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얼음물 샤워 열풍에서 우리가 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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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톡톡] 얼음물 샤워 열풍이 나타나고 있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SNS에 올리고 다른 세 사람을 지목하면, 지목당한 사람이 루게릭병 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하거나 아니면 자신도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올리고 다시 세 사람을 지목하는 이벤트에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요즘엔 얼음물은 얼음물대로 뒤집어쓰면서 기부까지 함께 하는 추세다. 원래 미국 북부 지역에 찬물에 입수하는 '콜드 워터 챌린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바뀌었고, 여기에 루게릭병 환자가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미국루게릭병협회(ALS협회)에 기부하는 초대형 캠페인으로 확산된 것이다.
한국에서 이것이 처음 화제가 된 계기는 빌게이츠의 얼음물 샤워 영상이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을 지목했고, 지목당한 빌게이츠는 자신이 직접 얼음물을 쏟아내는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까지 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공개했다. 뒤이어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테슬라의 CEO 앨런 머스크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이 이 이벤트에 참여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억만장자인 주커버그, 빌게이츠 등이 얼음물을 뒤집어썼다는 기사에 '부럽다', '멋있다'. '우리 지도층은 왜 이렇게 못하나' 등의 댓글이 줄을 이으며 신드롬이 나타났다.
한국인은 그 전부터 서구 선진국 지도층이 보여주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소탈한 모습에 경탄해왔다. 2차 대전 때 서구 귀족 자제들의 전사율이 매우 높았다는 기사를 보면서, 자식에게 이중국적을 만들어주는 우리 지도층의 행태를 한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는 서구 부자들의 모습이 부러움을 샀고, 천문학적인 액수를 기부하는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등을 보며 소상공인의 골목상권까지 다 쓸어가는 우리 재벌의 욕심을 개탄했다.
우리 지도층을, 사회적 책임이나 약자 배려 등의 가치와는 평생 절연하고 사는 집단이란 이미지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서민들의 고통스런 삶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된 최근 몇 년 사이에 명품 열풍, 외제차 열풍이 분 것만 보더라도, 우리 지도층이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지 알 수 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며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비명을 지르는 미국 부자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기심, 욕심 등과 함께 우리 지도층의 또 다른 이미지는 권위주의다. 일반인들 위에 있는 다른 세상에서 군림한다는 느낌. 이렇기 때문에 빌게이츠 같은 미국 최고의 부자들이 SNS를 통해 소탈하게 유희를 즐기는 모습이 더욱 기분 좋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커버그는 빌게이츠의 얼음물 샤워 영상에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댓글놀이하는 재벌 회장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우리와는 다른 지도층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얼음물 샤워 운동이 한국 네티즌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 스타들이 줄줄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세계 첨단 유행인 것처럼 인식됐는데, 이것도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을 자극했다. 그 결과는 한국 내에서의 폭발적인 열풍이다. 이젠 얼음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유명인이 아니라는 말까지도 나온다. 우리 재벌회장이나 최고위 정치지도자들도 마침내 얼음물을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동의 와중에 얼음물 놀이만 남고 원래의 기부 정신이 사라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빌게이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부터 천문학적인 기부로 유명했던 사람이고, 난치병 문제 해결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반면에 한국의 유명인들은 기부에도,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다가 얼음물 샤워가 유행한다니까 갑자기 찬물만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얼음물 샤워가 유명인들 홍보이벤트로 변질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 유명인들이 진정으로 따라 해야 할 건 얼음물 샤워 영상을 SNS에 올리는 홍보정신이 아니라, 서구 유명인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적 책임 의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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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하재근(문화평론가) | 생산일 | 2014-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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