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눈과 손으로 읽는 책, 그리고 정다운 사람들
문서 본문
[서울톡톡] 시각장애인들의 문화공간인 '강서점자도서관'은 강서구 방화동의 오밀조밀한 주택가 외진 골목에 있었다. 건물 외벽에 '강서 점자도서관'이라고 쓰여 있을 뿐, 거리 상가에 다닥다닥한 흔해 빠진 간판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도서관은 동네 구멍가게 주인조차도 잘 모르던 것도 모자라 지하 1층에 있어 어둡고 좁은 계단을 따라 더 내려가야 했다.
"한 번에 잘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김경순(46)씨가 환히 웃으며 의자를 내주었다. 시각장애 1급인 그는 색 짙은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맨 얼굴이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고개를 숙인다거나 외면하지 않음이 오히려 신뢰감을 주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점자도서관에서 일반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장애인 상담을 돕고 있다.
또 한 명의 시각장애인인 박미순(56)씨는 거의 매일 점자도서관에 오는 오랜 터줏대감으로 시 쓰기를 좋아해 이곳에선 '여류시인'으로 통한다. 자작시 낭송도 자주해서 점자도서관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점자 프린터기에서 계속 출력되는 점자인쇄본을 살피고 있던 사무국장 정미화(50)씨가 오톨도톨한 명함을 건넸다. 일반인은 판독이 어려운 점자명함이다. 정씨는 강서점자도서관이 개관하던 2005년부터 지금까지 실무를 맡고 있다.
강서점자도서관은 강서구는 물론 양천구, 구로구, 영등포구를 통틀어 서울 서남권에서 유일한 점자인쇄시설을 갖춘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도서관이다.
도서관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은 이곳에서 제작한 4,000여 권의 점자도서다. 도서관의 실내는 비좁은 대로 칸칸이 나뉘어 공간 구분을 확실히 하고 있어 어수선해 뵈지는 않았다.
점자 프린터와 복사기가 놓인 곳은 점자도서 제작실, 그 옆의 책상 둘에 전화가 비치된 곳은 행정업무 공간이다. 이곳에서 가장 넓은 축에 드는 실내 중앙은 도서 열람실이자 문화프로그램이 열리기도 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시각장애인과 방문객 대부분이 머무는 곳이다.
시각장애인과 일반인 대상으로 매주 점자 교육과 기타교실이 운영되고 경우에 따라선 식당이 되기도 한단다. 그래도 누구하나 이 허름한 공간을 불편해 하지 않는다. 에어컨이 없어도 선풍기 바람으로 만족하고 서로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쳐도 눈살을 찌푸리는 게 아니라 더 친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한다고 한다. 한 곳에서의 공간 활용 빈도가 높다 보니 달력엔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오늘 오전에 기타교실, 오후엔 시각장애인들의 간담회. 이런 식으로 마치 톱니바퀴 돌아가는 듯 일정들로 빼곡하다. 동 주민센터마다 '유휴 공간 빌려 줍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지상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점자도서관에는 시각장애인 외에도 봉사활동으로 찾아오는 일반인들도 꽤 많다. 그들 중엔 녹음봉사자도 있다. 도서관 한 쪽에 마련된 녹음실에선 책 읽는 소리로 낭랑하다. 도서관에선 점자도서와 함께 녹음도서도 만들고 있는데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녹음봉사로 이루어진다. 녹음도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도서다. 특히 점자를 익히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점자책에 비해 부피가 적어 많이 선호하고 있다. 제작 된 점자도서와 녹음도서는 장애인 특수 우편으로 무료 배포 된다.
녹음실은 사방이 두터운 방음벽 시설이라 더욱 푹푹 찐다. 목소리 높낮이에 따라 마이크가 놓인 책상 앞의 모니터가 미세하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쉬울 것 같았는데 막상 녹음해 들어보니 이상해요. 아무래도 더 연습을 한 뒤 녹음해야 되겠어요." "'하악하악'(이외수 지음)을 녹음 중인데 특유의 위트 있는 문장을 표현 하려니 쉽지가 않네요." 한 차례 녹음을 마치고 쉬러 나와 물을 마시던 봉사자들은 그 와중에도 진지하게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아사아나항공 여승무원들은 6개월 전부터 13명의 그룹원 모두가 녹음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책 속의 내용을 목소리 하나로 표현하려다 보면 열정이 앞선 나머지 연극배우가 되다시피 해 녹음을 마치고 나면 땀범벅 되기 일쑤지만 그것조차 보람으로 여긴다"고 봉사자들은 말했다.
처음 입문한 승무원 봉사자들의 녹음실습을 담당했던 녹음봉사 9년 경력의 최혜정(49)씨는 "기내 방송 경험으로 발음이 정확한 데다 목소리의 톤도 녹음에 적합해 앞으로의 봉사활동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비행 뒤의 금쪽같은 단잠 시간을 반납하고 짬을 내 지속적으로 녹음봉사를 해주어 무척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결혼 3년차의 필리핀인 새댁은 시각장애인인 시어머니가 점자를 배우는 동안 서류 정리도 하고 청소도 돕고 있었다. 이처럼 점자도서관에선 모두가 한 가족처럼 어우러져 워드 입력과 녹음, 상담 등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서로의 재능을 나눈다. "시각 장애인들이 외출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한 번 오셨던 분들은 이곳을 다행히도 편안하게 생각해 주셔서 자주 오세요. 일반인도 오셔서 시각장애인들의 문화 활동을 돕고 함께 차를 나누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해요." 이곳 봉사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문의 02-2661-2278
본 콘텐츠는 서울시'내 손안에 서울'에서 게재중인 콘텐츠 입니다. 내 손안의 서울
문서 정보
원본시스템 | 내손안에서울 | 제공부서 | 콘텐츠담당관 |
---|---|---|---|
작성자(책임자) | 시민기자 박분 | 생산일 | 2014-08-04 |
관리번호 | D0000041752553 | 분류 | 기타 |
이용조건 | 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 |
라이브리 소셜 공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