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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연 앞에서 늘 송구스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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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진 뉴시스)

자연을 아는 것은 유익한 일이며,
과거가 존재한 것과 똑같이 미래도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단 하나 유익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 속에서 인간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것이다.

-- 로렌 아이슬리(Loren Eiseley)《광대한 여행》중에서

[서울톡톡] 몇 해 전 해외토픽에서 일본에서 하루가 25시간인 시계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시계는 보통의 시계들보다 빨리 가서 정상적인 1분이 이 시계의 56.7초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 9시쯤에 시간을 맞춰놓고 오후 5시까지 일하고 나면 8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시계에 비해 20분쯤 빨라져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말마따나 20분의 시간을 '벌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데, 전해진 뉴스만으로는 발명가의 본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 자투리 시간 20분을 알뜰하게 잘 써보라는 독려일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서둘러 봐야 고작 20분밖에 남길 것이 없다는 빈정거림일 수도 있을 테다. 어쨌거나 분초를 쪼개어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일상 풍자한 그 시계는 시장에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시간이 돈이다!'를 외쳐대어도 그 시간이 조작된 것임을 아는 순간 빛나던 황금이 값없는 위조지폐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평생토록 인류가 걸어온 광대한 시간의 비밀을 추적한 인류학자이자 자연주의자인 로렌 아이슬리는 시간의 진가(眞價)를 매기는 방법으로 자연을 알기를 권한다. 자연을 알면 자연을 두려워하게 된다. 자연을 알면 자연에서 이익을 얻게 된다. 자연을 알면 자연스럽게 살게 된다.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시간의 분절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지극히 작위적인-그리하여 어리석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365일과 일주일, 24시간과 60초가 없어도 '생존' 그 자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만 해가 떴다 저물고 꽃이 피었다 지는 것으로 '무언가'를 관통해간다고 느낄 뿐이다. 그 '무언가'의 모습은 과거와 미래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니,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금 여기에 붙박인 내가 시공을 초월해 확장된다. 나는 사라진다. 사라져서 영원을 산다.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내가 아닌, 무한한 나.

하지만 같은 '앎'이 있어도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그 영원과 무한을 다루는 태도 때문이다. 자연을 나와 분리시켜 내가 개조시켜야 할 대상, 편의를 위해 이용할 대상으로 삼는 순간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천둥과 번개를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해 두려워했던 원시인들의 무지보다, 산을 깎고 강줄기를 바꾸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겠다는 현대인들의 오만이 더 해롭고 끔찍하다. 로렌 아이슬리는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필봉으로 오늘날 인간의 그런 행태가 원시인들의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신에 대해 탐욕스러우리만치 호기심이 많고, 필사적으로 안도감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떠들썩한 자신감 아래에는 기실 공포가 숨어있다고.

흔히들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삶에 대해 세 가지만 생각했다고 한다. 첫째가 대지, 둘째가 동물, 그리고 셋째가 사람. 적어도 자연 앞에서는, 자연 속에서는 사람이 먼저가 아니다. 우리는 고작 세 번째다. 송구하게도, 세 번째씩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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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연 앞에서 늘 송구스런...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4-09-04
관리번호 D000004175390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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