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9호선 공항시장역에 시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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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톡톡] '치지직' 번들번들 뜨겁게 달구어진 번철에서 익어가는 부침개 소리조차 없었다. 지난 8월 29일 오후에 찾아간 강서구 공항시장은 너무도 한산했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이 간혹 보일 뿐 도로 가의 차 소리가 아니었으면 절간과도 다름없으리만치 적막했다.
공항시장에서 꽤 맛있다고 입소문 났던 순대국집 골목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지 오래됨을 가재도구를 덮은 채 먼지가 내려앉은 천막이 말해주고 있었다. 옷집이 즐비했던 상가 역시 휑하니 두세 집 건너 문을 닫고 있었다. 재래시장의 터줏대감격인 포목점의 주인은 마실 나갔는지 문을 열어 둔 채였고 신발가게와 약국이 떠난 빈자리엔 임대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시장통 모퉁이 떡방아간은 좀 낫겠지 싶어 가보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때쯤부터 계속해 송편에 쓸 쌀을 빻아 내느라 쉴 겨를이 없었죠. 참기름, 들기름 짜기도 바빴고요. 그래도 오랜 단골들이 있으니 이렇게 깨라도 볶고 있구만요."
깨를 쉼 없이 휘저으며 볶아내는 떡방앗간 주인 나용순(54) 씨의 기척이 있어 그나마 온기가 도는 시장골목이다.
"발 딛을 틈이 없었어요. 저 얼음가게가 문 닫은 지 여러 해 됐지만 종일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 돌아가는 소리로 귀가 따가웠고 요즘 같은 날 좋은 날엔 저기 건너편 솜틀집은 또 어쩠고요? 집에서 갖고 나온 솜보따리가 길게 줄을 섰던 때가 엊그제 같구만요."
40년을 한자리에서 순대를 팔고 있다는 이순애(71)씨가 번성했던 시절의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이 씨는 "10여 년 전, 방신시장이 전통재래시장으로서 재정비 단계에 들어갈 때만 해도 공항시장 상인들은 아무도 그곳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항시장의 상권은 굳건했기 때문이다. 공항시장은 40년 된 재래시장으로 1990년대 까지만 해도 강서지역 손꼽히는 장터였다. 김포공항에 인접해 있어 여느 재래시장보다도 붐볐던 공항시장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인천공항 개항 시점이라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김포공항의 기능 축소는 공항시장에도 타격을 주었다. 그 많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듯싶더니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12년 김포공항 앞에 대규모 쇼핑몰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 씨는 "그 당시 많은 점포가 또 다시 손님과 함께 빠져나갔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활력을 잃은 중에도 2009년에 9호선이 개통되면서 공항시장은 반짝 빛이 나는 듯 했다. 9호선 전철역 노선에 '공항시장역'이 생기면서 상인을 포함에 인근의 주민들은 한때 기대를 갖고 시장의 부흥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미 상당 수 빠져나간 점포주와 손님을 불러 모으기엔 역부족이었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여 년 전부터 노점철거 단속이 강화돼 나물과 곡식 등 1차 식품을 주로 팔던 좌판이 없어지면서 반찬거리를 사러 나오는 고정적인 손님마저도 푹 줄었다. 더욱이 주차단속도 심해 손님들은 공항시장을 지나쳐 주차장 시설이 잘 갖춰진 쇼핑몰로 방향을 전환한다고 한다. 현재 공항시장은 말만 시장일 뿐 재개발지역이라는 제한적 여건 때문인지 전통시장으로 정비되지도 못해 인접해 있는 방신시장(방화3동)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장통에서 '엄마반찬'이라는 상호로 20년 째 열무김치와 오징어 볶음, 콩자반 등 20여 가지의 반찬을 직접 만들어 팔고 있다는 전정숙(55) 씨는 갓 버무린 무생채와 바삭하게 볶은 다시마튀각을 맛보라며 권했다. 전 씨는 지나던 할머니도 불러 요구르트를 권했다. 남아 있는 점포수가 적어 사랑방처럼 돼 손님이 채소를 다듬어 주기도 한다며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전 씨는 자식들 다 공부시켜 길러낸 고마운 곳이라 쉬이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공항시장에 남아 있는 상인들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금전적 형편이 어려워 어디로 갈 엄두도 못내는 상인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시장이 죽었다는 말 듣는 게 정말 싫어요. 월세 내고 전기세 수도세 다 내고 새벽같이 나와 가게 앞을 쓸고 닦는 상인들이 아직 있어요. 저희 집 반찬 맛있다고 찾아오시는 손님이 계시는 한 여기서 계속 반찬 만들며 일할 거예요."
공항시장은 김포공항과 역사를 같이하는 시장이라 애틋함이 더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시장 마지막 하나 남은 생선가게에서 동태와 물오징어 등 몇 마리 안 되는 생선을 내놓은 채 상할까 얼음을 올리며 허리도 못 피던 백발의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었다.
재개발이 될 때까지는 주저앉지 않고 남아 있겠다는 상인들, 공항시장을 사라져가는 장터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그들에겐 아직도 절실한 삶터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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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시민기자 박분 | 생산일 | 2014-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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