이나 아이디어가 부딪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창의적 생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말이다.

이연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답을 찾고자 하는 분명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

둘째, 관계없는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들인 시간이 있어야 한다.

서울대 경영학과 윤석철 교수는 자신의 책 <삶의 정도>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적 좌절, 정서적 곤경에 빠져 방황하다가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경험과 지식이 별안간 관계를 맺게 되는 일이 생긴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쓴 스티븐 킹도 비슷한 말을 했다.“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방금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는 통찰력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구덩이를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고 했다.

구덩이를 하나만 파서도 안 된다.

이곳저곳 여러 군데 파야 한다.

여기저기 파다 보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분야들이 서로 연결되고 뒤섞여 소통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낸다.

마치 용광로에서 여러 금속이 녹아 새로운 쇠붙이로 다시 태어나듯.

이 시점부터 글 쓰는 사람은 주도권을 잃는다.

글이 주도권을 행사한다.

글이 글을 쓴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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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강원국 생산일 2016-09-05
관리번호 D0000041752798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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