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탈북인 1호 박사 이애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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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톡톡] 북에서 식품학을 공부하고 식품품질감독원으로 일했던 이애란 씨는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가 되었다. 그녀는 그 외에도 경인 대학교 교수, 세계에서 용감한 여성 10인으로 뽑혀 힐러리 여사를 만난 사람, 통일을 염원하여 만든 통일 약과를 전방 군인들에게 기증하는 사람 등 항상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능라밥상'은 바로 탈북인 1호 박사인 이애란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음식 전문점이다.
추석이 지난 바로 다음날 9일(화) 오전 11시 50분에 종로 2가 탑골공원 옆의 능라 밥상에서 이애란 박사를 만나 보았다. 2층에 위치한 능라밥상은 생각보다 넓어 보였고, 많은 시민이 와서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동 대학교 정해욱 군은 "식생활과 문화에 대한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해 능라 밥상을 찾았다. 오늘은 녹두 지짐, 순대, 감자만두, 해주 비빔밥을 시식하고 내일은 친구와 함께 와서 어북 쟁반, 개성 무찜, 평양냉면을 시식해 보고 과제를 제출하겠다"고 한다. 추석 명절에도 능라 밥상을 찾는 시민이 많았다. 탈북민, 실향민뿐이 아닌 다양한 손님들이 한차례 밀려 나간 후에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진 얼굴이지만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소탈한 모습이다.
능라 밥상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잘 아시는 대로 능라도는 경치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기서 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능라도에서 바라보는 금수산 절벽 위의 부벽루와 양명사, 을밀대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예로부터 상춘객이 많이 찾던 곳으로 오늘날에는 북한 초대규모의 종합운동장 '5.1 경기장'을 비롯해 각종 위락시설이 있다. 평양을 대표하며 실향민과 탈북민의 상징이기 때문에 능라 밥상이라고 이름하였다"
능라 밥상은 처음부터 잘 되었는가?
"처음에는 출장 뷔페도 하였다. 재료비, 인건비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적자만 보았다. 여러 가지 힘든 일도 많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중 시민이 좋아는 메뉴는?
"특별히 홍보하는 것은 없는데 네티즌이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자세하게 블로그, 카페에 올려주어 인터넷 후기로 찾아오는 분이 많다. 시민이 메뉴 중 고루 찾고 있지만 즐겨 찾는 메뉴는 어복쟁반, 개성 무찜, 해주 비빔밥, 평양냉면, 녹두 지짐, 감자만두, 찹쌀 순대 등이다"
통일 약과를 만들게 된 동기는?
"개성 약과는 고려 시대 중국과 몽골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최고의 과자로 이름을 떨쳤다. 그 맛과 그 방법 그대로 국산 밀과 천연자료만을 사용하여 만든 통일 약과이다. 실향민이나 탈북민은 추석에 고향을 가지 못한다. 추석에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명절 때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향민이나 탈북민을 위해서 만들게 되었다"
통일약과는 작고 네모진 과자에 잣, 호박씨, 대추 체를 곱게 얹었다. 기자도 통일의 염원을 갖고 통일 약과를 맛보았는데 바삭바삭하고, 달지도 않고 끈적이지도 않는다.
통일 약과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처음 통일 약과를 시작했을 때 500상자를 단체 주문을 받았다. 납품 준비를 완료하였을 때 주문한 곳에서 가져갈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재료를 외상 구매하기도 하고 밀린 월세, 인건비 등으로 경영권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2011년은 단체 1,000상자 주문받은 곳에서도 취소를 통보받고 2012년은 4,000상자 주문한 곳에서도 제품 완성된 후에 취소 통보를 받는 등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어찌되었든 '팔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군부대에 후원하게 된 동기는?
"한국에서도 추석이면 우리와 같이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나라를 지키는 국군장병이었다. 그들을 후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 2013년은 1만 상자를 제작하려고 했다. 5,000만 원이 필요했다. 종로 기업은행에서 어렵게 대출받아 1만 상자를 제작했다. 그중 1,000상자를 우선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 장병에게 기증하였다. 이를 시발점으로 올해에는 며칠 전 추석을 맞아 DMZ 장병들에게 1만 2,000상자(6,000만 원)를 나라 사랑후원회의 도움으로 기증하게 되었다"
과자 상자에 보니 엠과 같이 사진을 찍게 된 이유는?
2012년 2월 23일부터 3월 11일까지 옥인 교회 앞에서 18일간 단식을 하였다. 그때 보니 엠이 소식을 듣고 한국을 방문하여 위로해 주었다. 보니 엠은 1,000만 원의 후원금을 주었다. 감사의 표시로 통일 약과를 선물하면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보니 엠은 70~80년대 디스코 음악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또한 영화 '써니'의 주제가로 불러 다시 알려졌다.
기자 식탁에도 한 상 차려졌다. 어복쟁반, 녹두 지짐, 감자만두, 개성 무찜 등이다.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식품이라 담백하고 좋았다. 어복쟁반은 채소와 고기가 보기보다 양이 많았다. 임금님 수랏상에 올릴 정도로 귀한 음식인데 평안도 사투리로 어복쟁반은 어북쟁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사 중에는 17년 전 8월 16일,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업고 압록강을 건넌 이야기를 해 준다. 미국에 계신 친척분이 책을 집필하였는데 그 내용 중 일부가 이애란 박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 정치범 수용소로 잡혀가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탈북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베트남을 거쳐서 한국에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는 생사를 넘나드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인터뷰 중에도 그녀는 수시로 손님을 맞이하고 서빙을 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탈북인 1호 박사에 대해 질문 안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애란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사 2년, 박사 7년 6개월 합계 약 10년간 공부하였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영어. 한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영어로 써야 했기에 가장 힘들었다. 영어는 학원에서 하루 3강좌(6시간)를 계속 공부했다"면서 "탈북민의 정착을 계속 돕기 위하여 더욱 일해야 하며 '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신념으로 이 일을 놓지 않겠다. 한국사회에서 북한의 인권을 생각지 않고 무조건 북한을 찬양하는 이들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능라 밥상을 돕고 있는 나라사랑후원회 김현용 대표는 "나라사랑후원회는 추석이 지나면 곧 설날에 장병들에게 전달할 통일약과 준비를 해야 한다"며 "북한 인권 해방을 위하여 '탈북자 강제북송 중지' 1일 릴레이 시위에 926일째 맞이하는 오늘 동참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모임에 동참한 황에녹 씨는 "평소에 고기를 먹지 않아 녹두 지짐, 감자만두, 개성 무찜이 좋았고, 이애란 씨가 쉽게 박사학위를 받은 줄 알았는데 그렇게 고생한 줄 몰랐다"며 "이애란 박사는 여장부"라고 말했다.
'탈북 여성들이 통일의 열망을 담아 만든 통일 약과는 블랙커피와 함께 드시면 더욱 환상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커피엔 약과가 딱 입니다!' 라고 적힌 전단을 들고 나와 나도 모르게 시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문의: 능라 밥상 02-733-9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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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시민기자 신성덕 | 생산일 | 2014-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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